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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 박완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12. 06:52

결혼기념일

                        보낸사람

박완규 <pawg3000@naver.com> 보낸날짜 : 18.01.11 22:30                

  


 




  

 

 

 

 

 

 

결혼기념일

 


  

 



 


어제는 결혼기념일. 아내는 어제 몇 번이나 “우리 어디 안 가요?” 물었지만 “가긴 어딜 가.”하며 애써 무시를 했다. 아내도 기대를 갖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심 미안했다. 그래서 낮에 잠깐 아내를 불러서 “우리 외출할까?” 했다.


좋다며 쫄랑쫄랑 따라오는 아내. 하늘에선 흰 눈이 펑펑 내리는데. 차를 타고 무려 5분을 달려서 무선의 커피숍에 갔다. 투썸 플레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주문을 하고 창가에 앉은 우리. 이렇게 둘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라 하는 아내.


고왔던 그 얼굴에 자글자글 잔주름이 보인다. 


1992년 1월. 그때도 눈이 왔던가? 나는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26년. 짧지 않은 세월. 그 긴긴 세월동안 그래도 헤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달짝지근하게 산다는 것도 복이 아닐까. 감사한 일이고.


내 평생의 목표는 아내에게 존경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왜냐하면 부부란 결국 보여줄 것, 못 보여줄 것 다 보여주고 사는 사이인데 그 모습을 보고 어찌 존경할 수 있을까.


아무 곳에서나 방귀는 뿡뿡 뀌고 그러면서 남들 앞에서는 고상한 척은 다하고. 그래서 부부라는 이름은 감히 사랑을 뛰어넘어 버린 오묘한 그 어떤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부대끼며 살다보면 서로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치 안방같기도 하고 오래 입던 헌옷같기도 하고.


남자들의 낮 생활은 여러모로 힘들다.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지치고 힘들어도 아내가 곁에 있었기에 참고 버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성공한 남성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성공을 아내의 공로로 돌리지 않던가.


요즘 눈에 띄게 늘어나는 나의 습관 중에 하나는 “엄마는 어딨어?”하고 묻는 것이다. 잠시라도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럴까. 마치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를 찾아 우는 어린 아이처럼.


내 나이쯤 되면 남자들은 가정과 가족에 대해 서서히 눈을 뜬다. 자식들은 삼베바지 방귀 새듯 하나 둘 빠져나가고 이제 곁에 남은 사람은 오직 아내뿐이라는 걸 깨닫는 것도 이때쯤이다. 그래서 마누라 의존도 100퍼센트가 된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7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분들에게 노후를 누구와 보내고 싶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70대 남성 70%는 ‘반드시 아내와’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 반면에 70대 여성 66%는 ‘절대 남편과 안 보내’라고 대답했다.


내 아내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최근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여성암 환자가 아시아 1위라고 한다. 그런데 그 여성암 환자의 85%가 화병 증세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보았다. 50~60대 중년의 여성 암환자들은 “수십 년을 아내와 엄마로 헌신하면서 참고 살았는데 이제 좀 쉬려고 하니 암에 걸렸다”며 분노를 나타내기도 했다.


내 아내도 그럴까. 마누라 미우면 식당을 하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그러고 있질 않은가? 내 아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아내들에게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규정해 보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참고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남편에게 참고 아이들에게 참고. 그래서 그 화가 쌓이고 쌓여서 암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부터 아내가 한숨을 푹푹 쉬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뜸을 뜨고 약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분명 '화병'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출연하는 부부 퀴즈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문제를 내고 할머니가 답을 하는 퀴즈였다.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왔다. 첫 번째 문제는 ‘사랑해!’였다. 할아버지는 손짓발짓을 하며 부지런히 설명을 했다.


빠른 시간 내에 건너편에 있는 할머니에게 설명을 해야 하니 마음마저 급했다. 


“내가 당신에게 평소 잘하는 말 있지? 세 글자로!”
“미쳤나!”

“그것 말고 다른 말로!”
“돌았나!”


....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할아버지는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영감이 평소에 자신에게 자주 하는 말이 "미쳤나!"와 "돌았나."였나보다. 결국 할아버지는 그 문제를 " 통과"시켰다.


할아버지가 그 다음 문제를 받았다. 이번에는 ‘천생연분’이라는 문제였다. 할아버지는 의기양양했다. 그 문제는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설명을 했다.


 “당신과 나 사이⋯. 그런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그것 말고 넉자로!”
 “평생 웬수!”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문제판을 내던지고 퇴장을 해버렸다. 우리 부부는 과연 천생연분일까, 평생웬수일까. 지난 26년은 아내에게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지은 죄가 워낙 많아서.


그런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그냥 참고 살라고 해야 할까. 그건 아닌데. 적어도 내가 아파 누워있을 때 병 간호하는 아내에게 평생웬수라는 말은 듣지 않아야 할 텐데.


부부의 해피엔딩을 바란다면 이제라도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 고민해 보아야 될 시점이 되었다. 몸살기가 있다며 밤 9시에 이른(?) 퇴근을 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결혼 26주년의 밤이 착잡하기만 하다.


대원(大原)
박완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