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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꿰매주는 이들 / 김웅 지음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12. 17:41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꿰매주는 이들

등록 :2018-01-11 19:20수정 :2018-01-11 19:52

 

다양한 사건 인간군상 경험한
현직 검사의 ‘세상과 사람 공부’
약자 등쳐먹는 사기꾼부터
단편소설처럼 뭉클한 사연까지


검사내전-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부키·1만5000원


기자가 2년 전 법조 출입 시절에 들은, 기억에 남는 검찰 문화가 있다. 형사부 검사는 승진 기회가 적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재벌이나 전직 대통령 같은 거악을 척결하는 ‘칼잡이'로 불리는 특수부 검사나, 법무부·대검 같은 상급기관에서 인사나 행정 업무를 하는 기획검사, 예전엔 시국사건을 하는 공안, 요즘엔 금융조세 분야가 승진 기회가 많아 인기였다. 그다음 해엔 경찰청 출입을 하게 됐는데, 그런 승진 시스템은 경찰도 거의 똑같았다. 이런 문화가 기억에 남은 이유는 ‘수사'기관들이 국민을 대면하고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리라는 기대가 깨져서가 아닐까 싶다.

주로 형사부 일을 해오다 얼마 전에 “팔자에 없던 공안부장”이 됐다는 김웅 검사도 그의 책 <검사내전>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전선에서 떨어질수록, 총구에서 멀어질수록 승진과 보직의 기회가 많다.” 그는 형사부 검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끝판왕은 만날 일 없이 마을 주변의 독개구리나 좀비 따위를 잡는 노가다다. 좀비 따위 백 마리 잡아봐야 중간 보스 한 마리 잡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형사부 검사는 좀체 레벨업을 하기 어렵고 사실상 끝판왕을 만날 기회도 없다.” 그런데 그는 승진·출세와는 거리가 먼 ‘생활형 검사’인 형사부 일이 자신에게 맞는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밝힌다. 그는 큰 기삿거리가 되진 않지만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끼치면서도 법망을 수없이 피해온 사기꾼들을 잡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삶이 무너진 피해자들을 만나며 절감한다. “형사부 검사는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꿰매는 직분이다.”

일러스트 부키 제공
일러스트 부키 제공

그에게 형사부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 공부의 자리이기도 하다. 신고 보상금을 받으려고 거짓 진술을 해 애먼 택시기사를 구속시켜 놓고는 거짓임이 밝혀지자 사실을 실토하고는 넉살 좋게 웃으며 검사실을 나서던 자칭 목격자에게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반면, 자기가 다니던 회사의 공기청정기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공익을 위해서 시위를 하고 있고 나중엔 그의 말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는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무협지와 판타지가 버무려지는 그의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그가 잡아들인 사기꾼들 이야기를 정신없이 읽다가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사기 전력이 34회에 이르는 ‘연쇄 사기마’ 할머니는 “한번 나서기만 하면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장마철에 감꽃 떨어지듯 줄줄이 도산했다”. 할머니는 검찰의 사건 배당과 수배 절차에 빠삭해, 도주 중에도 자신에 대한 수배를 해제시켜야 할 상황이 되면 대담히 검찰청에 출석해 사건을 잘 모르는 검사를 윽박질러서 혼란에 빠뜨려 수배를 중지시켜 놓곤 다시 도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침 당직이라 시간이 많았던 김 검사가 차분히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이 할머니는 숨겨둔 세탁세제로 입에 거품을 내며 쓰러지는 쇼까지 벌이다 결국 구속된다.

하지만 사기는 이런 만랩 사기꾼만 벌이는 것이 아니다. 창업 컨설팅 업체가 벌이는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돌리기도 그가 보기엔 사기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매일 10만원씩 성실하게 허위 매출을 만들어 매달 300만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는 점포로 꾸며놓고는 ‘매출의 10% 정도라 대세에 영향이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찾는 점포야말로 꾸준히 월 300만원의 수익이 나는 점포이며, 이런 점포는 절대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고 카페 창업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단언한다. 이처럼 알아두면 손해 볼 것 없는 유익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 사진 부키 제공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 사진 부키 제공

그는 독자들이 오해할세라 자신이 조직생활에 잘 맞지도 않고 수사능력도 떨어진다고 여러번 강조한다. 젊은 검사 시절 ‘또라이’로 불렸다는 그답게 검찰과 법조계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도 거침없다. 단순한 고소·고발만으로도 국민들이 송사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제도는 고소인의 권한을 강화하여 검찰과 수사기관의 힘을 키우겠다는 음모가 숨어 있다고 꼬집는다.

대신 자기가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은 타고났다고 말한다. 얼마나 잘 듣는지 도박꾼 박 여사와 검사실 최 계장이 조사 도중에 ‘도박이 범죄냐’를 두고 벌어진 말꼬리잡기식 말다툼을 엿들으며 법의 본질을 두고 벌어진 법철학자들의 오랜 논쟁을 떠올릴 정도다. 그러다가 전문대를 다니는 박 여사의 딸이 ‘엄마가 출소한 지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에 검찰청으로 찾아와 엄마와 부둥켜안고 운다. 김 검사는 도박장에서 음료를 판 역할을 한 박 여사에게 도박개장죄가 아닌 그보다 낮은 도박방조죄를 적용한다. “딸도 용서한 엄마인데 내가 뭐라고 죗값을 묻겠는가”라며.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잘 쓰인 단편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김 검사도 자신이 단편소설을 가장 좋아한다는 점을 고백했다. 김 검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버스 타고 출퇴근할 때 1960~80년대 단편소설을 많이 읽는다. 윤흥길, 황석영, 성석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고 옮겨 적기도 해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말하는 법조인>이란 책의 수정증보판을 낸다고 대검에서 저한테 써보라고 연락이 왔는데 출판사에서 따로 책을 써보자는 쪽으로 판이 커졌다”며 “검사들이 책을 내고 정치권에 진출하곤 하는데 책을 보면 그런 의도로 쓴 것은 아닌 것을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검에서 원고를 보고 일부를 바꾸면 안 되냐고 했는데 제가 이미 인쇄를 해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며 “검찰에선 제가 원래 개구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해해준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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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27397.html?_fr=mt0#csidxd8a890b1b0c2feca4f986ee7f548a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