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가 우려했던 ‘2차 피해’가 검찰 조직 내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피해자인 서 검사의 업무능력과 성격을 꼬집는 뒷말이 거리낌 없이 오가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심각한 수준의 막말이 에스엔에스(SNS)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1일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재경 지검에 근무하는 ㄱ부장검사는 최근 서 검사를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논란이 일자 ㄱ부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ㄱ부장은 다시 검찰 내부망에 다소 정제됐지만 비슷한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조직 내의 성적 괴롭힘 문제에 있어서 미개한 조직이 아니다”라며 “피해자만 용기를 내주면,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진지하게 고충을 토로한다면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ㄱ부장은 글의 말미에 “(피해자의) 고민을 들어달라, 가해자를 처벌받도록 해달라 등의 요구에 대해서는 팔 걷고 돕겠다. 그러나 피해를 당했으니 서울로 발령내달라, 대검 보내달라, 법무부 보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신다면 그런 요구는 도와드릴 수 없음을 깊이 양해 바랍니다”라고 썼다. 에두르긴 했지만 서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이유로 이런저런 인사 부탁을 하다가 뜻대로 안 되니 폭로를 감행했다는 식의 매도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지방의 한 검사는 “에스엔에스에 올라온 ㄱ부장검사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검찰 내부에는 “문제 제기 방식이 잘못됐다”, “이제 와서 왜 그러나” 등의 ‘피해자 때리기’ 기류도 강하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여검사 주변에선 쉬쉬하지만, 남자들끼리 모이면 민망해서 들을 수 없을 지경의 이야기도 오간다. ‘이래서 당하더라도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는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더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부장검사도 “ㄱ부장검사 글을 보고 ‘속이 시원했다’거나, 서 검사의 능력이나 폭로 동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검사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반대로 가해자인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대해서는 두둔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그래도 (안 전 국장이) 일은 정말 잘했다”(한 검찰 간부)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날 서 검사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전날에 이어 재차 ‘2차 가해’ 방지를 호소하는 입장문을 냈다. 김 변호사는 “소위 ‘카더라’에 의한 조직 구성원들의 수군거림으로 피해자는 발가벗겨진다”며 “근거 없는 소문의 확산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행위이며, 검찰 조직과 법무부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조직 방어를 위해 내부 고발자에게 가혹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담당 검사 몰래 법원에 접수된 영장을 회수한 제주지검 사태 때도 되레 문제를 제기한 검사의 평소 업무 태도나 성격 등을 거론하며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백지 구형’ 사건의 임은정 검사 역시 동료 검사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직에 대한 몰입도가 높을수록 튀는 구성원에 대해 상처를 입히고 약자로 낙인을 찍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면서 ‘내가 속한 조직은 안전하고 공정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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