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지원’ 문형표 판결과 정반대
문 재판선 “박근혜 지시로 찬성
이 부회장 이익 취하게 해” 지적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도 인정안해
문 재판선 “박근혜 지시로 찬성
이 부회장 이익 취하게 해” 지적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도 인정안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 및 이와 관련한 묵시적 부정 청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제3자 뇌물 혐의에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는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이 ‘(청탁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됐다고 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소심 판결은 물론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다’는 재판부 스스로의 판단과도 배치된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5일 “포괄적 현안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개별 현안들(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의 진행 자체가 승계작업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미래전략실 주도하에 지속적으로 추진됐고,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승계작업을 서둘러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아예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따라 승계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도 존재할 수 없어 제3자 뇌물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이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을 묵시적 부정 청탁 대상으로 인정해 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을 뇌물로 판단한 데 반해, 2심은 이마저도 부정하며 영재센터 지원금에 대해서도 무죄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합병 등 (개별 현안이) 성공하면 피고인 이재용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고 인정해놓고도,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 그런 효과가 확인된다는 것이고, 이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에 따른 여러 효과 중 하나일 뿐이라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모호한 논리를 제시했다. 국내 최대 삼성그룹이 개별 현안이 가져올 향후 승계작업 효과를 모르고 있었거나, 알았더라도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셈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있었더라도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청탁하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도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역시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이재용의 승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승계 문제 보고서는 작성자들의 의견서에 불과”하고 “보고서만으로 삼성이 승계작업을 추진했음을 직접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 출석을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구치감으로 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특검 쪽은 이날 판결 뒤 “재판부가 처음부터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증거가 없다’고 하는 등 특검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주장한 내용과 제출한 증거에 대해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실제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에 대해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 이재용과 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부정 청탁) 지시와 대화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번 판결은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영)가 지난해 11월 문형표 전 장관 등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부당하게 압력을 가해 합병을 찬성하도록 해 ‘이 부회장에게 이익을 취하게 했다’고 지적하며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논리와도 크게 어긋난다. 또 문 전 장관 사건 1·2심 재판부 모두 “삼성 합병은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중지를 모은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삼성물산 합병 건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문형표 전 장관 등이 항소심까지 유죄가 선고된 상황에서, 승계작업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민경 현소은 최현준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