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항소심’ 배척한 최순실 1심
박근혜-재벌총수들 단독면담
직접증거 확보 불가능한 자리
수첩 등 모든 증거 종합해 판단
1심에서 징역 20년형,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은 최순실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 13일 최순실씨 판결을 통해 ‘안종범 업무수첩’이 다시 증거 지위를 회복하며 부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만 참여한 단독면담 내용을 증명할 여러 증거 중 하나로 인정받은 것이다.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들을 배제하면 처벌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1심을 선고하며 안종범 수첩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재판부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안종범 수첩’은 이 부회장의 1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블랙리스트 재판,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의 재판 등에서 모두 증거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2심을 심리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만 전해 들은 내용(전문)은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와 인정해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반면 최씨 재판부는 “피고인 안종범은 ‘대통령이 단독면담 후 그 면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자신에게 불러주어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진술했다”며 “대통령이 단독면담 후 안종범에게 면담에서의 대화 내용을 불러줘 수첩에 받아 적어두었다는 사실은 단독면담의 대화 내용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사실이고, 그에 대한 정황증거로 사용하는 범위 내에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재판부는 “대통령과 면담자만 참석해 은밀히 이루어지는 면담의 대화 내용을 대통령과 면담자가 진술하지 않으면 대화 내용을 인정할 직접증거가 없어 관련된 간접사실 또는 정황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며 “수첩만 가지고 바로 직접 대화 내용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면담 경위 등 관련된 간접사실 및 정황 사실까지 모두 종합해 대화 내용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법칙의 취지를 잠탈하는(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단독면담 내용은 두 사람밖에 모르는데, 박 전 대통령은 법정 출석을 거부하고 재벌 총수는 대통령의 승마지원이나 재단 출연 요구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안종범 수첩’까지 제외하면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가 ‘극소수만 알 수 있는 내용’ ‘은밀한 자리’라고 판단한 단독면담의 내용은 사실상 직접증거 확보가 불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증거능력이 부여된 ‘안종범 (업무)수첩’은 판결문에 33차례 언급된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과 면담한 2016년 3월14일자 안종범 수첩에 적힌 ‘하남시 장기 임대 시설 75억’ 등의 메모는 면담 전후 롯데 쪽의 긴밀한 움직임과 결합돼 ‘단독면담에서 대통령의 요구로 롯데가 케이(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이상화 전 하나은행 본부장의 이름과 연락처 등이 적힌 안종범 수첩 내용도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최씨의 하나은행 본부장 임명 강요 입증에 사용됐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