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축소·은폐하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가 22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핵심 혐의인 ‘국정농단 방조’(직무유기)를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법조계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처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민정수석이 전례 없는 국정위기에 눈감고 은폐에 급급했던 책임을 물은 것으로 풀이된다.
■ 광범위한 권한 방기…국정농단 일조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6년 7월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나 최순실씨의 비위를 충분히 파악했다고 판단했다. 민정수석실에서 언론보다 앞서 재단 인사 등에 대한 세평을 수집했고, 안 전 수석 역시 우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의 독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댔다.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오히려 사안을 축소하는 대응 논리를 개발해 국정농단 사태 확산을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직권남용죄 주체는 공무원이라 민간인인 최씨에 대해선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적 검토’ 문건을 안 전 수석 등에게 건넨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최씨 개인의 문제로 치부함으로써 박 전 대통령의 입장발표(대국민담화) 등 적극적 은폐 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우 전 수석이 2016년 7~8월 자신의 처가 가족회사 ‘정강’에 대한 특별감찰관실의 감찰을 방해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우 전 수석과 윤장석 전 민정비서관이 감찰 개시 시점부터 이석수 전 특감 등에게 전화해 ‘감찰권 남용’ ‘불법 감찰’ 등을 언급하고 “민정수석실에서 감찰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는 등 감찰을 위축시켰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자신의 집 앞 현장조사를 중단시키고 경찰청을 통해 특감실 파견 경찰관을 감찰한 점 등을 짚으며 “민정수석으로서 지위나 위세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질책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판 내내 논란이 됐던 민정수석의 업무범위를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 전 수석이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상시적으로 예방하고 감시해야 할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는 한편, 공직자로서의 권한을 엉뚱하게 동원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직권남용죄 4건 중 3건은 무죄 다만 재판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가 적용된 4가지 혐의 중 3가지는 무죄로 판단했다. 문체부 국·과장 6명에 대한 ‘찍어내기’ 인사를 지시한 혐의에 대해 “세평 수집 방법이 위법하다거나 관행상의 인사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전보조치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2016년 5월 케이스포츠클럽에 대한 현장점검을 준비하도록 대한체육회 등을 압박한 혐의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의 점검 지시가 최씨에게 이익을 주려는 목적이었는지 몰랐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 (최씨의) 케이스포츠재단에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애매하다”고 했다. 민정수석실에서 공무원 세평 조사나 국가보조금 집행사업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것 자체가 위법하지는 않다는 취지다.
반면 우 전 수석이 2014년 민정비서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에게 ‘씨제이이앤엠(CJ E&M)에 대한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도록 압력을 넣은 것은 “공정위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전례 없는 행위”라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당시 청와대에는 ‘이념적 좌편향’을 이유로 씨제이 그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도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고발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 고발요건 안 되지만…위증은 의심돼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의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 3가지 가운데 2가지에 대해 무죄나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먼저 우 전 수석이 2016년 12월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 청문회에서 세월호 사건 광주지검 수사팀에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거짓증언한 혐의에 대해 ‘고발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공소를 기각했다. 국회 위증 관련 우 전 수석에 대한 고발이 김성태 특위 위원장 개인의 수사의뢰 형식으로 이뤄지거나, 특위 활동(2016년 11월17일~2017년 1월15일) 종료 뒤인 지난해 4월11일에 이뤄져 무효라는 취지다. 앞서 지난해 8월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도 비슷한 이유로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의 공소를 기각한 바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회 증언 자체는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수사팀장이었던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지난 1월 법정에서 “해양경찰청 본청 서버를 압수수색한 2014년 6월5일, 우 전 수석이 해경 본청 상황실 경비전화 녹음파일이 보관된 전산 서버를 압수수색 안 하면 안 되겠느냐는 취지로 전화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당시 “(수사) 상황만 파악했다”는 우 전 수석의 국회 증언은 위증에 가깝고, 사실상 수사 압력을 넣었다고 볼 여지를 남긴 셈이다.
재판부는 또 우 전 수석이 지난해 1월9일 특위 청문회에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혐의에 대해서도 증인 출석에 필요한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로 봤고, 2016년 10월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판단을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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