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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함에 대한 예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3. 6. 09:14

 거룩함에 대한 예화

 

 


 

   1. 거룩하다는 것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곧 하늘에서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는 그분(계 4:8,9)을 닮는다는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거룩하신 분" "거룩하고 악의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 보다 높이 되신 그분. 곧 그리스도" 를 닮는다는 것이다(히 7:26).이것은 단순히 악의 나, 악한 세상과 구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구약시대에 성막과 거기에 사용되던 모든 기구들이 다른 물건과 뚜렷하게 구별되던 것과 같은 뜻의 구별이다. 모든 세속적인 관습으로부터의 분리요 영원한 계약의 피로 말미암은 분리이다.

 

   2. 가정에서 먼저 경건을 배울 것

  사도 바울은 과부들에게 그들이 먼저 가정에서 경견을 보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아마도 어떤 다른 일을 맡기에 앞서 과부들은 가정적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한번은 주님에 의해 귀신에게서 놓인 한 사람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그의 달라진 행위로써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라고 하셨다. 세상조차도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그의 가장 추악한 자아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의 한 훌륭한 희극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참으로 좋은 친구"라 불린다. 다른 한 사람이 "당신은 이 좋은 친구들 중의 한 명을 집에서 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 단순한 질문 속에서 얼마나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가! 그는 먼저 집에서 이타심과 순종과 경외심-한 마디로 말하면 경건-을 보이는가?

 

   3. 거룩한 뜻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루터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유서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감회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하루를 온전히 기도함으로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도 죽을 때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속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의 병은 신속히 회복되어 의사가 선언한 불치의 병에서 소생되어 6년을 더 살며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4. 거룩한 삶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먼저 자기 십자가란 자기를 극복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살 동안 [주님의 길을 택할 것이냐, 육신의 길을 택할 것이냐 ]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또한 [진실을 말할 것이냐, 거짓을 말할 것이냐]하는 문제에 부딪칩니다. [거룩하게 살 것이냐, 방탕하게 살 것이냐]의 문제에 부딪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만일 우리가 육신의 길을 택하고 거짓을 말하며 방탕한 생활을 택한다면 우리의 육은 살고 영은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길을 택하고 진실을 말하며, 의롭고 거룩한 삶을 택하면 우리의 육은 죽고 영이 살아 하나님 의 은총 속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란 주님을 좇기 위해 자원해서 짊어지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 십자가란 주님 때문에 당하는 핍박을 말합니다. 자신의 문제로 당하는 핍박이 아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은 진정한 십자가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해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와 함께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될 때는 조금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런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5. 거룩함을 방해하는 것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탄의 졸개들이 리비아 사막에 살고 있었던 어느 성직자를 유혹하여 쓰러뜨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 악한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범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람의 육신의 정욕을 건드려도 보고 의심과 두려움의 화살로 맹공을 가해 보았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졸개들의 완패에 화가 치밀어 오른 사탄은 직접 나섰다.

 "너희들의 전략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어. 내가 하는 것을 잘 봐." 사탄은 그 성직자의 귀에다 이렇게 속삭였다. "이봐 당신 동생은 벌써 알렉산드리아의 주교(主敎)가 되었다고!" 이 말은 듣고 있던 성직자의 얼굴은 금세 험악해지면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사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군대에게 말했다.

  "시기! 바로 이거야.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겐 이게 최후의 무기지!"

 

   6. 거룩함의 단어 연구

  거룩함은 사람의 다른 모든 면을 제외한 오직 한 가지 면으로만 충족되지 않는다. 이 점은 불주파은 떨기나무에서의 모세의 경험으로 예증될 수 있다. 모세는 신발을 벗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그것을 벗어야만 했던가? 여호와께서는 그 분이 그곳에 임재해 계시다는 것과 모세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하기 때문에 그 분의 그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거룩함 다은 온전함(wholeness)이라는 것이다.

사실, 거룩함(holiness)과 온전함이라는 두 단어의 영어 어근은 하나이며 같다. 그리고 세속적(secular)이라는 단어와 종교적(/sacred)이라는 이 두 단어도 같은 어근에서 왔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 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한다든가 이와는 반대로 실제적인 내적준비를 도외시하고 단지 외모만으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은 합당치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시대에 신앙부흥을 기대한다면 거룩함은 모든 신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 진정한 축복은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는 성화의 축복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화되기를 축원합니다"해야 옳은데 요즘 교인들은 축원합니다하면 물질적인 의미로만 이해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애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Walter C. Kaiser , 신앙부흥의 영적 원리들, P.40.에서)

 

   7. 경건한 자의 고민

  프린스톤 대학의 어떤 학생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나는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며 성서를 읽고 암송까지 합니다. 학교의 신앙집회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내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아마 이 학생의 고민은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대다수 기독교인이 겪는 공통된 고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진정한 능력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이아니라실제적인 삶에서 나온다.

 

   8. 네 이름 혹은 네 삶을 바꾸라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습니다.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아무렇게나 불렸습니다. 이 소식을 안 알렉산더 대왕은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

하여 겁에 질려 경례를 하고 있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네가 알렉산더라지?"

"네"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9. 도덕보다 구원의 능력

  독일의 `라인란트 선교회'는 수마트라 선교를 위하여 논멘젠 박사를 파송하였다. 논멘젠은 1864년 바탁 지방에 들어가 추장을 방문하고 그의 부족에서 2년간 만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추장은 그 청원을 받아들였다. 논멘젠과 함께 생활한 지 2년 후에 추장은 그를 불러 그 동안 한 일에 감사한다고 말한 후 놈망빛선교사가 가르친 것은 자기 족속의 법률에도 있으므로 더 이상의 교훈이 필요 없으니 떠나라고 하였다.

 "우리 법률에도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라고 씌어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논멘젠이 말을 듣고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다. 그는 바탁족의 윤리적 기준이 너무 낮은 것에 주의를 기울여 율법의 금지명령을 강조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속에 도덕적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실패했던

것이다. 그는 구원하시는 능력을 선포하는 데만 힘쓸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추장에게 여섯 달 만 더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여섯 달이 지나자 추장은 그를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몇 달 동안에 당신은 새로운 것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율법이라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모시려고 합니다."

  그 결과 바탁 지방에서는 수천 명이 구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탁지방은 수마트라에서도 살기 좋은 지방으로 변하여 많은 이웃 지방의 사람들이 이주를 희망하고 있다.

 

   10. 독일군의 독가스 공장

  세계 제1차 대전 때 독일군은 독가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면 독가스 공장을 파괴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끝나고 공장을 없애려고 하니 방법이 없었습니다. 불살라버리면 인근 주민과 동식물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고 땅속에 묻어버리면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고... 결국 오늘날까지 콘크리이트 폐기물속에 남아 있답니다. 독가스란 만들기는 쉬워도 소멸시키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거짓말이나 험담이나 비판이 그렇습니다. 특히 험담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고 그것으로 입은 상처는 여간해서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말에 거짓이 있는지, 또 험담이나 비판이나 독설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정직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 한번 물어볼 일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11. 마음의 깨끗함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6.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 고후 7:1.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바퀴벌레 두 마리가 각기 다른 식당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A라는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입맛을 돋우는 것들이 아주 많은 지저분한 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B라는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밥알 하나 발견할 수 없는 너무나 깨끗한 식당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B라는 바퀴벌레는 잽싸게 A라는 바퀴벌레가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헐떡거리며 말을 했습니다. "얘, 지금 내가 갔다 온 식당이 어떤 곳인 줄 아니 ? 정말 기가 막히게 깨끗한 곳이야. 파리가 낙상할 정도라고." 그러자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던 A라는 바퀴벌레가 불쾌한 듯 말했습니다. "야, 너는 내가 먹고 있을 때 꼭 그런 얘기를 해야겠니? 밥맛없게 !"

  얼핏 보기에 우스갯소리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 적용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속을 여행하면서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사단도 바퀴벌레와 마찬가지로 너무 깨끗한 곳은 싫어합니다. 사단이 입맛을 잃을 정도로 청결한 마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주님 보시기에 깨끗한 마음이고 싶습니다."

경건을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은 훈련입니다.

 /// 죄에 빠지는 자는 사람이요, 그것을 회개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요, 죄를 자랑하는 자는 마귀이다.

 

   12. 믿음의 행진

 인간이 이성이나 지식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말씀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참된 것으로 믿고 말씀 위에 굳게 설 때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합니다. 그 말씀은 진리이며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어둠에서 빛이 나타나고 궁창과 해와 달과 별이 나타나고 육지와 온갖 짐승과 물고기,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기1:26)고 말씀 하신 후 그대로 하시니 남자와 여자가 생겨났습니다. 이런 하나님이시 기에 그 말씀은 진리며 위대한 역사를 창조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성이 무엇이라고 강조하고 설득하려고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13. 부서진 꽃병

  한 영국의 귀족이 우수한 도자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기 위하여 조시야 웨지우드씨 (1730-1790) 공장으로 갔습니다. 한 젊은 수련공이 그 귀족에게 공장 내부를 구경시켰습니다. 그들이 공장 내부를 돌아보고 있을 때 그 귀족은 쌍스런 말을 쓰고, 안내자에게 퉁명스런 말들을 했습니다.

  이 공장을 다 돌아본 뒤에 이 귀족은 자기 마음에 맞는 특별한 그 꽃병을 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꽃병을 그에게 건네 줄 때에 일부러 땅바닥에 떨어뜨려 깨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이 귀족은 몹시 화를 내면서 저주스런 말투로 [내가 진정으로 이 꽃병을 원했는데 그만 당신의 실수로 이것을 깨지게 하다니!]라고 말했습니다. [각하! 세상에는 이 꽃병보다 몇배나 값진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꽃병은 다시 만들 수 있어도 당신의 불경한 언어로 인하여 상처 받은 수련공의 그 마음을 회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라고 웨지우드씨는 말했습니다.

 

   14. 부지중에 주님 영접

  미국 노스캐로라이나 주 와타우가군 남부 산악지대에서 이었던 이야기다. 믿음이 독실한 가난한 노부부가 어떤 날 주님의 저녁까지 지어 놓고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오시지 않고 웬 늙은 거지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를 데리고 들어와 자기의 저녁을 대접했다. 할머니는 저녁을 굶게 되었다. 거지는 고맙다고 하고는 떠나갔다.

  또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남루하게 입은 소년이 찾아왔다. 몹시 굶주려 보였다. 할아버지가 내 저녁을 주라고 했다. 그 소년은 노인의 저녁을 먹었다. 자고가라고 했으나 가야 한다고 하여 코트를 입혀 보냈다. 그들은 또다시 불을 쬐며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주님이 오셨다. 그들은 나가 영접하며 주님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고 하자 주님은 "내가 이미 여기에 두 번이나 왔었노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15. 산 제물로 드리자

  링컨 같은 사람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물론 사업도 열심히 했을 것이고 법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세계 정치사에서 성스럽다고까지 할 링컨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의 건국사의 초석을 놓았던 그러한 링컨은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가 ‘예스’를 하면 유럽이 전부 ‘예스’로 진동이 되고, ‘노’를 하면 유럽이 ‘노‘쪽으로 진동을 할 정도로 지진을 일으킨 사람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께서 만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입니다.

  K목사님은 아주 불량한 깡패였습니다. 그는 시장에 가는 사람마다 괴롭혔습니다. 시장에 가는 사람들이 오늘은 K를 안 만나게 해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갔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한국 초대교회의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참회록을 보면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했습니다. 가장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모세가 왜 없었습니까? 한국의 이사야가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베드로나 바울이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에스더나 룻이나 한나 같은 여성이 왜 없겠습니까? 사람들만 잘 키워 낸다면 인간의 위대한 교육자이시며 위대한 예술가이시며 또한 창조주이시며 부활의 주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생애을 맡겨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격의 모든 병을 낫게 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께 우리의 생애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소경들이 예수께로 갔을 적에 예수님은 “내가 그 일을 능히 하실 수가 있다고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이 일을 능히 하실 수가 있나이다”하고 믿으면 그렇게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16.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먼저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근원적 인 사랑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근원적인 사랑을 확 보해야 합니다. 이런 근원적인 사랑이 없는 인생은 존귀하나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은 먼저 이 근원적인 사랑을 확보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여받은 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19: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귀한 존재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존귀한 존재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는 한편 이웃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성경은 권면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진정한 사랑으로 대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 확고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한1서 4:12)

 

   17.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전

  하나님은 신성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었으며 이사야서에만 기재된 것도 30여 번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주시다. 신성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정결하시다는 것이다.

  이 신성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체를 대표한 말이니 하나님께서 신성하신 것은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요, 예수교의 기초적인 진리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니 죄를 미워하시며 의를 사랑하시고 신성을 소유하시고 불결을 물리치신다. 그래서 우리 사람이 죄악과 불결에서 떠나 순진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또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니 그 분이 계신 가정이 거룩한 것이며, 그 교회가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그 좌석이 신성해야 할지니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가 맡은 일, 개개인이 합하여 된 것이니만치 그 기초인 개인의 마음중심이 신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급한 일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어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눈과 같이 희게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간 속에서

  빈센트 감독은 매일 아침 지키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우리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인데 이런 문구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도 순수하고 진실하게 생활할 것이다. 불만족, 불순한 생각, 자기만의 추구 등등은 모두 물리칠 것이다. 그리하여 기쁨과 정열과 환희와 거룩하고 조용한 행위를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돈을 쓰며 주의 깊게 행동하고 또 화해하는 삶을 살 것이다. 봉사하는 데는 근면하고 모든 살 마을 믿으며 하나님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깨끗한 믿음을 갖도록 애쓸 것이다.(Christian Observer)

 

   18. 순결한 삶

  테니슨은 그의 작품 「왕의 전원시」에서 기사의 서약을 제시했다. 『삶은 순결하게, 말은 진실하게,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왕을 따른다. 그렇지 않다면 왜 태어났는가?』

  이것은 크리스천을 위한 좋은 좌우명이 아닌가 .크리스천은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순결한 삶이란 거룩한 삶을 의미한다. 크리스천은 진리를 말해야 하며, 또한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애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크리스천은 왕을 따라야 하는데, 그 분은 믿음의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9. 아담과 하와 증세

  `아담과 하와 증세(Adam and Eve syndrome)'가 있다. 이것은 낙원에 있으면서도 낙원에 있지 않고 하나님 곁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그 결과는 낙원을 잃는 것이다. 예수의 비유에서 문 밖에 서 있는 자들이 "우리가 주님과 가까웠지 않았습니까?"하고 부르짖는 것이 아담과 하와 증세이다. 집 주인이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20. 영적 무감각의 큰 죄

  챨스 피니(Chales Finne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신앙부흥이란 교회가 타락 상태에 빠져 있음을 전제하여 그러한 상태로 부터의 교회의 돌이킴과 죄인들의 회심에 있다"비록 피니가 죄인들의 회심을 신앙부흥에 대한 그의 정의의 일부로 결론짓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저서로 볼 때 그 같은 회심을 신안부흥의 주된 과업 가운데 일부가 아니라 그것의 결과로 보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피니는 다음과 같이 경고 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린도인들이 영적으로 새롭게 되지 않는 것은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비난을 받아야만 할일이라는 것이다"

   (W. C. Kaiser, 신앙부흥의 영적 원리들, 나침반사,P. 17-18.에서)

 

   21. 영적인 민감성을 갖으라 왕상12~13/눅24:36~53★

 ●󰡒������악인은 공의(公義)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 28:5.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잠 22:17.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

  한 시계공이 열심히 자기 집 마당에 있는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고용주가 보게 되었습니다. 󰡒������자네는 늘 자네가 직접 잔디를 깎는가?󰡓������ 『그럼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잔디를 깎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잔디 깎는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까 그 일은 이제 그만두게.󰡓������

  얼핏 보기에는 시계 공에 대한 고용주의 태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시계공의 솜씨는 예민한 손끝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시계공의 손끝에 굳은살이 배기면 시계공은 시계공으로서의 수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영적인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즉, 시계공의 손끝이 늘 예민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늘 영적으로 예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늘 사단의 손아귀에서 끝없이 혼란스러워지고 말 것입니다. 영적인 민감성 !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주님, 혼탁한 이 시대에 저희가 영적으로 예민하기를 소원합니다.󰡓������

 ◉ 당신의 영적 생활은 건강하십니까 ?

 사단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영적으로 둔감한 자이다.

 

   22. 의사가 손을 씻듯이

  뉴욕에 있는 브릭 장로교회의 저명한 목사인 몰트비 바브코크에게 그 교회에 다니는 의사 한 사람이 찾아갔습니다. 그 의사는 바브코크의 건강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바브코크에게 극장표 몇 장을 건네주면서 "받으십시오. 목사님은 이 연극을 보면서 좀 쉬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브코크는 극장표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표들은 자기의 양심상 관람할 수 없는 연극인 것을 알고 친절해 대답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연극은 관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안 되는 거죠?" 하고 의사가 물었습니다.

 "박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시면 잘 아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의사이시죠, 그것도 외과 의사입니다. 선생님이 수술하실 때면 손을 아주 꼼꼼하게 닦으시죠? 그것이 깨끗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아마, 더러운 손으로는 수술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저는 사람의 귀중한 영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감히 더러운 삶을 살면서 인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3. 인격건설

  최근 들어 학자들 사이에 우리나라의 국민교육헌장의 일부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내용이 얼마간의 투쟁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그보다는 국민교육이라지만 그 속에는 국민의 인격교육이나 인격건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얘기로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마하 트마 간디에게 어느 날 영국인 기자들이 "인도에서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인도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경제적 부강이나 사회복지의 건설이 아니라 국민들의 올바른 인격건설입니다."

  그렇다, 사람들은 그 인격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결코 아름다운 인격을 세워나가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24. 절제하는 삶을 살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오직 성령의 열매는…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2~24.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화창한 어느 가을날, 한 농부가 토실토실하게 여문 옥수수를 엮어 나뭇가지에 매달았습니다. 한 다람쥐가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농부의 눈을 피해 옥수수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에 올라가 배가 터지도록 옥수수를 먹어댔습니다. 며칠 후 농부는 나무 밑에 떨어져 죽어 있는 다람쥐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먹어 둔해진 몸을 이끌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뎠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다람쥐처럼 절제를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말의 절제, 행동의 절제, 음식의 절제 등 우리의 삶에 절제가 필요한 부분은 참으로 많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요즘, 당신의 삶에 절제가 필요한 부분은 없으신지요? 그렇다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희로 늘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사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갖게 하시옵소서."

요즘, 당신은 어느 부분에 절제가 필요하십니까? 나쁜 버릇은, 쉽게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오기는 힘든 편안한 침대와도 같다.

 

   25. 친구들로부터 떠난 죠지 팍스

  1643년 영국의 레이스케스터샤란 곳에서 구두를 짓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다른 친구들과 술집에를 갔는데 술을 마신 뒤 그 중 한사람 이 술값은 마시지 않은 사람이 내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그가 일어나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그는 하나님의 앞에 나가 울었다. 그러자 그에게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허무하게 방황하여, 늙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았느냐? 그러니 이제는 그들로부터 떠나 모두에게서 구별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지체하기 않고 그 말에 순종했다.

  그 젊은이는 후에 궤어커교를 창시한 죠우지 팍스였다.

 

   26. 하나님의 자서전

  리로이드 죤 오길비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느 날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진찰하기 위해 먼저 나의 귓속을 소제해 주었다. 그는 강력한 펌프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쌓였던 귓밥을 빼내 주었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이렇게 많은 귓밥을 담고서 듣는데 별 장애가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군요.' 그랬더니 의사는 나에게 멋진 말을 해 주었다.

 '귓밥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서 떡이 되면 그때에는 청력장애가 옵니다. 그렇게 되면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크리스천과 같아집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이 마음에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조금씩 외면하다 가보면 필연코 양심이 무뎌져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예 귓전에 들리지 않게 된답니다. 그 결과 그는 영적인 귀머거리요 장님이 되어서 몸은 살아 있으나 영은 죽은 자와 같아집니다.

 

   27. 한 점 부끄럼 없게

  영국 런던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자 어떤 사람이 장난으로 런던 시내에 있는 저명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각각 띄웠습니다.

 [당신의 사생활이 모두 들통이 났습니다. 그 사진을 폭로하기 위해 신문기자들이 귀하의 집을 방문할 것이니 이 해가 가기 전에 런던을 떠나십시오]

  그 후 편지를 띄운 저명인사 집을 모두 찾아가 봤는데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마다 자기의 감추어진 생활이 드러나게 되면 견딜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치겠다는 사람들 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 8:7)고 말씀하시고 허리를 굽혀 땅위에 손가락으로 쓰셨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도망치고 그 여자만이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함으로써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언 10: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의인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따라서 늘 회개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하며 바른 길로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28. 화니 크로스비

  찬송시를 8천여 편이나 지은 것으로 잘 알려진 화니 크로스비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장님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시력을 주신 다해도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기 위해 저절 하겠다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불행을 오히려 하나님의 주신 축복이 하고 믿으며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성결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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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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