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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상가들도 도달하지 못한 성평등의 근대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3. 9. 18:09

근대사상가들도 도달하지 못한 성평등의 근대화

등록 :2018-03-08 20:07수정 :2018-03-08 20:15

 

여자들의 무질서
캐롤 페이트먼 지음,이평화·이성민 옮김/도서출판b·2만2000원


한 민족이 지나친 음주로 멸망한 적은 없다. 모든 민족은 여자들의 무질서 때문에 멸망한다(‘정치와 예술’:달랑베르에게 보낸 편지글 중) 프랑스 계몽사상가이자 프랑스 혁명의 불을 지핀 장 자크 루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루소만의 한계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철학적 기반을 다진 근대 사상가들 대부분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비단 20세기 이전의 문제만도 아니다. 최근 미투(#Metoo) 운동으로 터져나오는 폭로들은 남성이 대변하는 주류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근대 또는 그 이전에서 한발짝도 못벗어났음을 드러낸다.

<여자들의 무질서>는 미국의 여성주의 정치이론가로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여성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 연구해온 저자의 역작이다. 1970~80년대 발표했던 논문들을 묶어 1989년에 미국에서 발간됐는데 그 문제의식은 2018년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하다. 책의 제목으로 뽑은 루소의 표현은, 여자들이 비이성적인 본성 때문에 정치적인 삶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회계약 이론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페이트먼은 그들이 평등의 가치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자들이 남편에 종속되는 계약에 자발적으로 동의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한 장을 할애해 ‘여자의 동의’가 남성중심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악용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쉬운 사례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미디어와 문화 텍스트들은 여성들의 ‘노’를 ‘예스’로 해석한다. 페이트먼은 ‘여자들의 문제’를 단순히 ‘여성쟁점’으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이론의 급진화의 계기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혁명적 사고의 전환 없이는 어떤 사회의 발전도 여성의 배제와 종속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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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35301.html#csidx72d54f3aca52728b9c07fdb026a957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