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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선생님의 가르침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3. 9. 18:15

호랑이 선생님의 가르침

등록 :2018-03-08 20:05수정 :2018-03-08 20:12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나는 가끔 반려인의 딸이 태어나기 전의 생활을 회고한다. 당시의 나는 임무에 충실한 훌륭한 고양이였다. 100여개의 물병을 쓰러뜨렸고, 수십장의 비닐봉지에 머리를 넣었으며, 인간이 제 몸을 의탁하는 소파와 의자를 박박 긁는 등 부단한 노동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반려인과 나의 생활은 완벽함에 가까워서 그 무엇도 (심지어 그녀의 애인마저도) 우리 둘을 갈라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의 딸이 태어났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인간 아이는 고약했다. 아이가 누워 있는 동안은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아이는 아이의 영역을 지키고 나는 내 영역만을 사수하면 되는, 단순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우악스럽게 내 꼬리를 잡으려 했고, 쓰다듬는다며 내 털을 잡아뜯기도 했다. 워낙 성가시게 굴었기 때문에 나는 늘 도망 다니거나 숨어야 했다. 집안 아무 데나 누워 느긋한 여가를 즐기던 나의 삶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급기야 충성을 맹세하던 반려인마저 인간 아이를 옹호하고, 자신의 딸에게 살갑게 굴지 않는 나의 태도를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인간들이 내게 보인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차원적 사고를 하는 나를, 방바닥에 나뒹구는 장난감과 동일시하다니! 인간 아이에게 우호적이라는 인스타그램 속 고양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쓴소리하는 반려인에게 화가 났고, 나를 귀찮게 구는 그녀의 딸에게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내게 자유 의지가 있음을, 감정이 있음을 반드시 알려야 했다.

“팍! 하악!”

“꺄아! 엄마아아! 먼지가 나 때렸어. 이히히히...”

아무리 싫어도 반려인의 혈육. 나는 발톱을 숨긴 채 솜방망이 펀치를 날렸고 있는 힘껏 하악질을 했다. 내 뜻과 관계없이 나를 만지거나 장난감 취급을 해선 안 된다는 뜻을 명확히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반려인의 딸은 내 메시지를 이해 못한 듯 호들갑을 떨며 웃었지만, 반려인만큼은 내 행동의 의미를 알아챈 듯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반려인은 다시 한번 때려보라며 내게 달려드는 딸을 제지하며 이렇게 외쳤다.


먼지가 싫다고 하면 싫은 거야. 먼지도 마음이 있어. 고양이도 개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누가 함부로 와서 만지면 싫어해. 너도 그렇지? 억지로 껴안고 만지면 싫지? 먼지는 장난감이 아니야.

반려인의 딸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려인의 손에 잡혀 뒤로 물러나는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내가 만약 웃을 수 있다면 ‘크하하’ 크게 웃었을 것이다. 거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이, 고양이와 개(내가 알 바 아니지만)의 마음과 예의에 관해 이야기 할 때쯤, 나는 방 한구석에 앉아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 반려인의 딸과 나 사이에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졌다. 서로의 신체에 손(발)을 대지 않고 거리를 두며, 존경이 섞인 눈인사만 나누기로 한 것이다.

요즘 평화롭다 보니 종종 이런 생각도 든다. 만일 반려인이 먼저 나서서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를 우습게 보지 마’ 중재했더라면 내가 무력을 쓸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우매한 인간이라 몰랐던 걸까? 인간을 계몽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35298.html#csidx8cbd98ac280f48e9c8f14044b3fda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