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예수를 바라보자[내얼굴이 천사의 얼굴이되어 내 마음이 기쁠때]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28. 08:53

090705 예수를 바라보자 (12:1-3)              설교집Ⅵ <얼굴과 얼굴로> 1-3

성경본문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지난 주간에 제가 미국비자를 받았습니다. 비자 받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우냐. 쉽게 받은 분들이야 문제가 안 되지만 저는 예전에 세 번이나 비자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도사 시절에 유학을 가려고 하다가 그만 안 된 적이 있어요. 깜짝 놀랐어요. 당신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하는데, 서류상으로는 다 준비했지만 영사가 믿지 못하겠다는 것에 대해선 대책이 없더라고요. 그 당시엔 말이죠. ‘나는 착한데, 나는 약속을 어긴 적이 별로 없는데, 난 정말 공부하고 돌아올 건데’, 그게 안 통하는 거예요. 그때는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그런 소릴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냉정해지니까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과연 내가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건 내가 함부로 자신 할 말이 아니겠더라고요. 그렇지 않았으면 왜 많은 분들이 가서 안 왔겠어요. 교육이라든지 생활이라든지 여러 가지 매력이 있으니까 결국 거기에 머무르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매력이 없다면 누가 안 돌아왔겠습니까. 다 왔겠죠. 내가 그때는 난 돌아올 수 있는데라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나도 나를 알지 못하고 한 얘기였지요.

어떻게 보면 미국에 들어가는 게 참 어렵죠. 그날도 아침에 영사관에 가보니까 바로 눈 앞에서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저도 그런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저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또 가족들이 함께 와 있는 자리에서 비자가 거부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가장으로서 얼마나 황당할까요.

그런데 만약에 시민권을 받았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에 들어갈 때마다 번잡스럽게 줄 설 필요도 없잖아요. 해결된 거잖아요. 자녀들의 학비도 해결된 거잖아요. 오죽했으면 원정출산을 하겠어요. 그거 다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다 배운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도덕적인 판단과 비난을 멈추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왜 그렇게까지 할까? 뭔가 그렇게 해서 얻는 유익이 크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원정출산을 왜 하는 거예요? 거기 가서 낳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속지주의니까. 얼굴색이 어떻든지 배웠건 안 배웠건 관계없이 낳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물론 요즘 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이거 아주 중요한 거예요. 낳기만 하면 된다.

믿음에 대해서 갖는 오해가 있어요. 저는 어려서 욕을 함 마디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희 집에서 욕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한평생 부모님이 욕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도 욕할 생각도 못했고, 학교에서 애들이 욕을 하는데 참 이상했어요. 하나 더 놀라운 걸 알려드릴까요? 저는 유행가를 부른 적이 없어요. 적어도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사회에 나와 보니까 유행가를 너무 모르는 게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군대 들어가기 전에 단단히 맘먹고 준비한 노래가 두 곡 있습니다. 좀 수준 높은 자리에서는 오 솔레미오를 부르고 놀자판에서는 비장의 무기로 닐니리 맘보를 열심히 연습해서 탁 준비해놨어요.

어려서부터 교회를 가려면 시장을 지나가야 되는데 그때마다”‘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서 소문이 났었어요. 인사 잘 하는 아이로.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전 어떻게 생각했냐면 믿음을 착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건 아니었어요. 또 실상 착한 것도 아니에요. 제가 여러 번 고백했습니다만 우리 부모님이나 알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비밀이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에서 하는 가게 돈통에서 돈을 훔치기 시작했어요. ? 만화에 미쳐가지고. 만화는 보고 싶은데 돈을 벌 수 는 없고. 제일 쉬운 방법이 깜깜한 밤에 나가서 가게 돈통을 뒤지는 거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4년을 온전히 만화에 인생을 쏟아 부었죠. 나쁘다는 걸 번연히 알죠. 그러나 그 유혹이 일어날 때 도저히 못 끊는 거예요. 착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나 착하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이게 믿음이려니 생각했던 거예요.

여러분, 그거 아닙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있다? 믿음이 있어서 열심히 일할 수도 있지만 제 기분에 열심히 일할 수도 있는 거예요. 또 헌금을 많이 한다. 진정한 회개는 돈주머니가 회개해야 된다고 그러잖아요. 하나님이냐 돈이냐 이렇게 묻잖아요. 얼마나 돈이 우리의 인생을 쥐고 있어요. 자기 것을 내어드린다는 건 대단한 것이긴 해요. 뭐 전혀 믿음 없이 그렇게 하겠어요. 그건 아니죠. 그러나 그대로 믿음과 연결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는 말이에요. 생각해봐야 된단 말이에요. 또 뭔가 일을 맡기면 아주 철저하게 하는 분이 있어요. 그것도 믿음하곤 조금 구분해야 돼요. 원래 기질이 그럴 수도 있고 성격이 그런 거예요.

그럼 믿음이란 뭐냐.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그랬어요. 이것을 쉽게 풀면,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이란 예수를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내 마음에 모심으로 새 생명이 시작되고 구원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에요. 한평생 예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예수를 바라보며 사는 거예요. 그 안에 모든 답이 있어요. 골로새서 2 3절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담겨있다.’

한국의 경부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간판이 하나 보이죠. ‘Jesus loves You.’ 그리고 간판 아래쪽에 고려은단이라고 쓰여 있어요. 대단한 회사예요. ? 회사 광고판에 ‘Jesus loves You.’ 라고 쓰다니! 이건 굉장히 중요한 고백이에요. 여러분, ‘God loves You.’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그 말이 맞아요. 그러나 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Jesus loves You’ 에요. 서양사람들에게 ‘God’ 하면 보통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연상해요. 그들은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문화권 속에서 하나님은 복잡해요. 안 믿는 사람들도 저 하늘에 하나님은 계시다고 생각하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자기의 사랑을 드러내신 하나님, 그분을 믿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Jesus loves You’ 이렇게 말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구원의 시작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

흔히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 말을 오랫동안 이해 못했습니다. 아니, 나는 그래도 착한 편인데, 평균지수를 보면 그래도 착한 편인데, 뭐 잘못을 했어도 내 안에서 잘못했지, 저는 남을 때려본 적이 딱 한번 있어요. 군대에서도 단 한번 안 때렸어요. 제가 맞기는 했어도 제 졸병들을 한번도 안 때렸어요. 그러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말이에요. 그거 참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여러분, 무슨 죄인지 아세요? 영적인 무지예요.

30년 됐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셨을 거예요. <어둠의 자식들>이란 책이 있었어요. 제가 초저녁에 그 책을 잡았다가 그 밤을 홀딱 새웠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시골에서 아가씨들이 가난을 벗어보려고 보따리 하나 싸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오면 서울역광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야말로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채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거 실화잖아요. 대우건설 빌딩 뒤가 양동이잖아요. 옛날에 거기가 다 창녀촌이잖아요. 시골에서 올라오는 아가씨들을 순식간에 막 낚아채가지고 그 길로 끌고 들어가면 거기서 못나오는 거예요. 그 인생이 그냥 꺾여버리는 거예요. 엄청난 사건이에요. 인생이 송두리째 꺾이는 거예요. 거기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포기하고 거기에 동화되어 살다가 이번에는 자기가 한 팀을 이루어 나가서 또 다른 연약한 아가씨들을 붙들어와요.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몰라요.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영적 현실을 성경이 말해요. 에베소서 2 1절에서 3절에 뭐라고 얘기합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끊어진 우리들, 고아와 같이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아요.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우리를 붙들어서 세상풍속을 따라 살게 해요. 자기 욕심에 매여 살게 해요. 그러다가 멸망 가운데 빠지게 한다. 이게 엄연한 영적 현실이란 말이에요. 이런 것을 모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모르고, 하나님이 나를 빚으신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나에 대한 계획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상을 좇아 산다. 그럼 어떤 배운 분들은 아이고, 점치고, 관상, 사주팔자, 궁합, 택일, 그거 미련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물론 미련한 사람들이 하죠. 못 배운 사람들이 하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에요. 영적으로 불안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은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릴 것 없이 다 좇아가게 돼 있어요.

목사님이 사장님 집에 심방을 갔어요. 큰 아파트 거실에 앉다가 깜짝 놀랐어요. 자기가 앉은 앞에는 십자가가 있는데 둘러보니까 뒤쪽 벽 큰 액자에 자를 좍 내려 쓴 걸 걸어놓은 거예요. ‘아니 이게 뭡니까?’ 그랬더니 참, 너무 천진난만하게 솔직하신 사장님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아무라도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분 아니면 저분 아니겠습니까 하고 양쪽 벽에 걸어놓은 거예요. 이게 영적 무지예요. 이게 우상숭배예요. 그러나 더 심각한 우상숭배는 우리 마음의 욕심이에요. 우리 마음의 욕심을 돌에다 입히고 나무에다 깎아 세운 게 우상이잖아요. 결국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욕심을 형상화한 거예요.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숭배예요. 하나님이 지으셨건만 하나님을 외면하고 내 인생 내 것이라고 부르짖고 그렇게 살겠다고 덤비고 나가는 것이 우상숭배란 말이에요. 그 결과 어떻게 됐어요. 그래, 행복합니까? 아니요, 곤고하고 피곤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거예요.

요즘 한국에 이런 유행어가 있다고 해요. 초식남.’  무슨 채소만 먹는 남자가 아니라, 초식동물은 부드럽잖아요. 그러니까 부드러운 남자라는 거예요. 요즘 남자들의 이미지가 힘 빠진 부드러운 남자, 그게 뭐냐? 다른 사람의 일은 관여하지 않고 그저 자기 직장일과 취미생활에 푹 빠져서 사는 남자. 심각한 건 뭐냐 하면 여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남자를 초식남이라고 그래요.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들도 그렇대요.

여자들의 별명은 뭐냐 하면, 건어물녀 래요. 마른 오징어 같은 여자라는 뜻이에요. ? 직장에 가면 일 잘합니다. 능력 있어요. 그런 여자들을 알파걸이라고 그러잖아요. 아주 실력을 인정받아요. 아무리 그래도 피곤하지 않겠어요. 집에만 돌아오면 문 딱 걸어 잠그고 옷 다 벗어젖히고 머리를 그냥 고무줄로 질끈 묶어버리고 츄리닝 바지 입고 맥주 한 캔에 오징어 뜯으면서 TV 보는 거예요. 밖에 나가는 것도 다 귀찮아요. 남자도 귀찮아요. 너무 삶이 피곤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쏟을 힘이 없단 말이에요. 우스개로 이렇게 말합니다. 연애세포가 다 말라버렸다. 그러니 애를 낳겠어요. 이게 우리의 현실이란 말이에요.

성경은 더 분명하게 얘기했어요. 노아 홍수 사건을 얘기할 때 자녀들이건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깊이 빠져 사는 자들을 뭐라고 표현했느냐. ‘육체가 되어버렸다그랬어요.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형상을 다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와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본능을 따라 사는, 욕심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런 인생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영적 쓰레기죠. 쓰레기를 쌓아놓는 사람 봤어요? 얼마나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요. 빨리빨리 치워야 되잖아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끊어진 인생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쓰레기예요. 세상을 더럽게 하고 악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 쓸어버린 거예요.

여러분, 혹시 하나님이 오늘 밤 나를 데려가시려고 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 왜 나를 부르십니까? 다른 사람은 돼도, 나는 안 됩니다. 저 옆집 사람이나 데려가십시오. 나는 안 됩니다. 내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내가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인데, 나는 좀 더 살아야 되겠습니다할 분 있어요? 아니요. 오늘 숨쉬고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이에요. 헤아릴 길 없는 은총이에요. 이런 감격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그렇다면 십자가는 뭘 말하느냐?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 그 양면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인이 온전히 그 앞에 설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다 죽는다. 이게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었어요.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심판 받아요.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가 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죽으신 거예요. 중동에서는 양을 잡아 죽이잖아요. 양이 무슨 죄가 있어요. 주인 대신 제사장이 양의 목을 쳐서 피를 뿌리는 거예요. 양과 같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셨다.

여러분 <빠삐용>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셨죠. 얼마나 탈출하려고 애를 씁니까. 그 사람이 억울하게 들어왔다 이거예요. 도저히 못 참는다 이거예요. 탈출하다가 붙들릴 때마다 형기가 늘어납니다. 그 영화에 참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요. 독방에 갇혔어요. 나를 왜 여기에 가두느냐고 소리소리 지르다 지쳐 쓰러져서 잠이 들었어요. 꿈을 꿉니다.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여기가 어디냐 헤매면서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 검은 두건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내려쓴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앉아있어요. 재판관들이죠. 마치 저승사자 같이 앉아있어요.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라고 소리 지릅니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무죄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합니다. ‘너는 네 인생을 허비했다. 너는 유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빠삐용은 고개를 떨구면서 중얼거립니다. ‘그래 나는 유죄다, 유죄.’

여러분, 우리의 죄는 다른 거 아니에요. 과연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은혜 가운데 살고 그 뜻을 따라 살지 못하면 우리는 죄인이에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양과 같이 제물이 되셔서 그 피를 뿌리시고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셨다. 오늘 에베소서 2 1절에서 11절 말씀을 참고해 보면 더 놀라운 사건이 있어요. 이렇게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세 가지를 애기해요.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그와 함께 부활하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있다. 이게 우리의 영적인 실재예요.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다른 나라를 돌아다녀도 그의 시민권은 거기에 쓰여있는 대로잖아요.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천국시민으로 사는 거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거죠.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사는 거죠. 이게 예수 이름의 권세예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생각하라.’ 헬라어로 들여다보니까 이런 뜻이에요. 이제까지는 예수님을 대충 생각한 거예요. 한번 제대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생각하고 그분을 새롭게 발견하라 그런 말이에요. 얼치기 신앙을 버리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벗어버리고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따라가라. 경주자와 같이 네 남은 인생을 달려가라.

여러분, 이승엽 선수를 다 아시잖아요. <요미우리 자어언츠>는 일본의 최고 팀인데 거기서 4번 타자를 한다니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참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렇죠. 슬럼프도 있고 어려움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반가운 얘기가 있어요. 요즘 홈런포를 터뜨리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어제 자기가 쏘아 올린 홈런은 가장 완벽한 홈런이었다고 말하는 거에요. 원래 홈런이 잘 안 나오잖아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때로는 잘 안 돼가지고 2군으로 내려가기까지 하잖아요. 그 얼마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겠어요. 그런데 우리 프로팀 코치 중에 한 사람이 코치 연수를 하러 바로 그 팀에 들어갔었는데 이승엽을 지켜보면서 조언을 했다는 거예요. ‘힘 좀 빼라. 너무 치려고 하지 말고 힘 좀 빼라.’ 소위 ‘relax타법이래요. 힘을 쭉 빼고 슬로우 비디오 보듯이 공을 끝까지 보고 천천히 때려라. 그 말을 따랐는데 이렇게 펑펑 터지고 있다.

여러분, 힘 좀 빼세요. 막 내가 하려고 하면 주님이 일하실 수 없어요. 절대 못해요. 믿음이란 뭐냐 하면, 이 세상 사는 것이 내 힘, 내 지식, 내 능력으로 사는 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로 사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여러분이 귀신을 이길 수 있어요? 못 이겨요. 누구도 못 이겨요. 그러나 간단한 방법이 있어요. 예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예수 이름을 찬양하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거예요. 그걸 아셔야 돼요. 또 우리가 살다가 낙심하잖아요. 지치잖아요. 사실 일이 많아서 지치는 게 아니에요. 마음의 상처가 쌓여가지고 지치는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의 수치를 끝까지 참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어요. 죽을는지 살는지 몰라요. 밖에서 들리는 소문에 사도 바울 선교팀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하나님 빨리 풀어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또 다른 선교팀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거예요. 저 교회보다 우리 교회가 이 틈에 더 잘해야지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사도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나야 죽든지 살든지, 감옥에 매여 있든지 풀려나든지, 그건 아무 관계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를 전하든지 혹은 경쟁하는 마음으로 시기심으로 욕심을 예수를 전하든지, 그저 예수가 전해지고 그리스도가 전해져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만 한다면 나는 만족하겠노라.’ 이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제가 우리 교회 모든 분들에게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딱 하나밖에 없어요. 저나 여러분이나 그저 이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는 거예요. 나는 어찌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리스도 예수가 드러나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형편을 아시기 때문에 로마 감옥에 집어넣지도 않아요. 너무 기뻐가지고 복을 부어주셔요. 그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 내가 복을 받아가지고 넘쳐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잖아요. 내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되고 내 마음에 기쁨이 있을 때 말 한마디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잖아요. 꼭 돈으로 밥 사주는 것만이 구제가 아니라니까요. 고아원에 돈 갖다 주는 것만이 구제가 아니에요. 좀 환한 얼굴로 사세요. 밝은 얼굴로 사세요. 그게 가장 구제 중의 구제예요. 저 사람을 보니까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묻고 싶다, 이게 구제란 말이에요.  

정말 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래, 내가 예수 믿기를 잘 했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리고 여러분의 남편, 아내가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상대방에게 이유를 묻지 마세요. 그거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내가 주님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워지는 것, 그것만이 해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