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평안을 주노라[둘째 딸=날마다 아빠 목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28. 20:41

090628 평안을 주노라     설교집Ⅵ <얼굴과 얼굴로> 1[아바 아버지여]-2

성경본문

21.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요한복음 14:25-28)

 

6.25전쟁을 기록한 여러 가지 책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 <The Coldest Winter, 가장 추운 겨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6.25 전쟁 발발 이후의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은 모두 맥아더 장군의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전세는 역전되어 국군과 미군과 UN군이 북진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중공군이 개입합니다. 그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미군들이 퇴각하기 시작하죠. 그때 일어났던 전투가 함경남도 장진호를 중심으로 한 전투였습니다. 중공군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혹독한 겨울과의 싸움이었지요. 미해병 1연대가 싸움에서 용맹하게 싸웠습니다만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게 돼요. 당시 뉴욕타임즈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의 최대 참패였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군이 참패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결정적으로 맥아더의 오류였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8군사령관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하기로 했는데 맥아더는 10군단장에게 별도의 임무를 부여해서 지휘권이 나눠지게 되었고,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을 담당했던 10군단을 인천에서 다시 돌려가지고 원산으로 진출해서 북진을 하게 하면서 보급로가 길어져 작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기서는 맥아더를 아주 고집쟁이이며 상황인식을 잘못하고 있는 독선적인 지휘관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부하들은 열심히 싸웠는데 지휘관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전략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라고 하는 거예요.

특별히 이 책은 6.25에 끼어든 모든 당사국들이 결정적으로 오판을 했다고 봅니다. 전쟁이란 애당초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은 아주 독특한 전쟁이다.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이 그만 실언을 했어요. 한국을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제외한다. 스탈린이 오판했어요. 쳐내려 가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구나. 그래서 쳐들어온 거예요. 김일성도 오판했어요. 서울을 점령하고도 3일을 머물렀어요. 그냥 밀고 내려왔으면 다 점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오판했느냐. 우리가 쳐내려 가기만 하면 남한의 노동자, 농민이 다 들고 일어나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맥아더도 오판했어요. 우리가 쳐 올라가도 중공이 감히 개입하지 못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모택동도 오판했어요.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중공군이 맨손으로 밀고 내려가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지휘자들의 오판이에요. 욕심으로부터 전쟁은 시작됐어요. 그러나 전쟁의 과정은 당사자들의 오류로 뒤범벅이 돼버렸어요. 그 결론은 처절한 파괴와 파멸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송두리째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인간의 욕심과 무지와 오류의 연속인 전쟁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전쟁이라는 것은 이유도 없이 다 빼앗는 거죠. 서로 죽고 죽이는 거죠. 처음에는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싸웁니다만 나중에는 이기기 위해서 싸우다가 피에 도취되어가지고 맹목적으로 죽고 죽이고, 나중에는 승자나 패자 모두 전쟁의 상처 가운데 얽매어서 파멸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고난을 통해서 인간의 교만이 깨어집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게 돼요.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난가야 합니까. 민족대이동이 시작된 거예요.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이동이지만 살기 위해서 떠나간 거예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웁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거예요. 한국복음화에 전쟁만큼 기여한 게 없어요. 그때까지 기독교 하면 주로 황해도, 평안도 지역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다 피난 내려오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지면서 교회를 세우게 됐던 거예요. 하나님께 부르짖게 됐던 거예요. 복음이 전파되었던 거예요.

9.28은 서울을 수복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저는 한 가지 더 기억합니다. 1950 9 28일은 서울이 수복된 날이기도 하지만 손양원목사님이 순교하신 날이에요. 그 분은 일제 말에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5년 옥살이를 해요. 해방과 함께 극적으로 생명을 되찾았어요. 소록도의 나환자들과 더불어 교회를 세우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잖아요. 여수와 순천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이 희생돼요.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서 총살당해요. 나중에 여순반란사건이 진압되고 그 주모자가 붙들려 감옥에 들어갔을 때, 손목사님이 그를 찾아가게 돼요. 그를 양자로 받습니다. 6..25전쟁 와중에 공산군들이 인천상륙작전 때 퇴각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을 사살한 거죠.

그 분의 마지막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피 흘리며 죽게 되었을 때, 하늘을 열고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하늘보좌와 그 우편에서 저를 향하여 팔을 벌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그는 고통을 넉넉히 잊고 오히려 자기를 향하여 돌 던지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면서 천사의 얼굴을 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듯이, 손목사님에게도 그런 은혜를 주셨다고 믿어요. 순교라는 것은 내가 순교하겠다고 다짐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것은 준비된 사람에게 그 시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만 현실의 고통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죠.

전쟁의 역사 속에 수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의 복잡한 이해계산이 있었어요. 그것으로 인해서 전쟁은 일어났고 진행됐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 속에 몰아넣었어요. 그러나 그런 속에서 희생자가 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주님의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두려워하지도 말고 근심하지도 말라.’ 그러면서 약속을 하셨어요. ‘내가 이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후에 하나님께 구하여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리라.’ 지금은 전쟁상황이 아니죠. 우리가 다 순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죠. 시대가 다르죠. 저들은 전쟁과 고통 속에서 가정과 일터와 주어진 여건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려야 되죠.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전쟁이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전쟁이죠.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아니면 넉넉히 이길 수가 없죠.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 성령이 누구시냐. ‘내가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구하여 보낼 성령,’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칼 바르트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 오신다. 첫째는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둘째, 세상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재림주로 오실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몸을 벗고 성령으로 교회 가운데 오실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 말씀하셔요.

오늘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라고 했습니다. 보혜사 라는 말은 우리를 보호하고 은혜로 이끄시는 분이다. 또 다른 구절을 보면, ‘도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리라.’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는 말음 보혜사가 또 계시다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보혜사예요.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예요.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우리를  지키시고 진리로 이끌어주신 일인데 성령께서도 그 일을 하신다, 그런 말이죠.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성령이 와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을 오늘 얘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래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있었을 때, 가장 놀라운 증거는 어떤 것이냐 하면, 방언이 아니에요 그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게 무슨 일이냐 하고 주목하게 한 수단이에요.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결론이 이렇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듣고 읽었던 구약의 모든 말씀이 증거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내가 오늘 그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됐다. 사람들이 못박아 죽인 그 예수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주님이 되게 하셨다. 이게 결론이에요.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빨리 졸업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그 바램의 이유 중 하나는 수학이 너무 어려웠어요. 저는 인수분해는 잘해요. 인수분해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데 인수분해만 넘어서면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했어요. 그러면 수학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질 것 같아서. 대학을 갔더니 교양수학이 또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잘못 배운 것 같아요. 수학이라는 게 생각하는 논리를 배워야 되는 거잖아요. 사실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싶었어요. 미분과 적분이 뭘 의미하는 겁니까? 그것을 가르쳐주는 수학 선생님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시 공부한다면 그것을 알고 싶어요. 숫자만 푸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왜 수학이 나왔으며, 왜 수학을 해야 되며, 그런 걸 좀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왜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를 알려주시는 거예요.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떤 자그마한 체험과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그걸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흔히 교회에서 성령충만하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특별한 체험이 성령충만입니까? 성령충만의 한 표현일 수 있지만 본질을 이야기한다면 성령은 예수가 누구신가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밝히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므로 내 인생의 결론이 오직 예수로 내려진 사람, 이게 성령충만이에요.

빌립보서 3 8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부끄럽지만 내가 자랑 좀 하겠습니다. 나는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스스로 생각해도 흠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요, 공부로 말하면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최고의 학자 밑에서 최고의 제자로 공부한 사람이요, 학문에 있어서나 신앙적인 열심에 있어서나 집안의 문벌을 따지거나 조금도 뒤질 바 없는 사람이오. 그런데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이제까지 자랑해왔던 모든 것들이 배설물과 같았다.’ 배설물이라는 건 굉장히 점잖은 표현이잖아요. 영어로는 도대체 뭐라고 했는가? 그랬더니 쓰레기라고 했어요. 쓰레기보다는 배설물이 더 확실한 표현이죠. 똥이란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그래도 이거 내 몸에서 나온 건데 이걸 버릴 순 없지, 여기다 잘 모셔놔야지합니까? 자기가 한평생 누려왔던 집안과 학문과 경험과 열심과 의를 몽땅 다 묶어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오히려 배설물이다. ? 이것 때문에 예수님을 내가 제대로 만나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야 학식이든 경험이든 열심이든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성령충만이라는 말이에요. 오직 예수. ? 예수 이름을 부를 때에 악한 영의 권세가 무너진다. 사람이 귀신을 못 이겨요. 그러니까 귀신 들리잖아요. 그런데 예수 이름을 부를 때에 모든 악한 권세들이 무너진다. 이게 바로 예수 이름의 비밀이죠.

두 번째는 예수님이야말로 정의로운 분이에요. 우리가 왜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어요? 하나님이야말로 공평하신 분이잖아요. 우리가 왜 하나님께 기도해요? 하나님만은 정의로우신 분이잖아요. 하나님만은 진실을 아시잖아요. 마지막으로, 그분은 날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아무리 권력이 많고 아무리 정의롭다 할지라도 그분이 나를 모른다면 그게 나하고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렇게 권세 있고 공의로운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게 성령충만이에요.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세요. 말씀을 펴서 읽을 때에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요. 제가 34일 람뿡을 갔다가 금요일 밤 늦은 시간에 왔는데요, 집도 한 34일 떠났다 오니까 낯설더라고요. 여러분은 그런 경험 없으세요? 집도 낯설어요. 그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이 원래 샤워하는 거잖아요. 몸을 씻는 의미도 있지만 밖에서의 모든 기억을 정리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 거죠.

샤워한 후에, 4년 전에 받은 옛 편지를 한 장 발견했어요. 다시 읽게 됐어요. 둘째 딸이 미국에 가서 저에게 처음 보낸 이메일이에요. 제가 그때 그것을 소중히 여겨 프린트해가지고 있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잃어버렸다가, 우연찮게 집에 와서 낯설어 하는 제 눈에 딱 뜨인 거예요. 편지 첫머리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한마음교회는 모두 다 평안하신지요? 교회가 평안한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 가서 지금 자기 코가 석자인데 그럴듯하게 인사말을 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서 알게 됐고,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쭉 이야기하면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기도해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시골에 있는 대학에 다니다가 미국 대학에 와보니 여기는 너무나 과분한 학교예요.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는 신기해요. 똑같은 것도, 변변찮은 것도 감사하면 한순간에 보물이 돼요.

마지막 인사가 제 마음을 울렸어요. ‘날마다 아빠 목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슴이 찡 하더라고요. 다음 주부터 공부하려면 영어도 잘 안 들리고 이제 큰일 났는데도 불구하고 잠깐 그걸 내려놓고 아빠 목회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그래서 , 이게 사랑이구나. 이게 가족이구나.’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얼굴로 대하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마음으로 그 사랑을 송두리째 받았어요. 그 글을 읽는 순간 잊어버렸던 사랑이 일어나고 새로운 용기가 솟아오르고 그래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구나. 내게 주신 이 사명을 제대로 해야 되겠구나,’ 다짐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이고 전능하신 분이고 모든 게 다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꼭 여러분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의 열심을 필요로 하는 곳도 아니에요. 단 하나, 마음이에요. 다 아빠가 준 것이지만 고맙다는 그 말  한마디에 준 사람이 너무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감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성령충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 사랑을 발견할 때에 두려움은 물러가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고 우리 과거는 은혜로 이해되고 미래는 소망으로 다가오고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거예요.

날마다 아빠 목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게 뭐겠어요? 저와 생각과 방향과 삶을 같이 하겠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성령충만은 사도행전 1 8절에 있는 말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과 방향을 같이하고 나아가는 사람, 회사에서 발령 나서 주재원으로 나오신 분들 많잖아요. 그게 싫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사표 내야지.

오늘 여기에 머물러 사시는 분은 하나님이 이리로 발령 낸 거예요. 일단 여기로 발령이 난 사람은 어디로 갈까 궁리하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 소관이에요. 사람들이 일을 거꾸로 해요. 여기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건강을 가지고 넘치도록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오늘 주님이 말씀하셔요. 전쟁 때이건 일상적인 삶 속에서건 진정 너희에게 필요한 평안을 주노라.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 안에 이미 성령이 계셔요. 성령이 어디 계시는가? 온전한 순종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성령은 역사하신다. 자꾸 내 입맛대로 구하지 마세요. 이미 하늘이 활짝 열려 있어요.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의 솜씨를 노래하고 있어요. 강단을 통해서 바로 나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평안을 누리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