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롬 8:31-39)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킨 바사왕 고레스 왕은 인품이 훌륭한 덕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적들을 가혹하게 다루지 않고 유화정책을 펼쳐서 늘 적들을 포용했던 인물이랍니다.
고레스 왕이 한 번은 어떤 이웃나라를 정복했는데, 그 나라의 왕과 왕비와 그들의 자녀들이 사로잡혀 왔습니다. 왕이 그들을 친히 심문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들을 죽이기가 너무 아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적국의 왕을 향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만일 그대를 살려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적국의 왕은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또 물기를 "그러면 내가 그대의 자녀들을 다 풀어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자 적국의 왕은 "그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대의 왕비를 살려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자 적국의 왕은 스스럼없이 말하기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제 목숨을 기꺼이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고레스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감동을 먹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바치겠다는 적국의 왕의 말이 그를 감동케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에게 명령하기를 "여봐라! 이 사람들을 다 풀어주어라.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들이다." /할/
그렇게 해서 모두 풀려나게 되었는데 오면서 왕이 왕비에게 "과연 듣던 대로 바사왕 고레스는 훌륭한 덕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전 세계를 제패할 것입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인물도 그렇게 출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그러자 뜻밖에도 왕비는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전연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라도 아끼지 않고 바치겠다고 하는 한 믿음직한 남자의 얼굴을 황홀하게 쳐다보느라고 그 외에 다른 곳에는 전연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들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두어야 하고,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왜?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 ◀제목소개!▶
로마서는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1-11장까지는 교리서, 12-16장까지는 윤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리부분의 전반부에서는 무엇을 믿느냐하는 문제를 다루었고, 후반부의 윤리부분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믿느냐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자연적으로 해결됩니다. 그런데 교리부분은 1-11장 중에서 9-11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어 실제적인 교리는 8장에서 끝이 납니다.
다시 말하면 신학의 진수인 이신 칭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 교리는 8장에서 설명이 끝납니다.
오늘 본문 8장 부분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교리에 대한 송영입니다.
바울은 1;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 소원대로 바울은 지금까지 로마 교인들에게 자상하게, 또 깊이 있게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의 비밀을 다 밝히고 난 그가 가슴에 끓어오르는 감격과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어 터트린 고백입니다.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두 개의 질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질문은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입니다. 너무 감격하면 말문이 막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더 이상 할 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만큼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님이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있다면 "아멘! 아멘!"하면서 감격 가운데 이 말씀을 받을 뿐일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극도의 기쁜 심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렇게 좋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일을 당하면 말문이 막힙니다.
또한 최고로 기쁘고 감격할 때, 흔히 표현하기를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표현을 씁니다. 젊은이들은 "화끈하다. 미치겠다"는 표현을 씁니다.
"무슨 말하리요" 이 감격에 할 말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다섯 가지 형식을 빌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⑴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⑵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⑶그 이름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⑷누가 우리를 송사 하리요! ⑸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얼마나 벅차고 얼마나 확신이 가면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윗 왕의 고백을 잘 압니다. 시23;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원문에는 "나는 바랄 것이 없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소원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윗의 행복의 절정의 찬가입니다.
▶바울은 고후6;7-10절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가리켜 역사적인 진리를 여섯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하나님 안에서 수 없이 일어나는 기사와 이적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이야기 할 때마다 사람들은 허황한 억측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속이는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참된 신앙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②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당시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배우지도 못한 어부 출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세상 적으로는 유명한 자가 못되지만 그러나 지금 이들은 성경 안에서 얼마나 유명해졌습니까?(베드로)
③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기독교의 능력은 우리가 약할 때에 강해집니다. 내가 죽을 때에 주님이 강해지는 종교입니다.
④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 자들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찬455장
⑤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세상에서 참된 부자가 누굽니까? 많이 가진 사람들입니까? 주는 잡니까? 주는 자가 부잡니다. 우리는 주어도, 주어도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들입니다.
⑥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함께 한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고 주님이 없는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귀한 자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본문은 구원의 찬가이지만 그 주제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학자들은 본문을 구원의 '확신 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앞의 29-30절에서 구원의 순서인 (예정/소명/칭의/영화), 즉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행하시는데 우리가 감히 무슨 말하겠는가?
어떤 학자는 이런 세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이 일에 대하여)라고 표현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마6장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문제고, 두 번째 문제는 우리가 죄인인고로 의에 대한 문제이며, 세 번째는 환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환난을 겪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이 일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둘째 질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해서 감히 설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나서서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적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나서고 싶으면 한 번 나서보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다윗은 약합니다. 골리앗은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시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은 순식간에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대적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에게는 동족의 위험이 있었고, 이방인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도 바울을 거꾸러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선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머리에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위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가 큰 힘을 얻고 용기를 받았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카톨릭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마음에 고통이 있을 때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어 주신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여 이길 자가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를 끊임없이 대적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은 원수 마귀입니다. 오늘도 저들은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닙니다. 우리는 이 대적을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시118;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
본문의 대적하지 못한다는 말은 대적하는 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대적을 해도 하나님을 당해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아끼던 것을 내 놓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가장 귀히 여기시는 것을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값진 선물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귀하게 봅니다.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은 자가 누구입니까? 로마 군입니까? 아니면 빌라도 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렇게 아끼시던 독자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죄악 세상에 보내시고 채찍에 맞게 하시고 수모를 당케 하시고 저주의 죽음을 죽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53;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 내 놓으시고 죽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롬4;25절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후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죄 덩어리를 만들어서 처형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32절 본문을 읽어보세요! 본문의 요지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놓으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를 위해서 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어린아이라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큰 것을 주면 그 보다 못한 것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내어놓은 사람은 덜 귀한 것은 쉽게 내어놓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가장 큰 것 가장 귀한 것인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나머지들은 자연히 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여기서 '모든 것'은 '물질도, 건강도, 재능도, 조건도, 환경도, 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단 언제 주십니까? 우리가 원한다고 주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필요할 때, 하나님이 보시고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고 걸어가기만 하면 주십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부모에게 3천 만 원을 달라고 하면 부모가 주겠습니까? 안줍니다.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 "아버지 제가 3천 만 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부탁하면 돈이 있는 부모라면 "3천 가지고 그런 사업을 할 수 있겠니? 5천은 필요하겠구나" 주십니다. 능력이 없다면 안 주십니다. 그러나 능력 있는 부모는 다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분이십니다.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시기를 주신다고 했고, 만나 주시겠다고 했으며 열어주신다고 했습니다. /할/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여기 송사란 법정 용어로써 고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감히 누가 송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간음한 여인을 잘 압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끌고 온 무리를 향하여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할 때, 모두 다 그 현장에서 떠나갔습니다.
그 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시고 "너를 고소한 이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인은 감격하여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감히 사람들이 송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번 죄 없다고 선언해 놓으셨는데 누가 감히 죄 있다고 정죄할 수 있습니까? "의롭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세상 법정에서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그 이상 재판권을 가진 법정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송사를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감히 누가 송사할 수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는 특사 권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면해주라고 하면 재판장의 어떠한 형량도 별 볼일 없습니다. 여기 송사 못한다는 말은 송사할 자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송사를 해도 그 송사가 받아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는 본문에서 네 가지의 확증을 가질 수 있습니다.
①"죽으실 뿐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모두 담당하시고 나 때문에 대신 예수님이 정죄함을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대신 죽으시는 투자를 했으므로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정죄하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②우리 의를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즉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사망은 예수님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리의 옛사람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실 때,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생명이 된 것입니다.
③"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편은 존귀한 자리, 영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어떠합니까?
엡2;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우리들도 하나님은 지극히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우편이란 하나님의 오른편, 왼편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영광의 자리에 계심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우편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합니다.
④"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순간까지 기도하고 계시니 누가 정죄할 수 있습니까? 롬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왜 정죄 못합니까? 예수님께서 정죄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7가지의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환난; 밖에서 무섭게 밀어닥치는 인생 고를 의미합니다. 환난은 원래 로마시대에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던 타작 기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리깨라고 부릅니다. 땅에 곡식을 깔아 놓고 도리깨로 힘껏 내리치면 곡식알들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환난은 알곡 성도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환난은 오히려 성도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더욱 기도하게 만듭니다. 성도는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롬5;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②곤고; 안에서 일어나는 심적 고통, 즉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곤고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③핍박;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괴로움입니다. 천국 가는 길이 그리 쉽지 많은 않습니다. 그러나 찬383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주위로부터 노골적인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할/
④기근: 배고픔, 굶주림을 의미합니다.
⑤적신: 벌거벗음입니다. 로마 당시만 예수 믿는 자들을 끌어다가 황무지로 데려가 거기서 굶주리며 벌거벗고 살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⑥위험: 아찔아찔한 위기입니다.
⑦칼: 권력 앞에 죽는 것을 말합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칼 앞에 죽어 갔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서 죽었고,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초대 300년 동안 로마의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순교를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을 보고 그 당시 황제 '율리아누스'는 "그대 갈릴리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순교자들 중에는 약하고 어린 부녀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36절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시44:22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우리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극심한 고난을 겪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고난도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결코 끊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미리 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미리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까지 와있습니다. 이제 남은 한 단계는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감히 그 누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나설 수가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말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을 모두 합친다 할지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겪는 고난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후의 승리와 영광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7절을 한번 힘차게 읽어봅시다.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에 큰 힘을 부여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투쟁의 연속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군인은 싸움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①악의 세력들과 싸워야 합니다. 엡6;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②생활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전쟁입니다. ③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세상의 문화를 탕자의 문화로 비유합니다. ④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롬7;19-20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했습니다. 죄와 싸워야하고 거짓과 우리는 싸워야합니다. 이런 싸움에서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는 없습니다. 누구의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이길 수 있습니다. /할/
⑴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자! 우리의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큰 성을 빼앗는 것보다 어렵다고"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쳐 복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매일 십자가에서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②세상에서도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탕자의 문화가 우리를 유혹해도 우리는 굳건히 이겨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가 있습니다.
③원수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싸움에서 무너졌습니다. 다윗도 한번 무너지고, 삼손도 무너졌습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가롯유다도 이 마귀에게 넘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 이길 수 있습니까? 엡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자가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④환란도 이깁시다. 환란을 이기는 길은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세상에는 두 가지 영웅이 있습니다. 하나는 힘을 가진 영웅이 있습니다.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같은 사람이 바로 힘의 대표적인 영웅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힘의 영웅들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는 정신적인 영웅이 있습니다. 무저항주의 간디, 베토벤, 톨스토이, 슈바이처 등은 정신적인 영웅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파수자요, 평화의 수호자요, 문명의 건설자이며, 자유의 기수요, 정의의 사도들입니다. 이런 영웅들에 의해서 역사는 발전되고 사회는 건설됩니다. 우리 주님은 진리의 파수 잡니다. 오늘 주님의 진리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세상을 이기십시다. /아멘!/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은 본문을 시작할 때 '누가'라는 말로 시작했고,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말씀을 거쳐서 이제는 '내가 확신하노니'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가 겪었던 모든 고난들이 끝나고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 없이 여전히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열 가지 예를 들었는데 그 가운데 여덟 가지는 서로 두 가지씩 짝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 두 가지는 짝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나타납니다.
①사망이나, 생명이나: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떠한 사연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사망과 생명은 극적인 대립입니다.
②천사들도 권세 자들도: 천사는 선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권세자는 악한 영, 악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존재들, 곧 그것이 선한 존재이든지 악한 존재이든지 간에, 어떠한 존재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결코 끊지를 못합니다.
③현재일이나, 장래일: 현재로부터 장래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어떠한 사건과 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④능력으로도: 여기서 능력은 짝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능력도, 그 어떠한 권세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끊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행하는 능력은 술사들의 능력입니다. 바로가 바로 이런 능력을 따라했습니다. 모세가 열 가지 재앙을 퍼부을 때 바로도 따라서 행했습니다.
⑤높음이나, 깊음도: 살아가다 보면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게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10;28-29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⑥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피조물 전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직도 우주는 넓고, 높고, 깊어서 무한한 신비와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지식으로도 모르는 일이 많습니다. 그 어떠한 신비로운 사건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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