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50강)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엿노라! (롬 15:14-21)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31. 07:11

《제50강》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14-21)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소련의 반체제 운동가라는 죄명으로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 하루에 12시간씩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가족까지 잃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그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들고 있던 삽을 집어던지고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신음하며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 자기 곁에 다가선 것을 느꼈습니다. 전혀 본적이 없는 노인이었고, 그 후에도 다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노인은 막대기를 가지고 솔제니친 앞에 있는 모래밭에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 십자가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보는 순간에 그는 세상에 있는 어느 권세보다도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 능력이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1년 후 석방되었고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생명을 소생시키는 힘입니다. 어떤 길이 생명의 길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입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제목소개!▶

 

  이제 로마서의 강해도 서서히 끝이 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12:1-15:13절까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윤리 면과 실천면을 말하고, 본문 14절부터 16장까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마감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왜 편지를 써서 보내기를 원했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번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려고 이 서신을 쓴 것입니다.

 

  ▶1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로마의 교회와 성도들이 '선함이 많고, 모든 지식이 가득하고, 능히 서로 권하는 자들임을 칭찬'하면서 바울이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서로 진리를 가르치고 권하면서 선량한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예수님을 잘 믿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이웃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더 잘하고 자신 있어지고 자기 목숨까지도 바치는 충성심과 희생정신이 발휘됩니다.
  우리는 장세동씨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호남사람으로 영남사람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 굳은 일을 도맡아 해낸 전 안기부장 출신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도 하지만 그의 충성심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어떤 잡지사 기자가 그에게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전두환 대통령에게 충성합니까?" 물었더니 그 사람은 "전두환 전대통령은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짧게 한마디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인정받을 때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몸을 던지기도 하고 생명을 걸기도 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성도들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들 언제 정신을 차리겠느냐?" 이런 꾸중이 아니라 "너희들은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너희는 선한 사람이다"라고 인정해 주고 있고, "너희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너희는 능히 서로를 세워 줄 수 있는 믿음이 장성한 성도들로 자랐다"고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 성도들은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선함'은 '마음과 생활의 착함'을 나타내는 말로써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지식'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으로써 성경을 아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왜 지음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선한 일을 하라고 지음을 받았습니다.
  엡2:10절 "너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믿/ 여기서 선한 일은 '하나님이 보시고 옳게 인정해 주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사명인줄 믿습니다.
  딤전1: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삼박자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자'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신교라고 합니다. 소위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개신교, 개혁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성경을 그대로 믿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개혁교회는 세 가지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⑴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봅니다. 곧 신구약 66권만이 우리 믿음과 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러니까 66권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믿게 하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개혁교회가 아니고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⑵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주제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할/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하고 그 십자가의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엡2: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⑶만인 제사장입니다. 16절에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다 제사장입니다. 이것은 '봉사론'입니다.
  ▶이 세 가지를 더 쉽게 표현하면 '믿음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성경'입니다. 그 기준을 볼 때 '생명은 어디서 얻느냐?' 구원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성경 해석을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못합니다. 하면 원칙적으로 파문 당합니다. 해석을 함부로 못합니다. 성경을 공개해서 읽게 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에는 평신도들은 성경을 전혀 읽지 못했습니다. 기도문도 받아 읽고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교회가 다른 점은 성경을 나누어주면서 '성경을 직접 잃어라! 많이 일어라! 성경을 묵상하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을 직접 해석해 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성도가 각자 깨달은 만큼 성경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인제사장'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열심히 말씀대로 봉사하는 자'를 말합니다. ▶모든 섬김의 도리를 감당하는 자입니다.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고,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고, ▶예수님이 명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기타 성경 속에 제시한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만인 제사장의 직분입니다. /이해가 되면 아멘!/
  여기 '모든 지식이 차서'란 말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워서 그 지식이 넘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로마교회 성도들의 신앙수준이 대단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서로 잘 믿자고 권하는 자가 되라'고 이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하'반절에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권면해서 예수를 잘 믿도록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권사님들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원래 권사는 성경에 보면 '권위자'입니다.
'권면하고 위로하고 섬기는 자'입니다.
  ▶어느 성도가 교회를 잘 나오다가 무슨 이유인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권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왜 교회에 안 나오십니까?" "저는 교회에 안 가겠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위선자들이 많습디다."하고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이 때 권사님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위선자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에 안 나오는 당신도 위선자가 가는 지옥에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보지 마시고 나오십시오. 예수님의 제자가운데서도 그런 위선자인 가룟 유다가 있었는데 그도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 불에 떨어 졌습니다."
  이 소리에 이해가 되어 다시 교회에 나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 직분 자들은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쉬고 있는 사람, 낙심에 빠져 있거나 시험에 빠진 자에게 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권면하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⑴권면할 때 그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저주가 아닌 사랑으로 해야 하고, 미움이나 분노가 아닌 동정심, 그리고 눈물의 기도가 권면하는 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⑵권면하는 자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 없는 믿음을 가지고는 남을 설득시킬 수 없습니다.

 

  ▶15절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바울이 이 서신을 쓰게 된 원인은 '이 서신을 읽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생각나게 하려고' 썼다는 것입니다.
  롬1:11-12절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고 겸손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나는 가르치는 입장이고, 너희는 배우는 입장에서 나를 따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령한 그 어떤 것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개인적인 은혜를 서로 교환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주신 은사도 있고, 저들에게 주신 은사도 있으니 서로 같이 돕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신앙생활하면서 도움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은혜'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값없이 엄청난 선물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자기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무 자격이 없는데도 너무 과분한 것을 공짜로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 발견한 은혜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구원받은 은혜입니다. /믿/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다"는 이 감격을 사도 바울은 여러 번 말하고 있습니다.
  롬3: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
  또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란 '은혜에 개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도 은사도 개별적인 것으로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의 은사를 받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기도에 은사를 받습니다. 또 구제하는 은사도 있고, 권면하는 은사도 있고, 은사가 다양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은사를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 나타나는 것은 개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할 대 나타납니다. 전할 때 나타납니다. 그래서 행함이 살아있는 믿음의 근본입니다. /믿/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잘 전하는 은사, 말씀을 잘 가리키는 은사. 심방에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이 받은 은사는 특별한 은사로 신학적인 말을 빌려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율법적 해석의 은사'라고 곽선희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 바울이 발견한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자기를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은혜입니다. ▶곧 사도로 부름 받은 은혜를 1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6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바울이 로마서를 쓰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자기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세움 받은 사도'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의 사명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느끼며 특별히 로마시의 복음 화를 소원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자기 동족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노력했고, 하나님께 애원하되 자기의 이름이 생명 록에서 지워지는 일이 있더라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달라고 애통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전도 처의 활동무대는 대부분 이방세계였습니다. 그 당시 바울은 로마시의 복음 화를 소원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세계를 장악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세계를 통한다.'고 했기에 '로마의 복음화가 곧 세계의 복음화의 첩경'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 대해 위대한 애정과 영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라는 직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귀한 직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감투는 이 땅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인정받게 될 줄 믿습니다.
  바울은 일꾼이었습니다. 누구의 일꾼인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본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일꾼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전4: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말의 의미는 '배 밑 장에서 노를 젓는 일꾼(노예)'이라는 말로 우리는 '벤허'라는 영화에서 배 밑 장에서 노를 짓는 노예들의 모습의 비참함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복종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일꾼'이란 영어 성경에는 '목사, 성직자'라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 정부의 장관을 뜻하기도 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원래 의미는 성직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결단코 하찮은 것 아닙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요, 복음을 전하는 일은 거룩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딤전1: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270장의 '카셀'은 이런 찬양 시를 섰습니다.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시는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 전하는 일은 하늘의 천사도 부러워하는 일이라고 그는 노래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얼마나 큰 영광이고 큰 은혜입니까? 천사가 흠모할 일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 만큼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하게 하사" 무슨 말인가? 복음 전하는 일은 아주 신령한 제사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제단에 제물 바치는 일을 제사장이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요, 제물은 불신자, 이방인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화목케 하는 말씀까지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십니다(고후5:19). 복음입니다.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이 그 길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이웃을 전도하여 교회에 데리고 오셨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믿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제일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이 됩니다. 불신 남편을 아내가 열심히 전도해서 예수 믿게 했다면, 아내는 그 남편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전도하여 주님께로 인도했다면 그 아들은 아버지를 제물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제사장은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출28:1,2). ▶제사장은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높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직분입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부르신 사람 아니면 아무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벧전2:9절 이하에 우리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왕 같은 제사장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너무나 고귀한 직분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세워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런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식이 투철할 때 전도의 열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
  ▶전도하면 초대교회 최권능 목사님이십니다. 신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몇 번이나 낙방을 한 사람입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열등생에 끼일만한 인물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불러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어느 날 평안북도 산골에 있는 화전민을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 화전민은 힘들게 마련한 작은 농토를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최 목사님이 그 불쌍한 사람들을 전도해야겠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전도하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바쁘다고 만나주지를 않습니다. 하루는 꾀를 내어 그 사람들이 보는 데서 '아이고 사람 살려! 나 죽는다.'고 고래고래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진한 화전민들이 놀라며 황급히 달려 왔습니다. 금세 한 오십 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그는 때굴때굴 구르면서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보니 많이 모였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때다 하고 외치기를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어야 천당 갑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이 정도로 미쳐야 합니다. 그런데 최 목사님의 소리를 들은 화전민들이 "이 영감쟁이가 돌았구먼!" 하며 두들겨 패려고 합니다. 그는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망치면서 가슴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더니 <암행어사 출두요!> 그 소리에 화전민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옛날 암행어사가 마패를 차고 출두하면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순진한 화전민들이라 너무 놀라서 전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왜 엎드렸는가? 진짜 암행어사인줄 알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마패는 노회에서 전도 잘한다고 그에게 준 기념패였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이 소리쳤습니다.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지옥 불로 던져 버리겠소!" ▶이런 장난기 어린 전도에도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큰 역사가 일어났다고 초대교회사는 밝히고 있습니다. /할/
  ▶'전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므로 은혜'라고 했습니다. 제사라고 하는 것은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 신을 섬기며 그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일은 제사장이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제사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해야 그들이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12: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할/

  ▶일꾼이 가져야 할 태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⑴빚진 자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롬1:14절에 '내가 빚진 자'라고 하여 '구원에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빚진 자로써 채무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⑵자기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딤후2:4절에 전쟁에 나간 군사가 자기를 돌아보고, 가정을 돌아본다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영적 전쟁에 나간 십자가의 군사로써 자기를 돌아보지 않아야 됩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⑶절대 복종만 있어야 합니다. 일꾼은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듯, 군인은 사령관에게 절대 복종하듯, 그리스도의 일꾼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절대 복종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믿/
  ⑷절대 헌신과 충성만이 일꾼의 바른 자세입니다.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할/
  왜 전도가 은혜인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성령의 능력을 가장 많이 자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7-18절이 그 말씀입니다.

 

  ▶17-18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에 대하여 바울은 절대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랑할만한 것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기 자랑은 절대 안하고 오직 자기를 통하여 즉 하나님이 주신 사도직의 행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습니다.
  구원운동의 성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는 갈6:14절에서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체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⑴말씀의 능력을 주십니다. 그때그때 주시는 말씀도 다릅니다. 어느 때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을 주십니다. 깜짝 놀랄 일이 많습니다.   
  ⑵표적과 기사의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손수건만 덮어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유언으로 주셨습니다.
  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면서,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믿는 자들'이란 또 다른 해석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⑶복을 전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전할 때 변화가 나타납니다. 술주정뱅이를 전도하면 새 사람이 됩니다. 깡패도 예수 안에 나오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환경을 바꾸시고, 그 사람의 인격도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저렇게 바꿔 주셨어." 우리는 이렇게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자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 세상 앞에 세우셨습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할/아멘!/

 

  ▶19절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의 첫 전도의 출발지는 다메섹이요, 선교사로 출발한 곳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는 로마 제국내의 전도 여행이 가능한 전체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편만하게 전 했다"는 말은 그 지역 모든 곳과 모든 사람에게 다 전했다는 뜻이 아니고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만의 부활하신 복된 소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전해야 합니다. /믿/
  ▶한국교회사에 보면, 고려신학교 설립자이며 경남 거창에서 목회를 하셨던 주 남선 목사님은 일제신사참배를 거부하시다가 6년 동안 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그가 8월15일 해방을 맞아 출옥을 하니 지방 사람들이 그를 애국자라고 환영하면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것을 강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 목사님은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전 하겠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6/25가 터졌는데 그는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인민군이 찾아가 교회당을 내무서로 쓸 테이니 비어 달라고 하면서 인민공화국에 협조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예배당은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위해 지은 것이니 다른 목적으로는 쓸 수 없소. 그리고 목사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 전하는 것이 사명이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안 된다"고 딱 거절을 했답니다.
  그 때 내무서원 중 제일 높은 자가 "목사님은 무슨 팝니까?" 그래서 "나는 장로 파요" "저도 장로님의 아들입니다. 목사님, 열심히 복음만 전하세요!" 하면서 떠나가더랍니다.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된 소식 십자가의 생명의 복음을 편만 하게 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믿/ 롬10:15절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할/
  ▶그런데 복음을 전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20절이 그 내용입니다.

 

  ▶20절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느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쉽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이 전도한 곳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전도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남의 터 위에'란 쉽게 표현하면 다른 교회 나가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단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남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오직 기성교회 성도들만 공략합니다. 또 우리나라 교회의 문제는 큰 교회에서 이런 짓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미 세워진 교회 옆에다가 교회를 또 세우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에 개척을 많이 하다보니 한 건물에도 여러 교회가 들어서고, 마주보고 들어서고 그럽니다. 어느 때 세상 사람들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바울사도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빌립보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그는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개척자의 삶을 산 것입니다. 바로 사명자의 삶을 산 것입니다.

 

  ▶21절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52:15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지 않으냐?'고 하면서 절대로 남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거나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서 전할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선언입니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는 기본이고 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초신 자들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위대한 일에 앞장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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