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강》 바울의 선교의 열정! (롬 15:22-33)
전도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에게는 몇 가지 복음 관이 있습니다.
⑴복음의 절대성: 이 말씀은 복음을 절대적 진리로 믿었기에 전도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이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⑵복음의 긴급성: 전도의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 어찌나 세상이 험악한지 아침에 인사 잘하고 나간 집안 식구가 저녁에 시체로 영안실에 누워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교통사고, 강도, 다리가 무너지고, 육교가 무너지고, 가스가 터지고>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를 모릅니다.
생명이 붙어 있을 때,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큰복입니다. /믿/ 또 복음의 문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닫힙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임박해 오고 있는 긴급 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마음속에 긴급 성을 느껴야 합니다.
⑶복음의 확실성: 신앙에 있어서 희미한 태도는 어떠한 일도 못합니다. 〈구원의 확신, 은혜의 확신, 능력의 확신, 축복의 확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뭘 해도 합니다. /할/
⑷복음의 사명감: 바울은 이방 사람에게 보냄을 받고 베드로와 요한은 히브리 사람에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보냄을 받았다고 믿는 것이 사명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성림교회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 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이 사명입니다. 또 우리는 교회에 모여 '말씀을 받고,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 흩어져 나가야 합니다. 어디로 보냄을 받았습니까?
가정으로, 직장으로, 시장으로, 어딘가 분명히 보냄을 받았습니다.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멘!/ ◀제목소개!▶
본문의 바울은 예수님이 불러 세울 때, 처음부터 이방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열두 제자들을 파송할 때는 사마리아는 이방 땅이라고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너희는 이스라엘에 잃어버린 자를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니까 각 사람마다 전도의 지역과 전도 방법이 다 다릅니다.
바울은 최초로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구브로로 걸어갔습니다. 그때부터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거쳐 고린도까지 왔습니다.
바울은 육로로, 해로로, 길이 뚫린 곳은 어디든지 두 번, 세 번 찾아다니면서 교회를 세워야 할 만한 곳에 모두 교회를 세웠습니다.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골로새, 에베소, 빌립보, 데살로니아, 베뢰아, 드로아, 고린도, 아덴 등 바울의 선교 열정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널수록 더욱 더 커졌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의 선교 목적지가 서바나입니다. 본문에서는 서바나로 가리라고 두 번이나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서바나로 가기 전에 들린 곳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이요, 하나는 로마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기에 (지난 시간에도 배웠지만)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교회 개척을 포기하고 방문 전도로 그쳤습니다. 그런데 로마 교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뭡니까? 선교 비를 좀 부담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거든 서바나로 가는 선교 비를 너희가 부담하라"고 했습니다. 전도와 선교의 의미는 큰 뜻은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면 전도는 국내, 즉 지금 서(활동하고) 있는 곳을 의미하며, 선교는 떨어져 있는 곳, 외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일일이 외국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를 돕는 선교 비는 낼 수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파송된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길입니다.
바울은 아직 로마 교회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로마교회는 바울의 설교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서바나에 선교사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초면에 편지를 보내면서 내가 가는 서바나로 가는 선교 비를 부담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 일이 바울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서바나로 가서 전하려고 하는 복음이나 로마교회에서 받았던 복음이 동일한 복음이기 때문에 그 복음은 합력해서 전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열정입니까? 여러분, 복음을 받은 자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그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믿/
바울이 서바나로 가기 전에 그리고 로마에 들리기 전에 먼저 들려야 할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바울의 선교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바울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예루살렘을 들릴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 바울의 손에는 마게도냐 교회와 아가 지방 교회 등에서 보내온 구제비가 있었습니다. 이 정성어린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초대교회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약한 교회였습니다. 교인 구성이 서민들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부유층인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들이 온 재산을 다 팔아 서로 통용했습니다. 서민들의 경제는 근방 바닥이 났습니다. 게다가 흉년이 들고 기근이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에 허덕인다는 소문이 이방 교회까지 퍼졌습니다.
이방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성심 성의껏 헌금을 했습니다. 힘에 겹도록 연보를 해서 바울 편에 부탁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방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값으로 살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의 보답을 물질로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22절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본문에서 바울이 얼마나 로마교회를 방문하고 싶어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롬1:13절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행19:21절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사도바울은 개인적으로 로마에 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길이 막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에 여러 번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내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믿/
교회사에 보면, 바울이 이 서신을 써 보내고 난 후 3,4년 후에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그렇게 로마에 들어갑니다. 그 때가 주후 62년경입니다. 들어가서 3년 가까이 머물면서 감옥에서 지내기도 하고 풀려나기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믿/
"여러 번 막혔더니" 우리나라처럼 3,8선이 가로막혀 건너가지 못함을 말함이 아닙니다. 또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지금과 같이 비자를 못 얻어서 못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도하심을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선교 지를 떠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지 안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소아시아 지방으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예수 전함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꿈에 코가 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마게도냐는 지금 그레이스인데 그 당시 알렉산더 대왕이 다스렸던 그 지방을 마게도냐라고 합니다. 바울은 즉시 성령의 인도를 깨닫고 보따리를 싸고 바다를 건너 유럽 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막혔다'는 말은 소위 사람이 다니는 길이 봉쇄되어 못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시고 그 계획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아멘!/
바울의 생각으로는 로마로 가서 큰 환영도 받고, 거시서 요즘 같은 대형 집회를 열고, 많은 로마의 지식층과 권력층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보내지 않고 죄수의 몸으로 밧줄에 묵혀서 갔습니다. 이 사건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그러나 죄수의 몸으로 갇혀서 간 것도 결국 알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갇혀갔기 때문에 그가 어디로 갔느냐하면 로마 황제가 살고 있는 시위대 안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시위대는 지금 우리나라 수도경비사령부 정도가 되는 그 당시 왕실을 지키는 부대입니다.
바울이 그 부대 안에 갇힌 이유는 바울을 정치범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위대 안에는 대게 황족들이 드나드는 곳이요, 로마에서 가장 높은 원로들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그냥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안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할/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빌립보서 마지막장에 보면, "가이사의 집 사람 중에 몇이 예수를 믿었다"고 나옵니다. 황족 중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나왔고, 또 원로 중에서도 나왔고, 또 고급 군인 중에서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실 주후 313년경에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했고, 그 후 12년 뒤 325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변해갔던 것은 어떤 한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벌써 황실 속에까지, 시위대 안까지, 원로들까지 복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로마가 기독교국가가 된 것입니다.
▶23-24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선교의 최후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서바나입니다. 28절에서도 보면 서바나에 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서바나는 지금 스페인을 말합니다. 그 당시 스페인 반도 전체를 서바나로 불렀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스페인을 문명세계의 끝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땅 끝으로 본 것입니다.
바울이 소아시아로부터 시작하여 마게도냐인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유럽의 가장 서쪽에 붙은 땅이 바로 스페인이기 때문에 스페인 하면 그때 당시로는 땅 끝으로 여겼습니다.
그 때는 콜롬보서가 북미대륙을 발견하기 전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를 거쳐 땅 끝 서바나로 가겠다는 것은 어떤 인간적인 욕심이 아닙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일념입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기서 '이제'란 제3차 선교여행의 종착지인 고린도를 비롯하여 소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 지방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선교 지를 서바나로 옮겨야 되겠다는 각오도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전부터 로마를 통해서 가기를 원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교회에 들여 예수 안에서 교제를 좀하고, 그러니까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도 하면서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했다는 말입니다.
"약간 만족한 후에"란 말은 오래 동안은 못 머물러 있다는 뜻으로 원래의 뜻은 잠깐 동안이라는 뜻입니다. 로마교회에 가서 잠깐 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도 하고 교제를 한 다음, 그 다음에 '너희의 그리로 보냄을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왜 가고자 하는가?' 쉽게 말하면 너희와 신앙 안에서 교제를 나누고, 그 다음에 너희의 도움을 받아 서바나로 가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선교 비를 좀 지원하라는 말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세계를 정복한 나라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돈은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한국 돈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는 것 보다 미국 돈인 달러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훨씬 쓰기가 편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유대사람들이 헌금을 해서 저 스페인까지 보내려면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로마 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스페인에 보내는 것은 아주 일입니다.
'너희가 보내줌을 바람이라'는 말씀은 재정적인 후원도 중요하고, 기도의 후원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믿/ 선교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할/
▶25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무슨 말씀인가? 세계선교를 열심히 하고자 하는 그 아름다운 소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더 급한 것은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돕는 것이 더 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계선교도 귀한 일이지만, 바로 내 이웃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영혼이 지옥 불로 떨어지고 있다면 그런 영혼들과 육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모 교회입니다 만은 핍박이 너무 심하고 거기다가 또 흉년이 겹쳐서 아주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형제들아 도우라! 사랑을 실천하자"고 외치므로 많은 성도들의 참여 속에 거액의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교회로 갑니다.
우리가 이웃을 돕고 하나님의 일에 헌금(연보)하는 손길을 하나님이 돕겠다고 약속한 그 내용이 고후8-9장에 나오는데 몇 구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먼저 헌금은 미리 준비하라고 당부합니다. 고후9:5절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색함으로, 억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의 축복은 어떤 것인가? 고후9:6절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고,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지금 바울이 섬김을 받고 대접을 받으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섬김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고, 이웃을 바로 섬기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본문의 바울은 자기가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돈 가지고는 못 섬겼지만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믿/ 우리들은 무엇이 없어서 못 섬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답니다.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섬기십시오! 받은 축복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할/
주님도 이 땅에 섬기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최고봉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사랑입니다. 마20: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26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마게도냐의 대표적 교회는 '빌립보'교회였고, 아가야 지방의 대표적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들이 예루살렘의 모 교회를 돕기 위하여 헌금하여 바울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그들이 헌금한 것이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기쁘게'란 말씀이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기쁘게 동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 마게도냐나 아가야 성도들이 생활이 유족 했느냐? 그러니까 잘 살았느냐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못살았습니다.
고후8:1-2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그들은 환란도 많고, 시련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동참했습니다.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헌금을 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왜? 자기가 가난함으로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도왔습니다.
부자라고 돈이 있다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의 여러 가지 어려운 처지를 알아야 도울 수 있습니다. /할/
▶27절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무슨 말씀인가? 예루살렘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 주어서 저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도록 복음을 전해 주었으니 빚진 자의 마음으로 물질이라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다'는 말은 복음을 나눠 가졌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분입니다. /믿/
이 복음의 구원의 역사는 원래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인데 그들이 거부함으로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미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최고의 가치인 생명을 나눠가졌으니 빚을 감는 마음으로 구제하라는 의미입니다.
갈6: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씀을 받은 자(성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자(주의 종)들에게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은 것'은 '옳은 것'이라는 말로, 주의 종을 섬기는 것은 옳은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받은 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에 우리의 은혜의 생활과 축복의 생활이 더 넘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대 땅의 갈릴리 바다는 받은 물을 사해바다로 나누어줍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는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해바다는 받기만 했지 줄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죽은 바다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눅6: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8절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바울은 그가 이방인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직접 예루살렘에 가지고 가지 않고 그의 동역자를 통해서 대신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가면 생명의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울이 이번에 올라가서 체포되어 로마에 잡혀가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기독교의 중심지인 그곳에 가서 그의 선교사역을 낱낱이 보고(행21:18-20)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되었음을 확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뜻에서 보면 이방인의 헌금은 복음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린 결과 그 보답으로 얻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확인한 후에" 확인의 도장을 찍었다는 의미로 구제헌금을 확실히 전달한 후임을 의미한 말로 어떤 대표성을 띤 말로써 어려운 선교 여행 중 값진 열매를 보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했습니다.
▶29절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바울 사도는 그가 로마로 행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간다고 했습니다. 주의 종에게는 축복 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축복하면 사업이 잘 되고, 아들을 낳고, 시험에 합격하고, 문제가 풀리는 것만을 축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축복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축복은 그런 육적인 축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우리가 새롭게 눈을 떠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축복 그 자체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잘 믿으면 이 땅에 살면서도 영 육 간에 축복을 받습니다.
요3서에 보면 예수를 잘 믿었던 '가이오'라는 장로님을 사랑의 사도 요한이 축복할 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네가 간구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를 잘 믿으십시오. 예수 안에 다 있습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이제 30-33절까지는 한번도 대면한 일이 없는 생면부지의 로마 교인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SOS를 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종들을 위해 맨 먼저 기도의 순위를 정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
▶3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바울 사도는 권면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요14: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고, 롬8:26절에서도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할/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 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성령께서 우리의 빌 바를 다 빌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권하노니"의 원어의 뜻은 '시간이 급합니다. 재발 기도해 주십시오. 간절히 소원합니다.'라는 의미가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얼마나 팽팽한 긴장감과 강한 요청이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가?
본문 속에 또 다른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울은 "나와 힘을 같이 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이여! 나는 지금 서바나 선교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전력을 다하여 생명을 걸고 씨름하듯이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나를 위해 기도할 때 나와 같은 태도로 기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힘을 같이 하여'란 말은 전투적인 용어로써 사생결단을 하려는 사람처럼 전력을 쏟아 기도하는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이런 기도를 부탁합니까? 31-32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31-32절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1절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생명의 위기 앞에 드린 기도부탁입니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생명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유대교의 열심분자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곳입니다.
바울이 활동하고 있는 소아시아지역은 로마의 법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안에만 들어오면 바울 그까짓 놈 하나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왜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악을 쓰고 있는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설교의 주제가 예수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죄 사함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은 아무리 지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사면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할/
예수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를 갈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저놈 보아라, 하나님의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네! 저 놈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겠다. 큰 일 나겠다."고 아우성들입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의 심정을 행20;22-24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일사각오를 봅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심정을 안고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또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일이 잘못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헌금 전달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32절에 예루살렘에서 이을 잘 마치고 로마로 가서 성도들과 좋은 시간을 갖고 싶은 소원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편히 쉬게 하라"는 말은 일을 잘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제하고 친교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기도의 부탁은 '자기 개인의 소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허락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평강을 강복하므로 15장의 결론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로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과 함께 해 주시기를 축원한 것입니다.
그 축원은 ▶⑴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바울 사도는 축도에서 "평강의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평화가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빌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⑵사람과의 화목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은 사람과 화목을 이룹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지 않고는 내가 기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주지 않고. 내가 평화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고통을 줄 때, 나에게 미움과 시기가 가득 차게 되어 내 안에 기쁨이 없고 평화가 없게 됩니다. /믿/
▶⑶이 평강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평강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때에 환난의 때에 절망의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인간의 고뇌와 아픔을 넘어서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 사도바울의 축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강복권이 있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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