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52강) 바울의 마지막 동역자들! (롬 16:1-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31. 07:12

《제52강》   바울의 마지막 동역자들! (롬 16:1-16)

 

  사도바울의 편지는 항상 마지막에 축도로써 끝이 납니다. 그래서 롬15장 마지막 절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에게 항상 계실지어다." 축도로써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장은 쉽게 표현하면 부록과 같은 책입니다.
  본문을 읽으면 바울의 인간미가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 자들을 향한 그의 그리움과 사랑과 넘치는 감사가 있습니다.
  본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불타는 소명감을 가슴에 안고 한 생을 살았던 바울시대의 동역 자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의 이름들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고 교회를 세워 갔던 아름다운 신앙의 선진들의 이름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이름도 그들의 이름 뒤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이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에 대략 24명 정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따금 이름이 계속 기록된 장들이 나옵니다. 마1장, 눅3장, 특히 역대기 같은 곳을 읽어보면 8-9장 계속해서 이름만 나올 때가 있습니다.
  ▶한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가정예배에 계속해서 성경을 읽기로 했는데 역대기를 읽다가 계속 이름만 나오니까 지루하고 지루해서 "여보 이제 그만 여기 이름 나오는 부분은 뛰어 넘고 뒤에 것을 읽으면서 예배를 드립시다"고 하니까 그 남편 하는 말이 "유대인들은 이 어려운 이름을 많이 읽어서 머리가 좋아졌으니 우리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말을 했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평신도들의 이름은 바울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서, 즉 해산의 수고를 다해서 키워 놓은 예수의 제자들이요, 바울 자신의 동역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대가를 통하여 얻은 아름다운 형제, 자매들이기에 바울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이름을 부르면서 안부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름 앞에 또 다른 별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보호자, 나의 동역자, 처음 익은 열매, 나와 함께 갇힌 자, 내 사랑하는 자, 예수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자, 주안에서 많이 수고한 자, 내 어머니 나의 친척, 나와 온 교회 식구' 등등의 별명을 붙여가면서 그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정다감한 장면입니까?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2절에 바울은 로마 교회의 뵈뵈를 소개하고 있고, ▶3-16절은 그와 함께 주의 일을 했던 동역 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1-2절은 이 편지, 성경 중에 최고인 로마서를 가지고 간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들고 로마 땅으로 간 사람이 누굽니까? 뵈뵈라는 여제자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어디서 집필했습니까? 바로 고린도에서입니다. 고린도에서 겐그리아는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일찍이 기독교가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진 곳이 겐그리아 지방입니다.

 

  ▶1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먼저 뵈뵈는 '순수하다'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겐그리아 교회는 바울이 2차전도 여행 때, 서원을 이루기 위해 삭발까지 하며 전도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뵈뵈를 이렇게 세운 교회의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첫 번째를 여자 이름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일입니다. 당시 유대 남자들이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 중의 하나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내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글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많은 철학자들과 함께 여자도 사람인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자를 사람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짐승으로 취급할 것인가? 이 정도로 여성의 인권이 유린당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도 바울은 여집사 뵈뵈를 로마교인들 에게 당당히 추천하고 있습니다.
  일꾼이란 말은 '디아코노스'라는 말로서 원래의 뜻은 '남을 섬기는 자, 종'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일꾼으로' 옆에 쓰여 있는 3밑에 난 외주를 보면 집사로 되어있습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집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집사는 일꾼입니다. 말꾼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꾼이 필요하지 말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기 '겐그리아 교회 일꾼'이라는 말은 그 교회에 일꾼 중에 일꾼이요, 집사 중에 집사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일꾼이 되십시다.
  어떤 사람은 일도 없이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됩니다. 일거리만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없이 꾸준히 봉사하는 일꾼이 바로 집사입니다.
  집사의 뜻은 '일을 챙긴다. 일을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집사는 항상 일거리를 찾아서 하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교회 들어 와서는 그저 일할 것이 없을까? 밖에 나가서는 그저 주님을 위해 일할 것이 없나 찾아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고, 찾지 않으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일하는 일꾼에게 능력도, 조건도, 축복도, 은혜도 주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뵈뵈를 우리 자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매 뵈뵈를 천거하노니" 왜 자매라고 부르는가? 우리 모두는 예수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자매요, 천국에 같은 상속자이기에 그렇게 부릅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영원한 형제자매입니다. 또 자매라고 하는 말속에는 교제를 뜻하는 술어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서 잘 어울려 교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봉사도 잘해야 하지만 교제도 잘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 일은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거하노니" 추천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추천한다는 말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추천합니까? 실력도 인격도 신앙도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나 추천하지 않습니다.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2절은 로마 교회가 그를 마땅하게 영접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2절 "너희가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 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너희가 주안에서"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주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간혹 주안이 아니고 주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슬퍼하십니다.
  본문에 뵈뵈는 주안에 산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주안에서 합당한 예절로 뵈뵈를 영접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안에서 산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자신을 죽이고, 그러니까 자신의 수단, 방법, 생각, 주장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주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서 청년들이 노래하면서 '목사님이 최고야'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얼른 받아 '아니야 아니야 예수님이 최고야' 하더랍니다. /할/
  진정한 크리스천은 누구입니까? 결코 자신 중심, 자기자랑, 자기고집, 자기 기분 따라 교회 일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주안에서 자기를 감추고, 자기를 죽이고, 묵묵히 주님을 따르는 잡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향하여 뭐라고 했습니까?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우리 주안에 있는 사람은 합당한 예절이 정말로 귀합니다. 지금 세상은 윤리, 도덕, 예절이 땅 바닥에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긴 다르다'는 말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질서와 효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본문의 뵈뵈 집사는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른들을 잘 섬길 줄 알았고, 선배를 알아주었고 선생을 존경할 줄 아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주석학자 임종만 박사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인들에게 자신의 서신을 가지고 가는 심부름꾼이라고 소홀히 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심부름꾼, 하인취급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주안에서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고 말합니다. 남을 높게 여기면 자기가 높아집니다.
  또 바울이 무엇을 부탁하고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주라" 먹고 자고,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역시 세심한 목회자였습니다. 외국에 가면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다 도와주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왜 도와주라고 합니까?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뵈뵈는 여러 사람을 도와준 사람입니다.
  겐그리아 지방은 동서 교통의 중심지여서 다른 지방의 성도들이 많이 내왕했습니다. 그때마다 뵈뵈는 예수의 사랑으로 그를 영접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복되다고 말합니다. 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사랑을 주고, 인정을 주고, 물질을 주고, 예수의 생명을 줍시다. /할/
  또 바울은 뵈뵈를 '나의 보호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박해를 받을 때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처럼 숨겨 보호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뵈뵈는 과부였습니다. 그리고 유식하고 유능하고 돈도 많은 여집사였습니다. 과거에 태양신을 숭배하는 우상 종교에서 떠나 예수 믿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구원 얻은 감격을 발견한 그는 하나님과 참 종교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병든 자를 돌봐주었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였고, 소외당한 자를 예수님의 복음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잘 대접했습니다. 사도바울의 물질적인 모든 것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사도바울이 불치의 병에 걸려 있었는데 그 지병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친절한 간호도 잊지 않았습니다.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여기서 보호자란 '누구를 위해서 앞장선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서만 유일하게 여성형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어려울 때나 위급할 때 도와주는 '후원자', '구원자', '조력자'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옛날 헬라 문화권에서 후원자, 또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물질이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보통 보호자는 남자들이었지만 그러나 여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당시에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이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의 선교 사역에 경제적 도움을 준 뵈뵈의 따뜻한 배려에 관해서 그녀를 자기의 '보호자', 즉 선교후원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로 보아 뵈뵈는 부자였고 사회적으로 유력한 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그러나 부자라고 해서 그렇게 '보호자, 즉 앞장서서 돕는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여인은 '도우시는 영, 보호자의 영, 즉 우리의 돕는 자이신 보혜사 성령님'의 영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믿/
  뵈뵈는 바울의 보호자입니다. 그만큼 바울에게 신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종 바울에게 신임을 받은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임을 받은 것과 똑같습니다. 교회의 일꾼들은 주안에서 교역자에게 인정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아멘!/
  그 당시 로마서 서신 두루마리를 뵈뵈에게 맡겨 로마까지 운반하도록 한 것은 목숨 걸고 하는 일입니다. 만약 중간에 로마 군인에게 발각되면 생명은 끝장이 나고 로마서는 빛을 못 보았을 것입니다.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사도바울을 실고 간 배가 구라파에 운명을 실고 갔다"고 말했습니다.

 

  ▶여집사 뵈뵈가 바울이 쓴 성경을 가지고 간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①기독교의 교리의 진수인 이신득의 신앙을 실고 간 사건이요,
  ②기독교의 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세운 사건이요,
  ③롬13:11-14절의 말씀으로 어거스틴의 마음을 회심시켜 성자가 되게 했고 기독교 신학을 수립케 한 사건이며,
  ④롬1:17절의 마틴 루터의 마음을 감동시켜 위대한 종교 개혁의 대 사업을 이루게 하여 역사의 장을 전환시킨 사건입니다.

 

  ▶3절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바울의 동역자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브리스가는 브리스길라라고도 합니다. 브리스길라는 '가치 있는 자, 존경할 만한 자'라는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이 맺어준 천생연분의 부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여자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 당시 성향으로 보면 여자 이름이 기록된 것도 쇼킹할 일인데 여자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통계로 남자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상식입니다. 사도바울이 브리스가의 이름을 먼저 쓴 것은 그의 신앙이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굴라는 유대인이고 브리스가는 헬라여인입니다. 카타콤 속의 기록을 보면 브리스가는 로마 상류 사회의 저명한 가문출신이었는데 유대인 남자와 결혼한 관계로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가는 남편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을 했고, 처음에는 로마에 살고 있다가 주후52년경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을 박해할 때, 로마에 살 수 없게 추방령을 내림으로 하는 수 없이 고린도에 와서 장막을 만들어 팔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유대인들이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도처에서 미움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 값을 자손들에게 돌려달라고 자청했기 때문입니다.
  마27:24-25절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 두 부부가 유대인의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피신하여 천막 업을 하다가 사도바울을 만나 바울에게 전도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바울과 함께 천막 업을 동업하면서 고린도에 갔다가 다시 로마로 갔습니다. 그동안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종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헌신했으며 바울의 죽음의 위협까지도 대신하기까지 한 열심 있는 신앙의 부부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바울을 위해서 자기들의 생명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귀한 성도였습니다. 본문에서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고전16:19절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딤후4:19절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여기 동역자란 천막 업을 동업한 동업자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바로 알고 전하는 동업자란 뜻입니다.

 

  ▶4절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이 부부는 주의 종을 위해서는 목이라도 내어놓았습니다. 목을 내 놓았다는 말은 주님을 위하는 것이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았기에 복음 사역 자를 위해 목숨 걸고 충성한 것입니다. 동업자라면 최소한도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의 부부의 아름다운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종들이 가정에 가서 심방 할 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권면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러면 이들 부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⑴그들은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읽으시면서 부셨겠지만 이들은 늘 성경에 이름이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라고 하든지 아니면 '아굴라와 브리스가'라고 하든지 서로 붙어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입니다. 부부라고 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됨이요, 분리될 수 없는 조화입니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고와 낙을 함께 합니다. 귀와 천을 함께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하나입니다.
  ⑵행복한 가정은 함께 하는 부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울 때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서로 돕게 한 것입니다. 인간이 고독하지 않도록 서로 도와주는 것이 가정이요, 부부의 만남인 것입니다. 
  ⑶행복한 부부는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함께 하는 가정은  화목한 가정을 말합니다. 
  ⑷행복한 부부는 영적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는 교회에서 예배하는 모습에서 보게 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주의 사도인 바울을 만나서 말씀을 배우고, 사도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부부들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성실하게 하면서 목사님과 뜻을 같이한 부부들이 행복합니다.
  ⑸행복한 부부는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일을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때 에베소에는 웅변가이며,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있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아볼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과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아볼로를 자기 집으로 청하고 사랑으로 성령의 세례에 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후에 아볼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사람이 되어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행18:26-28). 그 후에 아볼로는 위대한 목회자가 되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비전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이 비전을 위하여 모두가 함께 뛰고, 일하고, 호흡하며, 충성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믿/
  오늘 두 부부가 교회 앞에 충성했다는 사실은 복음의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도구인 교회와 지도자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들에게 충성했다는 말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마음은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사역자들을 철저히 섬겨야 한다는 의식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복음을 위한 열정과 충성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위대했지만 바울이 바울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주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신실한 복음의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십시오. 목숨을 내어놓고 싶을 정도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회자를 두었다는 것은 교회의 축복입니다. 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는 성도가 있다는 것은 목회자의 큰 기쁨입니다.
  함께 복음의 동역자가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이런 생명력 있는 멋진 교회 서로를 향한 자랑을 아끼지 않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할/

 

  ▶5절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이 두 부부는 그들의 집을 언제나 교회로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브리스가는 고린도에서도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을 했고, 에베소에서도, 로마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당시는 핍박 때입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선뜻 내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건물이 없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건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핍박받을 때인데 어떻게 건물을 짓겠습니까?
  그런데 교회의 건물이 따로 생긴 시기는 AD313년 이후입니다. 이때 로마 정부에서 교회를 공인하고 난 다음에 콘스탄틴 황제가 예수님을 믿다 보니까 교회를 위하여 건물을 좀 지어야겠는데 어디에 세울까 생각하다가 그 당시 재판소를 교회로 주었답니다. 그래서 그 이후 교회 건물 양식이 재판소 양식과 똑같이 되었다고 교회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예수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에베데노에게는 '나의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법이 마음에 있으면 온정의 법이 그 혀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말을 해도 사랑이 넘치는 말로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사랑이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소 아시아 지방 에베소에 선교하러 같을 때, 많은 핍박과 원망과 사람들의 대적하는 것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에베네도가 처음으로 전도되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성도입니까? 전도해 본 사람은 오늘 본문을 쉽게 이해하지만 전도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체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봉사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있습니다. 헌신하면서 느끼는 감동이 있습니다. 전도하면서 느끼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믿/
  에베네도는 에베소 교회의 등록 1호 잡니다. 첫 열매가 왜 귀합니까? 바로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에베네도는 사도바울을 도와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로마에 와 있습니다.

 

  ▶6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마리아를 향해서 '많이 수고한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참사랑은 수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고 즐거움으로 합니다. 사랑이 많은 곳에는 수고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그러면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마리아처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성도들이 됩시다. /할/
  신약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6명이나 등장합니다. 마1:16절에서 '주님의 모친 마리아'가 나오고, 막16:9절에서 '막달라 마리아', 마27:56절에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요11:1절의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행12:12절의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본문의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헬'어의 뜻은 '높여진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는 한결같이 신앙심이 높은 훌륭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본문의 마리아는 로마교회의 초창기의 개척자로서 충성하고 헌신한 일꾼이었으며 뵈뵈나 브리스가와 같이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도왔던 일꾼이었습니다.

 

  ▶7절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⑴"내 친척이요" 이 친척이란 말은 골육이란 말로서 넓게 이해하면 한 동족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의 친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당시 친척 중에 예수 믿는 혈육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문안 드릴만한 인물이었습니다.
  ⑵예수의 복음을 위해 감옥에도 함께 들어간 형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든지 동기들이 귀합니다. 바울과 감옥 동기들입니다.
  여러분 감옥에 들어간 것이 무엇이 귀해서 문안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가는 고난에 동참했다는 말은 이 신앙이 변치 않은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변치 않은 신앙, 감옥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신앙, 귀한 신앙입니다.
  ⑶이 사람들은 사도들에게 유명이 여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성도야말로 우리 교회의 보배다' 인정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⑷사도바울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선배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8절 "또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암블리아'는 노예로서 예수를 잘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노예들이 많이 믿었습니다. 빌레몬서1:10절에 있는 오네시모도 노예였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슨 단어입니까? '문안하라'입니다. 무려 21회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안하라는 말 이외에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거듭거듭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영접하고 도와주고 거룩하게 입맞추라'는 말들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문안하고, 문안하고, 문안하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거듭 거듭 강조할 때 반복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성도간에 아름답게 교제하고 서로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렇게 반복하며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항상 두 가지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구원받은 성도들끼리 신령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교제 중에 어느 하나가 빠진다면 참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9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동역자인 우르바노" 이 사람은 앞에 나오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이 사도바울을 도왔습니다. 사도바울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사도바울이 혼자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돕는 일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우르바노는 성경에 한번 밖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하늘나라 상급은 바울과 똑같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0-12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주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아벨레에게는 '그리스도안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진실성과 강직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지식과 판단, 용기와 인내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인정받는 생활이 축복입니다. 나는 아무리 굉장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안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슬픈 입니다.
  '인정함을 받은' 원어에 '도키모스'란 말로 '시험하여 인정받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하나님이 그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창22:12절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벨레는 어떤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믿음으로 잘 이긴 자입니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고 했는데 대 헤롯의 손자라는 설이 있습니다.

 

  ▶13절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루포는 막15:21절에 나오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간 사람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로 인하여 아들과 부인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믿고 가족까지도 구원받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시골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부지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으로 참 유월절을 지키는 자가 되었습니다. 고전5:7절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에게서 무엇을 느낍니까? 우리도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복음 사역에 참예해야 하고, 이웃을 억지로라도 은혜에 자리에 참예 시켜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교회에 인도했다가 은혜 받고 전도한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의 어머니를 바울이 영의 어머니, 믿음의 어머니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주의 종을 위하여 헌신했으며, 얼마나 주의 종을 위해 기도했으면 사도바울이 어머니로 모셨겠습니까? 기도하는 어머니가 참 어머니입니다. /믿/

 

  ▶14-16절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대단원에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입 맞추라" 그때 사람들의 인사법입니다. 서양 사람은 손에도, 볼에도, 키스를 합니다. 그런 인사를 말합니다. 거룩하게 입 맞추라는 것은 신앙 안에서 거룩한 교제를 끊지 말라는 말입니다.
  "서로 문안하라!" 내가 문안 받으려고만 하지말고 먼저 가서 교제하고 먼저 가서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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