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최적의 숫자가 둘이라면 우정에 있어서 최적의 숫자는 몇이나 될까? 내 마음이 많이 힘들 때나 내 마음이 많이 울적할 때, 내가 부를 수 있고 또 그렇게 부르면 금방 나타나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손가락으로 꼽아 보면 그리 많지가 않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날이면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몹시 생각난다. 나보다 멋있게 생겼고, 나보다 덩치도 컸고, 나보다 재주도 많았고, 나보다 기타도 잘쳤고, 나보다 노래도 잘했고, 나보다 마음이 백 배나 고왔던 내 살 같은 친구였다.
언제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자신의 입보다 내 입을 먼저 생각했던 친구였다. 어느 날 친구들과 야외에 놀러를 갔는데 우리가 마련해 간 병어회를 썰다가 제일 맛있다는 콧잔등 부위는 나를 먹여야 한다며 다른 친구들은 아예 손도 못 대게 해서 모두를 한바탕 웃게 했던 친구였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믿어주었던 친구였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온 동네를 밤늦도록 싸돌아다니며 온갖 개구쟁이 짓을 함께했던 친구였다. 그리고 여드름투성이로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사춘기의 몸살까지도 함께 앓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친구는 병상에 누워서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병실이 답답해서 못살겠다고... 이대로 병실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디를 가고 싶은데?”
“바다도 보고 싶고... 산도 보고 싶고... 강도 보고 싶고...”
친구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며칠 남지 않은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미 배에 복수가 많이 차서 거동하는 것도 힘들어 했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했던 친구였다. 친구의 전화를 끊고 나서 친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바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친구의 아내에게 말했다.
“저 친구 좀 데리고 며칠 여행 좀 다녀오겠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려고요?”
“저 놈이 바다도 보고 싶고.. 산도 보고 싶고.. 강도 보고 싶다네요..”
“저도 완규씨와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는데 그것은 위험해서 안 돼요...”
“어차피 오래 견디지 못할 건데... 보고 싶은 것이나 보여주고 보냅시다.”
“......”
“옷가지 몇 개와 약만 챙겨주면 제가 이틀만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
“저렇게 누워서 며칠 더 산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친구 아내는 말했다.
“저 상태로 떠나면 하루도 못 견딜 거예요...”
...
친구를 내 차에 태우고 친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산도, 바다도, 강도, 구름도, 노을도, 파란 하늘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숲으로 데리고 가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도 듣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는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병실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날 친구는 답답한 병실 안에 있는 것을 못견뎌하면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 친구를 휠체어에 태우고 7층 병실의 복도를 100바퀴도 넘게 돌았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걸으면서 코흘리개적 얘기도 하고 학창시절의 재미났던 얘기도 했다.
같이 수업을 빼먹고 땡땡이를 쳤다가 선생님에게 잡혀서 죽도록 맞았던 얘기도 했고, 함께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베낭에 쌀을 가지고 가지 않아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쌀을 구걸을 했던 그 얘기도 했다.
나의 얘기에 친구는 재밌다고 웃는데 친구의 웃음 끝이 슬퍼 보였다.
그러다가 친구가 말했다.
"완규야!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