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스크랩] 이사야서 40:9-17 “앎과 앎 이상의 신앙”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8. 30. 08:57


이사야서 40:9-17 “앎과 앎 이상의 신앙”


40: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
흔히 믿음은 앎과 그 고리가 약하다는 주장을 듣습니다. 그냥 믿으라는 말을 쉽게 듣습니다. 그냥 어떻게 믿습니까? 그냥 믿으면 문제입니다.

2.
우선 맹목적인 믿음은 십중 팔구 독선적입니다. 그냥 믿으라는데 그냥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거나 때로 적대적인 일이 많습니다.

3.
믿음은 근원적으로 앎에서 비롯되고 앎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믿다 타락하는 것에 애가 타서 ‘나를 알라 제발 나를 알라’ 애원하십니다.

4.
심지어 너희들과 토론해보자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성을 주신 분께서 어떻게 그 이성과 상관없는 주장이나 상반된 주장을 하실 수 있습니까?

5.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반이성과 초이성의 구별입니다. 믿음은 이성에 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성을 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6.
특히 믿음의 헌신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습니다. 이 결정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의 결정 또한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그분의 지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초이성적입니다.

8.
십자가는 그 상징입니다. 사랑과 공의는 이성적인 접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사랑과 공의는 하나가 되고 무한히 큰 능력이 됩니다.

9.
하나님은 이런 일을 누구와 의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누구에게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항상 그 자신이 길입니다.

10.
그래서 우리는 그 길 위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이 그 일을 왜 하셨는지를 묻고 답을 얻는 것입니다.

11.
그 과정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아는 만큼 믿고 믿음만큼 알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갑니다.

12.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이런 과정 없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쉬운 것이 없지만 모든 상황을 다 아시기에 우리를 위로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의 몫은 그 위로를 그냥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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