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31-42 “언제 커밍아웃 하는가?”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1. 우리는 스스로 비겁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어쩌다 용기 있게 행동할 때가 있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때문에 비겁한 것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2. 누구나 다 용감하지도 않지만 용감하다는 사람도 실은 두려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다수가 비겁하고 소수가 용감할 뿐입니다.
3.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많이 배웠다고 용감한 것도 아니고, 큰 힘이 있다고 용감한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다고 용감한 것도 아닙니다.
4.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막말하고 막가는 사람을 용감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칠게 살았기에 그렇게 행동할 뿐입니다.
5.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용감해지고 대담해집니까?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믿는 것이 힘입니다. 믿음이 용감하게 합니다.
6. 물론 그 믿음은 막무가내식 믿음이나 맹목적인 믿음과는 다릅니다. 바른 앎에서 비롯하는 믿음입니다. 정서적이기보다 다분히 이성적인 것입니다.
7.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공생애를 마쳤습니다. 참 기구한 일생입니다. 마굿간에서 출생했고 십자가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소유 삶입니다.
8. 그런데 그 십자가 죽음을 보고 두 사람이 커밍아웃을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라는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알려진 고위공직자입니다.
9. 그 동안 두려움 속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던 사실을 감췄습니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해서 장례를 치릅니다.
10. 니고데모는 엄청난 양의 향유를 갖고 나타납니다. 두 사람은 이 행동으로 유대인 전체 눈 밖에 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11. 이상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보고 왜 마음이 바뀌었습니까? 그 전에 사형집행관이었던 로마 백부장도 마음이 완전히 돌아섭니다.
12. 대체 십자가에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유대인에게는 수치스러운 것이지만 이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후로 셀 수 없는 사람이 커밍아웃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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