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6:1-13 “왜 우상에 매달리나?”
46: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1. 크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상도 클수록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나무건 돌이건 철이건 큰 우상에 힘을 쏟습니다.
2. 그러나 아무리 커도 우상은 무능합니다. 저 혼자 힘으로 못 가고, 저 혼자 힘으로 못 섭니다. 누군가 어깨에 떠메고 가야 가고 세워야
섭니다.
3. 그런데 사람들은 제 힘으로 설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나무 토막이나 돌 더미에 빌고
또 절합니다.
4. 대체 우상에 부르짖은들 무슨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까? 그 우상에 빌고 절하며 죽도록
매달린들 그게 무슨 힘이 있어 사람을 건질 수 있습니까?
5. 문제는 보이는 것들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신상들
배후에 도사린 영적 실체에 무지해서 묶이고 맙니다.
6. 바벨론의 신상 벨과 느보가 나라가 망하자 무거운 짐으로 전락합니다. 나라와 민족이
고난을 겪기 전에 두드러진 것은 큰 우상들의 난립입니다.
7. 그런데 왜 그렇게 우상에 매달립니까? 양쪽 다 불안한 탓입니다. 만드는 쪽도 불안해서 만들고 섬기는 쪽도 불안해서 다들 우상에 목을 맵니다.
8. 하지만 어떤 나무나 돌, 쇳조각이 사람들의 근원적인 불안을 없앨 수 있으며 고난에서
구해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치성을 더합니다.
9.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에 그나마 위로를 받습니다. 하늘의 답이 없으면 내 정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내 정성이 모든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10. 또 한가지는 긍정의 힘입니다. 된다고 믿으면 됩니다. 할 수 있다고 몰입하면 결국 이뤄집니다.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는
굳은 확신입니다. .
11. 이런 신념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합니다. 미숙한 아이들
같고 무책임한 삶의 태도처럼 보여 오히려 멀리합니다.
12. 얼마나 갈까요? 얼마 못 갑니다. 우상을
의지하건 나를 철석같이 믿건 언젠가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옵니다. 인간은 철저히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반드시 옵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다시 이름을 부를 그 때를 묵묵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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