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서 논의돼온 바울의 정치신학
신학계 수용 주도하는 테드 제닝스 저서
”메시아적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환대, 선물, 관대함이 진정한 정의”
신학계 수용 주도하는 테드 제닝스 저서
”메시아적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환대, 선물, 관대함이 진정한 정의”
무법적 정의-바울의 메시아 정치
테드 W. 제닝스 지음, 박성훈 옮김/길·2만7000원
테드 W. 제닝스 지음, 박성훈 옮김/길·2만7000원
21세기에 바울? 나날이 발전한 과학이 세계를 탈신화화하고,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철학에서 완전하게 신을 몰아냈었어야 할 것 같은 현대에 들어, 일급의 무신론자 좌파 정치철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바울을 다시 읽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1987년 유대 정치철학자인 야코프 타우베스가 <바울의 정치신학>으로 카를 슈미트와 발터 베냐민 사이의 논쟁을 재조명하면서 문을 열어젖힌 이후, 프랑스 좌파 정치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1997년 <사도 바울>을, 이탈리아 좌파 정치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이 2000년 <남아 있는 시간>을 내놓으면서 바울은 정치철학의 중요한 테마로 부상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에게,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위르겐 몰트만에게 그러했듯이, 철학자로부터 사상적 충격을 받은 신학자가 이를 소화해낸 뒤 새로운 신학의 장을 여는 것은 자주 목격되는 사상적 계보다. 테드 제닝스(76) 미국 시카고신학교 교수는 바울의 정치사상 논의를 자신의 중요한 주제로 받아 안아 신학계에서 ‘정치신학으로서의 철학적 비평’이란 비평 방식을 개척해나가는 대표적 학자다. 해방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퀴어 신학 작업물을 내놓아온 그는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성소수자단체와 연대활동을 해온 실천적 지성이기도 하다.
그가 2005년 출간해 국내에도 번역된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는 법과 정의의 관계를 고찰한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와 바울의 유사성에 주목해 저술한 책으로, 2013년에 저술해 이번에 국내 출간된 <무법적 정의>와 연작을 이룬다. 제닝스는 <무법적 정의>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철학자와 타우베스·바디우·아감벤·데리다·지제크 등 현대 정치철학자, 리처드 호슬리가 이끄는 ‘바울과 정치 연구 그룹’을 비롯한 현대 신학자의 논의 등 그동안 나온 바울의 정치신학 논의를 망라해 기독교 성서 중 <로마서>를 한 문장씩 독해해 나간다.
발랭탱 드 불로냐(1591~1632)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쓰는 성 바울>(1618~1620). 휴스턴 미술관 소장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제도와 문화로 변질돼버린 중세 가톨릭을 비판하고, 죄인인 개인들을 구원하는 것은 어떤 제도도 아닌 마음속 믿음이라며 정립한 ‘이신칭의’ 교리는 개신교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이런 교리를 특히 바울, 그중에서도 <로마서>에서 얻었다. 제닝스가 뒤집어버리는 것은 이 지점이다. 제닝스가 보기에 바울이 문제 삼는 것은 타락한 인간 본성 같은 (의심스러운) 것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불의한 ‘사회 체제'다. 종교개혁가들이 바울 신학을 개인의 내면 문제로 해석한 것은 바울이 쓴 서신들 안에 내재한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가진 정치적 의미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그러나 ‘올바름’을 ‘정의’로, ‘예수’는 ‘여호수아’, ‘그리스도’는 ‘메시아’, ‘은혜’는 ‘관대함’으로, 기존의 성서 번역에 사용된 용어를 당시의 역사적·정치적 상황이 반영된 용어로 낯설게 하기만 해도 정치적 맥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닝스는 “나를 붙들고 있는 사회의 질서가 부정의한 이상, 나는 내 손이 깨끗하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 이렇기 때문에, ‘선'은 보다 포괄적인 정의의 도래를 열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리 ‘착하게' 살더라도 제국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 기업형 농업, 공장노동 착취, 저개발국가의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물건을 사지 않을 수 없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살해하는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없는 미국 시민이 처한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무법적 정의>의 저자 테드 제닝스 미국 시카고신학교 교수. 글항아리 제공
제닝스는 국가가 법을 통해 실현하는 정의는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문제 의식이었다고 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은 ‘정의는 법과 일치한다', 로마서 방식으로 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울의 생각은 그 반대다. “바울이 이르는 결론은 법이 정의를 생산할 수 없고, 정의와 법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불화가 있으며, 정의가 (실제로) 있으려면 그것은 법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무법적 정의로서 말이다.”
그가 말하는 ‘무법적 정의’란 곧 메시아에 의해서 선물로 주어진 관대함을 받아, 그에게 충성하기로 맹세한 이들이 구성한 공동체에서 만들어지는 신적인 정의다. 이 안에서는 법으로는 도저히 강제할 수 없는 선물과 같은 관대함이 베풀어지고, 성별, 국적,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환대를 받고 서로 연대 관계를 맺는다. 제닝스는 바울이 쓴 <로마서>의 수신자들이 자신들의 메시아를 처형한 바로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 사는 “메시아주의 세포조직”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이 처한 정치적 처지는 전 지구를 지배하는 제국들과 초국가적 기업들 아래에서 살아가면서도 여기에 충성할 수 없는 좌파들과 이 체제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 무산자, 이민자, 난민, 성소수자 들의 상황과 흡사하다. 그렇기에 바울의 <로마서>는 제국의 윤리를 따르지 않는 현실의 다양한 주변인 공동체에 급진적인 윤리를 제공하는 문서로서 다시 읽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