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Part 4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경우든 누구의 경우든 마찬가지로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거요. 그래서 그 바리새인도 대접을 하지 못한 거지요. 아뭏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누가 내이름을 부르고 있는 듯하지 낳겠어요? 나는 잠을 깨었는데 --- 그 목소리는 마치 누가 귓전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내일 한길을 내다보고 있어요, 이곳에 올테니'라고 들려 왔었어요. 더우기 그 말씀은 두 번이나 되풀이되었어요. 그래서 실은 그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렇게 쭉 예수님이 납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요."
스체파누이치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고는 잔을 한쪽에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브제이치는 그 잔을 집어 들고 다시 차를 따랐습니다. "자, 실컷 들어요!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주님은, 예수님이라는 분은 이 지상을 걸어다니셨을 때, 어떤 인간이나 가리지 않고 언제나 특히 밑바닥의 인간들만 상대하셨고 언제나 이름없는 사람들의 집만 방문하셨으며, 제자를 택하실 때에도 대개 우리처럼 죄가 많은, 노동자들 중에서 고르셨지요.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지요. 또 '당신들은 나를 주님이라 부르고 있지만, 나는 반대로 당신들의 발을 닦아 준다. 누구나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그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온화한 사람, 동정심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지요.
" 스체파누이치는 차를 마시는 일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인이라 감동하기 쉬웠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아브제이치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였습니다. "자, 더 들어요."하고 아브제이치는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스체파누이치는 십자를 긋고 인사말을 하고는 일어섰습니다. "고맙소, 마틴 아브제이치. 맛있게 들었소. 덕분에 마음과 몸이 따뜻해졌소.", "천만에, 또 들러 줘요. 사람들이 와 주는 건 기쁜 일이니까"하고 아브제이치는 말했습니다.
스체파누이치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틴은 나머지 차를 마저 따라 마시고 잔과 사모바르를 치우고는 다시 창가에 앉아 구두 뒤축의 윗부분을 꿰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연방 창밖을 내다보며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는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말씀이 잇따라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창으로 두 명의 군인이 지나갔습니다. 한 명은 관급(官給)장화를 신고, 한 명은 일반 장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쁜 오버슈즈를 신은 이웃집 주인이 지나가고 바구니를 든 빵집 주인이 지나갔지만, 모두 그대로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이번에는 모직으로 만든 긴 양말과 너덜너덜하게 해진 신발을 신은 한 여인의 모습이 창밖에 나타났습니다. 그 여자는 창문 앞을 지나, 창문과 창문 사이의 벽 앞에 멈춰 섰습니다.
아브제이치는 창문 밑에서 흘끗 올려다보았습니다. 초라한 옷차림의 낯선 여자가 갓난아기를 안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등을 돌리고 벽에 기대어 갓난아기를 감싸려 하고 있었지만, 감쌀 것이 없어 난처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누더기 같은 여름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아브제이치의 귀에 창밖의 갓난이기의 울음 소리와 갓난아기를 달래려 애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브제이치는 일어나 문을 열고 입구의 계단 쪽으로 나가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이봐요!" 여자는 그 목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았습니다. "왜 이 추운 날씨에 갓난아기를 안고 밖에 서 있어요? 괜찮으니 어서 안으로 들어와요. 갓난아기는 따뜻한 데라야 잘 달래져요. 자, 이리로 들어와요.!"
여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안경을 코 위로 늘여뜨리고 앞치마를 입은 한 나이 많은 노인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여자는 노인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 방안에 들어서자, 아브제이치는 여자를 침대 쪽으로 데려갔습니다. "자, 여기에 걸터앉아요. 되도록 페치카(러시아의 벽난로) 가까이에 앉도록 해요. 그리고 몸을 녹인 다음 갓난아기에게 젖을 줘요.". "하지만 젖이 안 나와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질 않아서....."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쨌든 갓난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렸습니다.
아브제이치는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 옆으로 다가가 빵과 집시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솥뚜껑을 열고 양배추 수프를 접시에 따랐습니다. 그런 다음 페치카에서 죽을 끓이는 남비를 꺼냈지만, 아직 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배추 수프만을 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빵을 내놓고, 벽에 걸린 냅킨을 내려놓음으로써 대충 식사 준비를 끝냈습니다. "자, 여기 앉아 좀 들어요, 아기는 내가 봐 줄테니. 이래 뵈도 아이를 기른 적이 있기 때문에, 녀석들을 잘 다룰 줄 알지요."
여자는 십자를 긋고는,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제이치는 갓난아기 옆의 침대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는 갓난아기를 어르기 위해 연방 뽀뽀를 하려고 했지만 이빨이 없었기 때문에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갓난이기는 줄곧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제이츠는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어르려 했습니다.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갓난아기의 입술 앞까지 가져갔다가 재빨리 후퇴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입 속에 넣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손가락은 구두를 깁느라 더러워져 새까맣기 때문이었습니다. 갓난아기가 그 손가락에 눈이 팔려 울음을 그치고 어느 틈엔지 생글거리기 시작하자, 아브제이치도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여자는 식사를 하면서, 이윽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처지와 어디로 가는 중인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고 여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군인의 아내인데, 남편은 8개월 전에 어디론가 멀리 떠났으며, 그후로는 소식도 없어요. 나는 남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지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까 더 이상 써주질 않아요. 그래서 일자리가 없어 쩔쩔매며 석 달을 지내 왔어요. 유모가 되려고도 했지만, 아무도 고용해 주질 않았어요. 몸이 너무 야위어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도 어느 상인의 부인에게 다녀 오는 길이에요. 그 집엔 이미 한 할머니가 고용되어 있었지만 나도 써주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그것으로 다 된 줄 알고 있었는데, 부인이 다음주에 오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부인은 굉장히 먼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지쳐 녹초가 되어 버렸고, 이 귀여운 아이에게도 고생을 시켰죠. 하지만 고맙게도 그 부인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예수님 은총으로 자기 집에 눌러 있도록 약속은 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을 거예요."
아브제이치는 한숨을 쉬며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옷 하나 없어요?". "할아버지, 그래요. 이제 겨울옷을 입어야 할 철이지요! 겨우 하나 남아 있던 숄도 실은 어제 20코페이카에 저당잡혀 버렸어요.".
여자는 침대 쪽으로 다가가 갓난아기를 껴안았습니다. 아브제이치는 일어나 벽 쪽으로 다가가서 무엇을 찾고 있더니, 낡은 남자용 외투를 들고 왔습니다. "자, 이걸 가져가요. 낡아빠진 거지만, 갓난아기를 감싸는 데는 도움이 될 거요."
여자는 외투를 쳐다보고 이어 노인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더니, 외투를 받아 들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브제이치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작은 트렁크를 꺼내어 그 속을 뒤적이고 있더니, 다시 여자에게로 다가가 마주 앉았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할아버지께 은총을 내리시기를!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 창가에 오도록 만드셨을 것임에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 아이를 얼어 죽게 했을 거예요. 내가 집을 나섰을 때는 그래도 따뜻했지만, 지금은 갑자기 이렇게 추워져 버렸어요. 필시 그리스도께서 할아버지로 하여금 창밖을 내다보게 하여 불행한 저를 돌보아 주도록 만드셨을 것임에 틀림없어요!" 아브제이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도록 만드신 거예요. 다 까닭이 있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마틴은 군인의 아내에게 자신의 꿈이야기, 즉 오늘 주께서 자신이 있는 데로 납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말씀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하고 여자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그것으로 갓난아기를 완전히 감싼 후 아브제이치에게 몇 번이고 절을 하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이것을 가져가요"하고 아브제이치는 말하면서 여자에게 은화 20코페이카를 건네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숄을 찾도록 해요." 여자는 십자를 그었습니다. 아브제이치도 십자를 긋고 여자를 입구까지 바래도 주었습니다. 여자는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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