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1) 서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01

"데살로니가와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1절
석원태 목사

  Ⅰ. 데살로니가와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서

  고대 지중해를 연하여 남쪽은 아프리카 대륙, 동쪽은 아시아 대륙, 서쪽은 유럽 대륙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세계 선교 계획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다시 안디옥에서 소아시아로 가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세계 선교 계획을 위하여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보냄을 받았던 사람이다.
  성령께서 아나니아에게 알려 주신 대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고 한 결과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 바울의 선교 여로를 결정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아시아 지역인 드로아 항구에서 에게해 바다를 가르면서 구라파의 첫 성 마케도니아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저들을 빌립보 성에 내려놓았다. 저들은 거기 빌립보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다. 바로 그곳에서의 선교 열매가 구라파의 첫 교회, 어머니 교회가 된 빌립보 교회였다.

 

  1. 데살로니가

  하나님은 선교사 일행을 데살로니가로 인도했다. 구라파 선교의 두 번째 선교지였던 ‘데살로니가’는 아주 큰 도시였다. 이 도시의 최초 이름은 ‘온천’이란 뜻을 가진 ‘텔마이’(Thermai)였다. 이 데살로니가는 유명한 항구도시였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 왕이 유럽에 침입했을 때 해군 본거지를 삼은 곳이었다. 그 후 로마 시대에는 여기에 거대한 조선소가 있었다.
  주전 315년경, 마케도니아 왕 카산더(Casander,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장군)가 이 도시를 확장하고, 자기 아내의 이름을 따라 ‘데살로니가’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의 수도임과 동시에 로마 제국의 제1급에 속하는 중요 도시였다.
  로마 정청(政廳)의 소재지요, 상업 도시로서 멀리 이태리와 아시아 중간에 위치한 부요한 상업 도시로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희랍인들과 로마인 그리고 상업하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행 17:1). 그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인구 20만을 헤아리는 도시였다. 오늘날도 데살로니가 시에는 2만 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시를 ‘전 마케도니아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2. 데살로니가 교회

  바울의 전도 결과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기독교가 데살로니가에 이른 것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리스도교가 데살로니가에 온 날이야말로 그리스도교를 세계 종교로 만든 놀라운 날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행전 17장 1절로 10절에서 그 출발을 찾게 된다. 때는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을 때이다. 주후 53년경이 된다. 그는 그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간 가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다(행 17:2). 그는 성경의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을 증거했다고 했다(행 17:3).
  그러니 데살로니가 교회는 회당에서 시작되었고(행 17:1-2), 야손의 집에서 모였다(행 17:5). 야손은 붙잡힌 바울을 위하여 보석금을 지불하고 그를 빼내었다. 데살로니가에서 교인이 되어 바울의 동역자가 된 이들은 아리스다고(행 27:2, 골 4:10)와 세군도(행 20:4), 그리고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불린 가이오(행 19:29)와 데마(딤후 4:10)도 이곳 사람으로 추정된다. 모두 초기 데살로니가 교회 출신들이었다.
  바울의 전도 결과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바울은 밤에 그들을 돕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베뢰아로 피신하는 환난을 겪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었다고 했다. 저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성경을 상고하므로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고 했다(행 17:10-12).
  이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 베뢰아까지 내려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소동을 일으켰다(행 17:13). 바울은 다시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저 아래에 있는 아덴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실라와 디모데를 그곳에 머물게 했다. 일종의 선교 작전이었다(행 17:14).
  바울은 불과 3주를 머물면서 데살로니가에 예수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실로 환난 속에서의 복음 전도였다. 이때 바울은 자기 먹을 것을 위해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이 연보를 보내와서 큰 기쁨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3. 데살로니가서

  사도 바울을 쫓아낸 유대인들의 핍박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도 계속되었다(살전 1:6, 2:14, 3:3).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는 데살로니가에 다시 한 번 가보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살전 2:18). 그래서 자기 대신 디모데를 그곳에 보내어 그곳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했다(살전 3:2).
  디모데를 통하여 바울에게 전달된 소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쁨의 소식이었다. 데살로니가의 신자들이 ① 환난 중에도 신앙의 동요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살전 1:6, 2:14, 3:7). ② 형제 사랑이 돈독하다는 것이다(살전 1:3, 4:8-11). 그래서 믿음의 역사에 소문이 났다는 소식이었다.
  또 하나는 근심거리였다. ① 그것은 이방인의 풍습들을 버리지 못한 여러 부도덕한 비윤리적 행위였다(살전 4:3). ② 예수 재림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일상생활에 게으른 모습이 있다는 소식이었다(살전 4:11, 13).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영감의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 때는 주후 52년경, 고린도에서 썼다고 생각된다.
  이미 약술한 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거기서 아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바울은 베뢰아에 디모데와 실루아노를 머물게 하고 아덴으로 떠났다. 바울은 거기에서 디모데로 하여금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하도록 했다. 그 후 그 사람들은 고린도에서 바울과 합류했다(행 18:5, 살전 3:6). 그곳에서 바울이 1년 6개월을 머물던 중에 이 편지를 썼다고 생각된다.

 

  1) 왜 두 통의 서신을 썼을까?

  두 통의 편지는 간격이 별로 없이 쓰여진 것이다. 두 통의 편지는 그 내용이 흡사하다.
  처음 편지는 주 재림에 대한 각성을 촉구함에 있었다. 예컨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2, 6)라고 함에 있었다.
  두 번째 편지는 주 재림 전에 신자를 일깨우는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악한 자의 임함을 따라 일어날 배도 행위라고 말한 것이다(살후 2:3-12). 문제의 초점은 주 재림에 대한 바른 균형을 잡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재림 신앙에 치우쳐 이 세상 일을 등한히 한다든가 또한 재림에 대한 사탄의 훼방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데살로니가서의 주제는 무엇일까?

  데살로니가서는 바울 영감의 주제가 되는 이신득의의 구원론이나 기독론을 강조하지 않았다. 교리성을 띤 것이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진리이다(살전 1:10, 2:19, 3:13, 4:15-18, 5:2-4, 23). 그리고 재림 전에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등장할 것을 알려 주며 종말 진리의 파수를 경고하고 있다(살후 2:1-17).
  그럼에도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예수 종말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여러 가지 지상 전투 교회의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사도들이 전한 바른 교훈(진리)을 좇아 승리하는 생활을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재림과 신앙생활이라고 할 것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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