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강해(4) 신망애에 대한 감사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03

"교회를 향한 칭찬과 감사와 격려"
데살로니가전서 1장1절~3장 13절
석원태 목사

  Ⅰ. 문안(살전 1:1)

  Ⅱ. 교회를 향한 바울의 칭찬과 감사(살전 1:2-10) - 신망애에 대한 감사 ①

  저 유명한 웰링턴 공작의 요리사가 그렇게도 자부하던 그 공작의 요리사직을 사임하고 공작를 떠났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도 이름 있고, 보수 좋은 직장을 왜 떠났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저들의 질문에 답하기를 “식사가 좋아도 공작은 칭찬하지 아니하고, 식사가 나빠도 나를 꾸짖거나 비난하지 아니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애쓰는 보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임하였다.”라고 했다.
  참 그런가 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나 주장에 격려나 칭찬이나 혹은 책망이 없으면 의욕을 상실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바울 서신의 영감 가운데는 뜨거운 칭찬과 격려가 있고, 무서운 질책과 권면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받은 데살로니가전서 서두에, 사도는 교회를 향한 칭찬과 감사를 말하고 있다. 물론 본서뿐 아니고 바울의 모든 서신(갈라디아서는 제외) 중에는 빠짐없이 감사와 칭찬과 격려와 책망이 빠지지 않고 있다.

 

  1.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망애에 대한 감사이다(살전 1:2-4).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이라고 하였다.
  1장 2절 마지막에 사도는 기도할 때마다 「너희를 말한다」고 했고, 1장 3절 하반절에 너희를 「쉬지 않고 기억한다」고 했으며, 1장 4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의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다.
  여기 너희를 ‘말하고’, ‘기억하고’, ‘알고 있다’고 함은 교회를 향한 전도자의 간단없는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그 감사의 내용이 무엇인가?

  첫째, 「믿음의 역사」(살전 1:3)라고 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του ?ργου τη? π?στεω?)라고 하였다. KJV는 「Work of faith」라고 번역했고, NIV는「Work produced faith」라고 번역했다. 우리말 공동번역은 「믿음의 활동」이라고 했다.
  여기 ‘믿음’은 ‘구원의 조건’을 말한다.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함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는 저(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한 믿음이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믿음이다. 그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구원을 가리킨다(롬 3:26).
  그런데 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믿음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칭의의 수단’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칭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수단’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믿음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어떻게 생기는가?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그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님이 역사하게 된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심으로 믿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 큰 이유는 성령께서 그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딤후 3:16).
  그래서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모인 무리들에게 말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라고 했다. 그 결과 믿음과 회개가 일어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받은 믿음은 100%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그것은 영생 얻는 구원이다. 결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은 철두철미하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산물이다.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교육이나 수양에 의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이방 종교인들이 믿는 자율적 종교의 산물과는 전혀 다르다.

  그 다음 ‘믿음의 역사’(work by faith)이다. 직역하면 ‘믿음에 의한 일’이다. ‘믿음의 일’이다. 진정한 ‘믿음’은 실천하는 행동(행위), 일(역사, 役事)이 따라온다. 믿음은 하늘에서 임한 성령의 내적 역사이다.
  역사(행위)는 그 믿음의 외적 열매를 가리킨다.
  그것은 물론 율법에서 난 행위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행위이다(갈 2:16).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약 2:17). 생명 있는 믿음, 곧 구원받은 믿음, 영생이 자리잡고 있는 그 믿음에는 필수적으로 행위가 수반된다.
  무엇일까? 그것은 복음을 위한 선행이다.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그 선행의 내용들이 무엇인가? 복음전도 사역이다. 희생과 봉사이다. 주일성수요, 십일조헌금이요, 헌신생활이요, 감사생활이요, 여러 종류의 감사연보생활이다.
  그래서 개혁주의의 모토 중에 하나가 ‘믿음과 행위의 일치’이다. 이 믿음과 행위(役事)는 구별할 수 있다. 믿음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고, 행위는 그 선물(구원)에 대한 인적 반응이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는 떨어질 수가 없다.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행함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 된다. 믿음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 이유는 그 믿음의 구원이 초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것을 체험했다(살전 1:5, 2:13). 그래서 환난 중에도 기뻐하며 연단을 받은 것이다(살전 1:6).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를 의롭게 할뿐 아니라, 그 믿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사, 곧 행위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란 믿음에 의해서 영감 된 일(행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채찍이 무서워 일하는 노예들을 볼 수 있다.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서 일하는 삯꾼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꼼짝할 수 없는 의무감에서 일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믿음의 역사’를 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받은 은총의 힘에 감격하여 헌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영감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 행위의 결과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도록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했다(계 14:13, 20:12).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감사는 ‘믿음의 역사’였다고 했다. 바울 자신도 기도하고 감사할 때마다 이것을 ‘말하고’, ‘기억하고’, ‘알고 있다’고 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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