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전 의원 유작이 된 강연록
‘우리가 꿈꾸는 나라’ 청사진 담겨
창비 ‘지혜의 시대’ 특강 5권 세트
김대식·김현정·변영주·정혜신 참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청사진 담겨
창비 ‘지혜의 시대’ 특강 5권 세트
김대식·김현정·변영주·정혜신 참여
우리가 꿈꾸는 나라-노회찬
노회찬 지음/창비·1만2000원
노회찬 지음/창비·1만2000원
“지금은 촛불 이후 시대입니다. 촛불이 세상을 바꾸었고 변화의 첫 단추를 끼워놓은 상황이지요. 무엇을 해야 촛불의 정신이 구현되고 역사적 발전을 이룰 새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요? (…)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꼭 7개월 전인 2월20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출판사 창비가 ‘지혜의 시대’란 주제로 마련한 2018년 상반기 연속특강에서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시대정신과 당면 과제를 역설했다. 그가 꿈꿔온 나라이자 ‘우리가 꿈꾸는 나라’였다. 이 강연의 내용이 창비가 펴낸 ‘지혜의 시대 세트’(전 5권) 중 하나인<우리가 꿈꾸는 나라>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책 원고를 교정 중이던 지난 7월, 노 의원은 ‘드루킹’ 특검으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자 그 수치심과 자책감을 결국 목숨과 맞바꿔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줬다. 생전의 육성이 불과 몇달 만에 유작으로 나온 셈이다. 책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추구해온 가치관과 정치철학이 평등·공정·평화라는 열쇳말에 오롯이 담겨 있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2월 창비 ‘지혜의 시대’ 연속특강에서 강연하고 있다.
창비 제공(저작권 있음)
그는 강연에서 “공정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드러난 아주 큰 문제”라며, 무엇보다 법원과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통한 권력층 봐주기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불평등의 해소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 일자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스스로 노동해서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최저임금과 복지 확대 등 경제 민주화가 절실하다고 짚었다. 대학 서열화 해소를 위한 양질의 국공립대 확충 및 대학 평준화,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 철폐를 위한 강력한 제도 시행 등 구체적 정책 제안을 “토론과 연구로 도출해낸 최선의 방안”으로 내놓은 것도 그의 정치가 삶과 노동의 현장에 뿌리를 둔 데서 가능했다.
지난 4월 전격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열린 이 특강에서 노 전 의원은 “평화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저 멀리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다”며 “그 누구도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전쟁도 불사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망가뜨리는 것일 뿐 보수라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6년 10월 대법원과 사법연수원 등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한센인 강제 불임과 낙태 문제 판결에 대해 묻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 전 의원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뛰어들면서 약자를 위한 가시밭길 삶을 선택했다. 대학 4학년 때 공장 노동자로 취업했다. 유신 독재, 12·12 쿠데타, 5·18 광주항쟁과 전두환 독재가 이어진 격변의 시기였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뒤, 1987년 대선을 계기로 진보정당 운동의 한 길을 걸었다. 평생 공안검사를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 출세길을 달렸던 고등학교 동기동창 황교안 전 총리와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2005년 노 전 의원이 ‘삼성 떡값 검사’ 명단을 폭로했다가 되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의원직까지 상실한 ‘안기부 엑스(X)파일’ 사건의 수사팀 지휘자가 황교안 당시 서울지검 2차장이었던 얄궂은 일화는 유명하다.
‘지혜의 시대’ 세트에는 노회찬 전 의원을 비롯해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김현정 <시비에스>(CBS) 피디, 변영주 영화감독,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5명이 각각 정치, 과학기술, 언론, 창작, 죽음 등 일상과 밀접한 주제로 삶의 지혜를 전한다.
지혜의 시대 5권 세트. 창비 제공
김대식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에서, 현실로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를 무시해서도 무서워해서도 안 된다며 인간 존재 가치의 재발견을 주문한다. 김현정 피디는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에서, 뉴스의 특정한 프레임과 가짜뉴스의 홍수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사실 너머의 진실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변영주 감독은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에서, 창작을 ‘내면에 있는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는 일’에 비유하며 자기만의 ‘취향의 호수’와 ‘함께 가는 서사의 힘’을 강조했다. 정혜신 전문의는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란 제목의 책에서,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한 슬픔과 애도’가 왜 중요한지 알려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