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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홀렸다! 그래도 조용필이니 좋았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9. 26. 06:25

그래 나 홀렸다! 그래도 조용필이니 좋았어

등록 :2018-09-23 12:39수정 :2018-09-24 10:36

 

만리동이 고른 추석동반자 ② 가수 조용필

가수와 사진 잘 안 찍는 음악 기자
가왕 앞에선 ‘그런 걱정 개나 줘버려’
홀린 듯 함께 셀카 찍어 SNS 올리니
“가왕의 팽팽하고 뽀얀 피부 실화냐”

늘 기승전‘음악’ 얘기만 하는 조용필
공연에 있어 완벽함 추구해 왔지만
대구에선 노래 멈추고 관객과 울어
그래서 더 완벽한 무대 아니었을까


알고 싶은 사람, 알아도 궁금한 사람, 알수록 대단한 사람, 알기에 보고 싶은 사람. 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이 올 추석에 더 깊이 알려주고 싶은 셀럽을 골랐습니다. 조승우, 조용필, 양준일, 김제동, 정경화, 최정화 등입니다. 취재하며 느꼈던 감동과 사심을 동시에 전합니다.

지난 11일 조용필과 셀카를 찍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살짝 보정을 하긴 했지만, “가왕의 저 팽팽하고 뽀얀 피부, 실화냐” 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서정민 기자
지난 11일 조용필과 셀카를 찍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살짝 보정을 하긴 했지만, “가왕의 저 팽팽하고 뽀얀 피부, 실화냐” 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서정민 기자

가수를 만날 때 함께 사진 찍는 일이 좀처럼 없다. 너무 친밀해 보이면 음악 기자로서 객관성과 냉철함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병’ 탓이다. 하지만 가왕 앞에서 그런 걱정은 ‘개나 줘버려’였다. 지난 11일 조용필이 기자들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가왕과 셀카를 찍고야 말았다.

사진을 SNS에 올렸다. 엄청난 수의 ‘좋아요’와 댓글이 쇄도했다. 대부분 “진짜 부럽다”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가왕과의 만남을 염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건 그래서다. 많은 횟수는 아니어도 가왕과 따로 만나 인터뷰를 2~3번 했고, 함께 식사를 한 적도 두어번 된다. 그때 느낀 점들을 나눠보려 한다.

조용필을 만나면서 늘 느끼는 점은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음악 얘기만 한다. 가끔은 다른 사적인 얘기도 할 법한데, 음악 말고 다른 얘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난 4월 인터뷰 때다.

“데뷔 50돌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음악 그 자체죠. 지금도 음악을 배우고 있어요. 죽을 때까지 배울 겁니다. 배울 게 많아요. 몰랐던 것에서 자극을 받고 에너지를 받아야 내가 움직여요. 그게 즐거워요. 숙제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에요. 그랬다면 지금까지 못했을 겁니다.”

“5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2003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공연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해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죠. 슬픔과 기쁨이 함께 있던 해였어요.”

“정신적으로 힘드셨겠어요.”

“아내가 떠났을 때 슬프고 힘들었지만, 음악이라는 큰 기둥으로 버텼어요. 그해 처음으로 올림픽주경기장 공연을 하면서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죠.”

이처럼 어떤 질문을 해도 기승전‘음악’이다. 그는 “처음에는 음악을 취미로 시작했다가 그 중독성 때문에 평생을 하게 됐다. 인생=음악, 음악이란 내 삶이다. 삶의 전부다”라고 했다.

지난 4월 기자와 인터뷰 하는 조용필. YPC 프로덕션 제공
지난 4월 기자와 인터뷰 하는 조용필. YPC 프로덕션 제공
  
지난 11일 만남에서도 마찬가지다. 식사 자리라 좀 편하게 다른 얘기를 할 법도 한데, 그는 내내 공연과 앨범 얘기만 했다. 이날 만남에선 새삼 다른 면모도 느꼈다. 공연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자신보다는 관객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5월 잠실 주경기장 공연 때 비가 와서 무척 안타까워하시던 게 기억나요.”

“무대에 천막을 치니 카메라가 위에서 잡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관객들이 보기에 답답하거든요. 그래서 의정부 공연 때는 천막 걷고 비 맞으며 했어요. 관객들은 비 맞는데 나만 천막 치고 하면 미안하잖아요.”

“대구 공연 영상을 보니 ‘비련’ 부르시다가 많이 우시더군요.”

“뭉클했어요. 객석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보니 관객들이 너무 울고 있더라고요. 그 기운이 나한테 왔어요. 그걸 보니 내가 너무 뭉클해진 거죠. 힘들었어요.”

“평소 관객과 소통과 교감을 많이 하시나요?”

“사실 공연 때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앞이 잘 안보여요. 간혹 조명이 객석을 비춰 내 눈에 보일 때가 있는데, 관객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절로 힘이 나요. 너무나도 행복해 하는 표정들이 눈앞에 보이면 저도 감동하죠.”


조용필은 대구 공연에서 눈물을 흘리느라 목이 메여 ‘비련’을 한참 동안 부르지 못했다. 공연에 있어 사소한 실수도 용납 않는 그의 기준에서 보자면, 큰 실수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는 대신 관객들과 함께 울었다. 이날 그는 더없이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조용필은 자신의 공연을 철저히 모니터링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보통 토요일에 공연을 하고 나면 월요일에 그 영상을 다 보고 그 다음 공연 때 뭔가를 수정해나간다”고 그는 말했다. 가왕의 경지에 이른 그이지만, 정작 자신에겐 한없이 엄격하다.

“지난 공연 영상 보고 있으면,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어딜 봐도 매력이 없어. 참….”

늘 겸허하고, 늘 새로운 걸 배우려 애쓰고, 늘 관객을 생각하는 조용필. ‘영원한 가왕’의 자격이 충분한 이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63267.html?_fr=dable#csidx8e92f0e235a23f2b67a3b3022c61b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