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최후의 심판[말 한마디가 한 아이의 운명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거지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10. 18. 09:32

070415 최후의 심판                                               설교집 Ⅲ<너는 행복자로다> 3-19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31-40)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작품에 천지창조가 있습니다. 로마 바티칸 궁 옆에 시스티나 성당이 있는데 천정화 그림을 4년에 걸쳐 그렀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그리느라고 목이 다 구부러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작품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작품의 4분의 3정도가 이루어지면 그때 공개하겠습니다.’ 그래서 비밀 작업으로 진행한 것이지요. 이제 약속한 때가 다가왔는데 교황의 한 신하가 와서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그림을 비판했습니다. 온통 하나 가득 누드거든요. 나체그림들이지요. ‘이게 무슨 성당에 적합한 그림이냐. 공중목욕탕에나 어울릴 그림이다.’ 그 소문을 미켈란젤로가 들었어요. 르네상스 화가들에게는 재미있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림 중 어느 한 인물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거든요. 이 그림은 천국과 그 다음 예수님과 그를 따르던 제자들의 무리, 그 아래는 연옥, 맨바닥에는 지옥,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 그림인데 미켈란젤로는 예수님 바로 아래서 무릎을 꿇는 사람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그려 넣고 그 못된 소문을 퍼트린 사람의 얼굴은 지옥 저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의 얼굴에 그려 넣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황도 내심 불만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그 높은 명성을 건드릴 수가 없어서 기다렸다가 그가 죽은 후에야 명령을 내려서 그 누드에 옷을 입혀라. 그래서 많은 그림에 옷을 덧입히게 되었다 하는 것이지요.

그 벌거벗은 모습이 그렇게 부끄럽습니까. 이미 가수 최희준은 진리를 깨달은 거 같아요.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성경도 그렇게 말하지요. 욥기에 보면 고난 당하는 욥이 내가 이 세상에 적신으로 태어났사오니, 벌건 벌거숭이 몸뚱이로 태어났사오니 주님이 다 가져가신다 한들 제가 뭐라 말씀 드리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요, 벌거숭이로 태어나 벌거숭이로 돌아가는 인생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총이 있는 것이지요. 화려한 교회를 지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그 눈먼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 요한계시록 3장에 많은 교회들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시대의 교회 모습에 대하여 너희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너희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전해주셨던 말씀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붙들려 십자가로 가시는 것이지요. 종말에 관한 말씀이에요. 세 가지 비유를 드셨어요. 첫째,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지요. 언제 신랑이 올는지 모르는 거예요. 유대 풍습에는 한밤중에 신랑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핵심이 무엇입니까. 신랑이 오는 그 시간과 그때는 결코 알지 못하니 깨어있으라. 야고보 사도는 우리 인생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 햇살에 한 순간 스러져가는 안개와 같다. 언제가 나의 마지막 순간일는지 알 수 없다. 깨어있으라.’

어제 한국은 모처럼 봄 날씨가 좋았나 봐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봄나들이를 다녀왔다는 거예요.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나 어제도 봄나들이 간 한 가족이 그만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가지고 가드레일을 들이박아 가족 중에 어린 두 딸이 죽었어요.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한평생을 다 살아도 안개 같은 인생인데 뜻하지 않는 재앙이 순간순간 우리를 기다리는 그런 인생이지요.

두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예요. 원래 이 달란트라는 것은 그 당시 사회에서 쓰이던 아주 고액의 화폐단위이지요. TV탤런트도 같은 말이에요. 어원이 같아요. ‘재능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살거냐. 다섯 달란트를 받았느냐 두 달란트를 받았느냐 한 달란트를 받았느냐 사람들은 이걸 가지고 따지지만 하나님에겐 그건 관심 없어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수고해서 두 달란트를 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받은 것을 감사히 여기고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내 뜻을 따라 살았으니 이제 내가 더 풍성함을 주리라.’ 그러나 서로 비교하고 내 것이 작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기의 재능을 썩혀 둔다면 그는 어두운데 내쫓길 것입니다.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얼마든지 많지요. 부질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좇아가려고 한다면 그건 방향을 잘못 잡은 거에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재능은 얼굴 만큼이나 성격 만큼이나 다 다른 거지요. 하나님이 보실 땐 한사람 한사람 다 소중하고 귀한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신 비유가 오늘 본문의 말씀인 양과 염소의 비유이지요. 마지막 심판이 있는데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영생에 들어갈 자와 영벌의 고통을 당할 자를 가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준은 네가 세상 사는 동안 얼마만큼 베풀었는가. 지금 여기에 있는 지극히 작은 한 형제에게 나누고 베푼 것이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우리의 삶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그러니 최후의 심판은 지금 현재 진행형이에요. 지금 이루어지고 있어요.

최근 러시아에서 이런 책이 나왔어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러시아의 앵커와 작가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인데 이게 아주 베스트셀러가 됐답니다. 러시아가 민주화되고 또 자본주의 경제로 들어오면서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 올리가르히신흥갑부들이 일어났거든요. 올리가르히를 사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 미소. 웃어야 돼요. 둘째, 유머. 셋째, 낙관주의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는 거지요. , 그런데 여기 조언이 아주 치밀합니다. 그 사람들과 결혼했을 경우에는 결혼한 첫날부터 이혼을 준비하라이렇게 되어있어요. 이혼을 준비하는 방법은 보석을 많이 사 모아라. 그래야 얼른 끌어안고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또는 얼른 남편 돈을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차려라. 그러나 결론은 이겁니다.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평범한 중산층과 결혼하라. 이들이 내놓은 결론이에요. 그러니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해요. 얼굴표정을 보니 전혀 믿지 않으시는 거 같습니다. 이제 그 행복에다가 하나 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누는 삶의 행복’, 그건 하나님의 기준이에요.

, 저 놀랐어요. 김장훈이라고 하는 가수가 있어요. 신문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별명이 선행천사래요. 지난 10년 동안 30억 원을 구제하는데 썼다는 거예요. 매달 3개 보육원에 1500만원, 그러려면 하루에 50만 원씩 계속 기부하는 거예요. 그리고 가출 청소년, 방황하고 피곤한 아이들을 끌어안고 상담해주기 위해 쉼터 버스를 운영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마포 한쪽 구석에 아파트 월세를 산다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그랬더니만 그 어머니가 저 일산 파주 쪽에서 청소년 목회를 하신다는 거예요.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인 거 같아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기가 그렇게 했다. , 멋있지 않아요. 사회에서 유행에 앞서가고 사치스러운 면으로 앞서가는 연예인이 나누고 베푸는 선행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난 우리 식구들이 다 이렇게만 되었으면 좋겠어요. 교회에서 열심 내는 거, 그것도 좋지요. 그러나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은 잘 운영해서 돈도 좀 많이 버시고 뭘 하든지 잘 하시고 그렇게 해서 그곳에서 알게 모르게 나누고 베풀고 썼으면 좋겠어요.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조나라 무령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고민이 있었어요. 이 고님은 자기나라만의 고민이 아니라 중국 전체의 고민이었어요. 그것은 저 북방의 흉노가 늘 쳐내려오는데 이게 아주 위험한 거예요. 북방 흉노는 기병이 중심이 돼있는데 이 중국사람들은 보병이 중심이 되어 있어요. 싸워봐야 지지요. 전차를 가지고는 그 날랜 기병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무령왕이 고심 끝에 흉노와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도 기병을 양성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병을 키웁니다. 그러면 말 위에서 적과 싸워야 되는데 중국사람들의 치렁치렁한 옷자락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또 하나 중요한 변신이 필요했어요. 흉노들이 입는 그 오랑캐바지, 말 타기 편하고 싸우기 편한 그 오랑캐바지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 그랬더니 막 사방에서 비난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오랑캐의 문화를 받아들인다고. 그러나 오랑캐를 꺾기 위해서 오랑캐바지를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자기가 먼저 오랑캐바지를 입고 기병을 이끌고 나아가서 흉노를 꺾었어요. 그래서 100년의 번영을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여기 모여서 예배 드리면서 잠깐 위로를 얻는 것으로만 한다면 이건 절름발이 신앙이지요. 오랑캐 같은, 가장 첨단을 달리는 세속문화 속에 더불어 같이 들어가되 우리의 정신은 주님이 보여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담아서 그들과 교제하고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말 한마디라도 격려하고 위로하고 나누고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보니까 너무나 단순하고 명쾌해요. 이해 못할 구석이 없어요. 굶주린 자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병들어 아파하는 자를 찾아가서 위로해주고,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날에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 말은 우리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상급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 한마디로 멋있게 살았느냐 이거지요. 움켜쥐면서 산 게 아니라 나누고 베풀면서 살았느냐.

여기 선행을 한 의인들이나 그렇지 못한 악인들이나 똑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렇게 했습니까,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인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몰랐던 거지요. 우리가 사실 교회에서 밖을 향해서 구제를 한다고 할 때 좀 무명으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면 또 말이 많은 세상이라 서로 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교회 이름을 밝히면서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걸 더 넘어서 가야지요. 남을 의식해서 하는 구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런 생활 속의 구제여야지요.

마틴이라고 하는 로마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이었어요. 어느 추운 겨울날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한 거지가 추위에 떨고 있어요. 동전 한 닢을 구하는 거예요. 마침 자기에게는 줄 돈이 없었어요.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가 두르고 있던 외투를 칼로 쭉 찢어가지고 절반으로 그 거지를 감싸주고 자기는 나머지 절반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날 밤에 꿈을 꿨어요. 하늘나라가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 예수님과 천사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천사가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예수님 오늘 따라 패션이 좀 다릅니다. 예수님 어디서 그런 것을 얻으셨습니까.’ 보니까 반 쪼가리 외투를 예수님이 걸치고 계시는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종 마틴이 나에게 주었느니라.’

우리가 꼭 돈으로 돕는 것만이 구제가 아니지요. 저는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려요. 참 많은 격려를 받고 사랑을 받아요. 기도도 해주시고 식사초대도 해주시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지난 주간에 어느 미혼 여 선교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제가 아는 선교사님이에요. 아니, 왠 일이시냐, 잘 지내시느냐. 저에게 전할 말씀이 있대요. ‘한마음교회에 나가시는 분이 저에게 작지만 후원하시겠다고 그러는데 목사님 그거 괜찮겠어요?’ 당연히 괜찮지요. 그렇게 되길 원해요. 그런데 가끔 선교사님들과 이야기해보니까 간혹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자카르타에 나왔을 때, 아는 분들을 만났을 때, 혹시라도 그 교회 목사님이 불쾌해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아이고,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회를 얻는 대로 마음껏 하세요. 아마 제가 여러분에게 받는 그 배려와 격려를 그분들이 받는다면 백배 천배 힘을 내서 일하실 수 있을 거예요. , 그렇다면 얼마나 좋아요. 여기서의 자그마한 만남과 격려를 통해서 그분은 그곳에서 힘있게 일 할 터이니 얼마나 좋은 방법이에요. 배려와 격려.

여러분, 김장환 목사 사모님이 미국분이잖아요. 트루디 사모님. 그러니까 그 자녀분들이 다 혼혈이잖아요. 그 맏아들이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만 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그 얼마나 놀림이 심했겠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너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인 학교를 다녀야 한다.’ 그래 초,,고등학교를 다 한국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일 년간 미국에 갔어요. 미국에 가니까 또 고민이 생긴 거예요. 한국에서는 생김이 달라가지고 놀림을 받았는데 미국에 가서 보니까 자기하고 다 비슷한데 이번에는 속알맹이가 다른 거예요. 자기는 엄마하고 영어를 해서 듣고 말하기는 하지만 책으로 배운 적은 없기 때문에 까막눈이에요. 걱정이 된 거예요. 초등학교 4학년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가득 찼어요. 엄마와 함께 그 학교에 갔어요. 교실에 들어갔어요. 정말 바지에 오줌을 쌀 정도로 초긴장을 하고 있는데 첫 시간이 하필이면 영어 스펠링을 공부하는 시간이에요. 선생님이 지목하는 학생은 선생님이 발음을 하면 일어나서 스펠링을 쫙 대야 되는 거예요. 자기는 한번도 배우지도 못했던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김요셉 이라 나와자기를 부르더라는 거예요. 이제 오줌이 나오기 직전이에요. 당황해서 바짝 얼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말합니다. ‘여러분 내가 얼마 전에 여러분에게 미리 얘기했지요. 한국에서 한 학생이 올 것이라고 이 학생이 바로 김요셉입니다. 이 학생은 이러이러한 형편으로 일년 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할 겁니다. 요셉이는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이 칠판에다가 내 이름을 한국어로 쓸 수 있겠어? 샤프.’ 그 순간 영어로 쓰라고 그랬다면 자기는 지옥으로 떨어졌을 텐데 한국어로 샤프를 써달라니 얼마나 쉬어요. 그래 샤프라고 쓴 거지요. 그래 어떻게 됐겠어요. 애들이 몰려와 가지고 내 이름도 좀 써줘. 한국어로.’ 1년 내내 그 학교에서 한국어로 자기 이름쓰기가 유행이 되었다는 거예요. 1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생긴 거는 미국사람 같이 생겨가지고 영어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한국말을 잘하는 아이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한국에 돌아온 거지요. 선생님의 지혜를 보세요. 이 말 한마디 그 한 순간의 결정으로 한 아이의 운명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거지요.

교회는 참 복된 곳입니다. 이곳에서 바로 이렇게 복된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거지요. 애플컴퓨터의 설립자였던 스티브잡스가 70년대, 애플이 제대로 크기도 전에 본격적으로 이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는 펩시콜라의 CEO로 내정된 존 스컬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에 와서 일할 수 없겠는가?’ 이렇게 제의를 하면서 여보게 존, 거 자네 여생늘 달달한 물이나 팔면서 보낼 터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데 쓰겠는가?’ 그 말 한마디에 그는 이쪽으로 옮겨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던 일 그만두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 달달한 물이 되었든 쓴 물이 되었든 열심히 하길 바래요. 그러나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대로 자그마한 것이지만 관심을 나누고 배려를 나눔으로 넉넉한 교회, 풍성한 교회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나누고 베푸는데 지극히 인색했던 우리들입니다. 나누고 베푸는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날마다 구체적으로 맛볼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을 깨닫게 해주셨사오니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