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지난주에 내보낸 올해 문학 결산 기사는 절반이 작고한 문인들 얘기였다. 최인훈, 김윤식, 황현산, 허수경, 그리고 문충성, 이승훈, 최옥정…. 죽음이란 자연 질서의 일부이니 특별히 유난 떨 것 없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올해의 죽음들 앞에서는 아무래도 냉정해지기 힘들었다. 어쩐지 문학의 한 시대가 끝난 듯한 허전함과 상실감을 떨치지 못하겠다. 황현산 선생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 포천 작업실로 찾아뵀었다. 얼굴이 창백해 보이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차분하고 담담한 모습이었다. 우리 일행만이 아니라 식구들과 제자들까지 거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이따금씩 연한 미소를 짓던 선생. 이승과 저승에 한 발씩 걸쳐 놓은 듯한 그 시각,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최옥정 작가와는 3월에 구례와 하동으로 봄꽃 여행을 다녀왔다. 그와 가까운 문우들이 동행이었다. 그 무렵은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되어 전망이 불투명할 때였다. 당자나 친구들이나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추억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최옥정은 힘든 내색이 전혀 없었다. 흐드러진 산수유꽃 아래에서, 하동 시인의 집 볕 좋은 토방에서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서 미구에 찾아올 죽음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았다.“나의 주위는 마치 공동묘지 같습니다. 생활력을 잃은 백의의 민(民)―망량(??) 같은 생명들이 준동하는 이 무덤 가운데에 들어앉은 지금의 나로서 어찌 ‘꽃의 서울’을 꿈꿀 수가 있겠습니까?”죽음으로 얼룩진 한 해를 보내노라니 죽음과 무덤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소설 한 편이 떠오른다. 염상섭의 중편 <만세전>(萬歲前). 제목 그대로 1919년 3·1만세운동 한 해 전 겨울을 배경 삼았으니,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이야기인 셈이다. 동경에 유학중이던 이인화가 아내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경성에 왔다가 아내 상을 치르고 동경으로 돌아가는 여로형 구조 안에 만만치 않은 문제의식을 내장한 소설이 <만세전>이다. 1922~24년 발표 당시 일제의 검열을 의식해야 했기에 한계가 없지 않은 대로, 식민 치하 조선의 억눌린 현실을 핍진하게 그렸다.이런 외재적 억압과 함께 조선 사회의 낙후한 의식과 습속에 대한 분노와 슬픔 역시 소설에서는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이 소설의 원제는 ‘묘지’였던바, 주인공 이인화와 작가의 눈에는 근대에 미달한 조선 반도 전체가 무덤으로 비쳤던 것이다.“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허수경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앞부분)26일 저녁 서울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당에서는 송년 시 낭송회가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애송시를 읽고 약간의 공연이 곁들여지는 조촐한 모임인데, 올해로 12년째다. 출연자 중 한 분이 허수경의 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를 낭송했다. 독일과 한국, 죽음과 삶의 거리가 엄연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고독으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돌아가신 분들이 남은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 바로 그것 아닐까. 허수경 시의 마지막은 그이들이 건네는 서늘한 인사 같다.“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