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14) 바울의 고백적 간증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40

"바울의 고백적 간증"
3. 고난(박해)의 의의(빌 1:27-30)
-복음적 시민-
빌립보서 1장 27~30절
석원태 목사


1) 복음 신앙의 시민이 되라.

2) 복음의 시민 됨의 의의

주어진 본문 빌립보서 1장 29-30절은 앞에 나온 복음의 시민 된 그 이유를 말함이다.
빌립보서 1장 29절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이유 접속사 ‘호티’(o[ti)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다.
이 본문의 시작에 ‘너희에게 은혜가 주어진 것은…’이라고 했다. 여기 ‘은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먼저, 은혜를 주신 목적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의식은 바울 영감의 주제이다. 목적적 창조관, 목적적 인생관, 목적적 존재관이다.
목적으로서의 그리스도, 수단으로서의 인생, 목적으로서의 하나님의 영광, 수단으로서의 전 피조물의 존재를 말함이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다.
로마서 14장 6절에는 날도, 절기도, 의식주의 모든 것도 다 주를 위함이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함으로 자기 삶의 주체적 실존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한다.
앞에서 생각한 대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함이라(빌 1:20)고 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목적관이다.
우리에게 은혜가 주어진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라고 했다. 또 빌립보서 1장 29절 중반절에 「고난」받는 것도 주를 위함이라고 했다.
그 다음 은혜의 내용이다.
은혜의 내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라고 했다. 은혜의 내용은 「믿음」이다.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다.
로마서 5장 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구원 얻는 은혜는 믿음이다. 이러한 칭의 교리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베푸신 말할 수 없는 은혜이다. 거저 주시고, 거저 받아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게 은혜로 얻어진 믿음, 그 믿음의 결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구원받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최우선 자리에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한 믿음이 자리한다.
두 번째 그 은혜의 내용은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b)고 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구원받은 것은 은혜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도 은혜라는 것이다.
믿음의 목적이 그리스도고, 고난의 목적도 그리스도다. 구원의 왕도는 믿음, 오직 믿음뿐이다. 거기에는 고난이나 그 어떤 선행의 업적도 자리 잡을 수가 없다.
구원의 조건(방편)은 믿음이다. 그러나 고난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난은 구원받은 은혜의 결과 주어진 특별한 축복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가 성화에 이르는 수단이다. 은혜로 주를 위하여 구원받은 자들은 또한 은혜로 주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새로운 ‘고난’이란 십자가를 짊어지고 좁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로 받은 고난을 「같은 싸움」이라고 했다. 1장 30절에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라고 했다. 바울이나 또 다른 어떤 유의 그리스도인이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같은 싸움」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이 세상에서 예외 없이 당하는 동일한 필수 과목이다.
이 ‘싸움’이란 말 ‘아곤’(avgw,n)은 운동장에서 수많은 관중 앞에서 경쟁하는 경기를 뜻한다. 바울이 의도한 싸움이란 뜻은 사탄과 죄와 세상과 싸우는 영전을 말한다. 영과 육의 대결을 말한다(엡 6:10-17). 바울은 다른 말로 씨름이라고 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바울은 이 싸움으로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 안에서 본 바라고 했다. 「내 안에서 본 바」(빌 1:30)라고 했다. 이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당한 여러 박해의 상황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바울은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고(설교) 기도하다가 귀신 들린 여인을 만나 그를 마귀에게서 자유하게 해 주었다. 그 일로 인하여 투옥이 되었다. 옥중의 기적을 체험하고, 옥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사실이다. 다음 날에 바울이 다시 로마 시민권을 행사함으로 박해에서 자유한 사실이다(행 16:16-40).
그리고 현재 그가 로마에서 고난을 받고 있음을 교인들이 듣고 알고 있는 일이다(빌 1:12). 또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에바브로디도에게 들었을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다고 했다. 빌립보 교회가 감당한 싸움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 예수 믿고, 교회를 세워 전도한다는 그 자체가 고난의 내용들이고 성분들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고 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고 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잘 믿는 자에게 핍박(고난)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주님을 크게 사랑하고, 높이고, 주님의 구원을 자랑하고, 전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나타난 두 증인, 두 선지자, 두 감람나무, 두 촛대로 표상된 교회는 1,260일(사흘반 동안,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마흔두 달)간 복음을 전했다. 소돔이요 애굽이라고도 하는 우리 주님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증인). 그 결과 죽임을 당했다(순교). 그러나 저들의 결국은 사흘 반 후에 하늘로부터 임하는 생기를 받아 영화로운 부활을 하게 된다. 전투 교회의 최후 승리인 것이다.
빌립보서 1장 12-30절에 나타난 바울의 고백적 간증을 생각했다.
먼저, 투옥의 의의는 복음의 진보였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하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생사의 의의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함에 있었다. 이유는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시민이 된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함에 있다고 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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