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13) 바울의 고백적 간증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39

"바울의 고백적 간증"
3. 고난(박해)의 의의(빌 1:27-30)
-복음적 시민-
빌립보서 1장 27~30절
석원태 목사


  바울 사도의 고백적 간증을 받고 있다. 그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자기가 투옥된 의의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복음의 진보(빌 1:12-17)가 되고, 그리스도가 전파된 것이라고 했다(빌 1:18). 바울은 이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했다(빌 1:18b).
  다시 바울은 자신의 생사 문제에 대하여 고백적 간증을 남겼다. 바울이 죽고 사는 문제는 ‘구원에로 이르는’ 목적적 섭리가 있다고 했다(빌 1:19). 그리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고픈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이미 자기의 생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빌 1:20, 21).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환난)과 고난의 의의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복음의 시민’이 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1) 복음 신앙의 시민이 되라.

  빌립보서 1장 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했다. 이 본문이 이 부분의 주제이다.
  여기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된 소식을 뜻한다. 그리고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단어 ‘폴리튜오마이’(politeu,omai)는 ‘시민생활’을 뜻한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복음의 시민으로 걸어다녀라’라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사용한 ‘생활하라’는 단어 ‘시민이 되라’는 말은 당시의 로마 시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으로서 영예롭게 사는 것과 관계되어 있는 단어이다.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당시 로마 시민은 세계 최고의 시민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는 라틴어로 말을 하고, 라틴 풍의 옷을 입고, 행정관은 라틴 이름으로 그 직함을 불렀다. 그래서 저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때나 로마 시민에 합당한 의무와 권리를 행사했던 것이다. 바울은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 보유자였다.
  이런 로마 시민권적 배경을 가진 단어를 사용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복음의 시민’으로 살아야 된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 긍지로 복음의 요구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성실히 감당해야 된다고 한 것이다. 결코 세속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거나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걸어가야 된다고 한 것이다.
  그 목적은 「이는…듣고자 함이라」(빌 1:27-28)고 바울은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무엇을 듣고 싶어 함이었던가? 그리스도 복음의 시민생활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복음적 시민생활이 무엇인가?

  첫째는 한 영(evn e`ni. pneu,mati), 한 뜻(mia/| yuch/|)으로 굳게 서는 것이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한 영’이란 ‘한 심령’을 가리키고, ‘한 뜻’이란 사색 작용 혹은 이해, 다시 말하면 의지의 욕망을 뜻한다.
  한마음과 한뜻으로 ‘굳게 서서’라고 했다. 이는 공동체의 전투태세를 가리킨다. 함께 대적 앞에서 뭉치고 단합하는 것, 아니면 함께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빌립보서 4장 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한 경우이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개성과 다른 성과 다른 지방과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졌다 할지라도 저들은 이미 ‘한 영’ 안에 ‘한뜻’이 된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심령과 한뜻으로 굳게 서야 된다. ‘선다’(sth,kw)는 말은 ‘좁게 선다’는 뜻으로 한 목적으로 전투태세에 임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칼빈(J. Calvin)은 ‘단합은 교회의 우수한 덕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교회를 건전한 상태로 보존시키는 비결이다.’라고 했다.

  둘째, 한 영과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① 복음의 교리적 고백에 함께 아멘하는 뜻이고,
  ②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행위에 힘을 모은다는 뜻이고,
  ③ 복음의 영광을 기뻐하는 일에도 함께 한다는 뜻이다.
  십자가 구원의 복음 앞에 굳게 서서 뭉치고, 또 그 구원의 복음을 함께 고백하고, 전하고, 그 복음의 나라가 확장될 때 기뻐함에도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대적자(박해자) 앞에서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1장 28절에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고 했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은 내적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일심으로 굳게 서서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으로 대적자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의 대적의 정체가 누구였을까?

  유대주의였고, 또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원래 빌립보는 유대인이 적은 도시였으나 저들은 언제나 바울의 복음 전도에 대적 노릇을 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격려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말라고 했다. 몸과 영혼을 아울러 지옥 불에 던지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다(마 10:28).
  다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했다. 복음의 신앙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 앞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복음의 신앙은, 대적하는 자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표임을 깨달으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전투 중에 임하는 병사들의 마음 자세는 그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 적군의 파상공격에도 복음의 신앙으로 무장하고, 용기와 담력과 필승의 확신으로 임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이러한 복음 선교의 현장 사건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구원사적 섭리라고 했다. 1장 28절 하반절에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했다. 영감의 중심 뜻은 복음의 시민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일 때문에 마음 한뜻으로 ‘서서’ 뭉쳐야 하고,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하고, 대적자 앞에서 겁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도는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런 내용의 삶을 듣고 싶다고 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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