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19) 성화적 구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45

"성화적 구원"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석원태 목사


  1. 교회를 향한 사도의 권면과 경고

  1. 교회생활(공동체의 윤리)에 관한 권면

  2. 그리스도의 본(빌 2:5-11)이 있다.

  3. 성화적 구원(빌 2:12-18)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영감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겸손으로 일치하기를 원했다. 그 겸손의 비결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고 무덤에 장사 지내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짐에 있다고 했다.
  이제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인 된 신자 개인 개인의 ‘자기 구원을 성취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먼저 사도는 ‘구원’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빌 2:12a)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자들’, ‘아가페토이’(avgaphtoi,)는 ‘사랑을 입은 자들’을 지목한 말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속죄하여 줌으로 구원의 사랑을 입은 자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를 전제하는 특수한 말이다. 결코 일반적인 말이 아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따스하고 지극한 애정의 표시이기도 한다(빌 4:1).

  1)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한 말씀이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에 대한 바른 뜻부터 생각해야 한다.
  ‘구원’에는 ‘공로적 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칭의’가 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라고 한 것이다. 로마서 1장 17절대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한 경우이다.
  로마서 5장 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경우이다. 그것은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100% 인간의 죄와 죄의 결과인 진노의 형벌에서 완전 사죄, 영원 사죄를 베푸시는 은혜의 구원이다. 결코 자력이 자리 잡을 수 없는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구원이다. 예수 십자가 공로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이 말은 속죄 구원, 공로적 구원이 아니라 그 속죄 구원에 참예한 자들이 완전 영화에 이르는 과정에 따라오는 ‘성화적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이 말한 우리 구원의 서정에는 ① 창세전에 하나님의 예정이 있고, ② 하나님의 소명(부르심)이 있고, ③ 하나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중생이 있고, ④ 중생의 결과적 반응으로 회개와 믿음, 믿음과 회개가 있고, 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칭의 선포가 있고, ⑥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부여된다. ⑦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장성(성장, 성화)하여 가는 성화적 단계가 있고, ⑧ 여기에 수반되는 견인(오래 참으심)의 과정이 있으며, ⑨ 영화(궁극적 구원)됨의 성취가 있게 된다.

  지금 바울이 말한 ‘너희의 구원’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장(성화) 과정의 구원을 가리킨다. 이러한 성화의 믿음에는 인간의 노력과 협동이 따르게 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시는 작업으로서의 순종하는 행위의 믿음이다.
  이러한 성경에 대하여 크게 잘못되게 오해하는 신학 사상이 있다. 예컨대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이다. 저들은 은혜와 믿음이 선물이라고 하면서도 인간 편에서 그것을 받고 싶으면 받고,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하나님 편에서 예수의 십자가로 죄인 구원을 이루어 놓아도 인간 편에서 그것을 받아주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합동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사상이다. 예수님의 속죄적, 공로적 구원을 100% 믿음으로 받게 하신 하나님은 또한 그 구원을 성취하여 나가시는 성화적 믿음에 인간의 노력을 참여 시키시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가게 하신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그때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군중 앞에서 걸어가고 말았다. 이런 경우 일어나라고 명령하신 주님은 그가 일어나 걸어갈 수 있는 힘도 아울러 주시는 것이다(막 2:9-12).
  또한 주님은 손 마른 자에게 ‘손을 펴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가 손을 펼 수 있는 능력(힘)까지 주신 것이다(눅 6:6-10).
  이런 경우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또한 그 명령에 수반되는 인간 편의 힘까지 주신 것이다. 그 인간은 자신이 건강하여지는 축복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협력이 있었던 것이다.
  성경 본문에 하나님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그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도 직접 관계하고 계신다고 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다.
  성화적 구원의 가능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거저 주시는 믿음의 구원도 주시지마는 그 받은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고, 간수(지킴)하고, 장성시키는’ 성화의 가능까지 주신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곧 성도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욕을 주심이다. 비전을 주심이다. 감격과 감사의 헌신이다.

  우리 속에 소원을 주시기도 하시고(의욕), 또 그 소원 성취를 위하여 행할 힘 곧 생동하는 순종을 불러일으키시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묻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선(구원)을 성취하도록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였으니 우리는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성경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믿음) 뿐 아니라, 그 구원이 우리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유효하게 하시는 순종심도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성경 빌립보서 2장 12절 중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하고, 복종함이 고역과 수고의 쓴 잔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순종은
  ① 우리 생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7절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했다. 그것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다.

  ② 또 그렇게 순종함이 우리 생존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했다. 여기에 우리의 유쾌하고 건전한 생명력이 일어난다.

  ③ 그 순종은 하나님의 뜻대로 영존하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2장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다. 언제나 자신의 생존의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④ 구원을 이루는 순종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7장 17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깊은 지혜가 자기 생존의 빛이 되는 것이다.

  ⑤ 우리 구원을 이루는 순종은 언제나 그 기도에 응답을 받게 된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언제나 소망의 체험이 되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영감은 신자 개인 개인의 ‘성화적 구원’을 말하고 있다.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속죄 공로적 구원을 받은 자는 자기 속에 선한 소원을 불러일으키게 함으로 성화적 구원 곧 자라가게 하는 믿음을 갖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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