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20) 성화적 구원에 나타나는 여러 표식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45

"성화적 구원에 나타나는 여러 표식들"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16절
석원태 목사


 Ⅰ. 교회를 향한 사도의 권면과 경고

  1. 교회생활(공동체의 윤리)에 관한 권면
  1) 교회의 일치 단합(빌 2:1-4)
  2) 그리스도의 본(빌 2:5-11)

  2. 성화적 구원(빌 2:12-18)  -너희 구원을 이루라
  1)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한 말씀이다.
  2) 성화적 구원에 나타나는 여러 표식들(빌 2:12-16)

  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영감 서신은 모든 신자들은 마땅히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그 겸손의 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했다. 그렇게 십자가로 하나되는 겸손은 ‘자기 구원’ 곧 성화적 구원을 이룸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하였다.
  성화적 구원에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영적 진보의 표식들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상향적 진보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오는 세상인 하나님의 나라로 여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표식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의 경외적 마음이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
  ‘두렵고 떨림’이란 하나님을 향한 높은 경외심의 상태를 가리킨다. 크신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존재하심 앞에서의 자기 존재를 비교할 때,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일종의 경외심과 공포심을 갖게 되는 마음의 태도이다.
  그래서 항상 ‘복종’ 하는 마음으로 자기 처신을 하게 된다. 즉 신전인격의 삶이다. 여기 두렵고 떨림의 복종은 이른바 ‘거룩한 사랑의 공포’이며, 거룩한 복종의 마음일 수가 있다.

  둘째, 자신에게 거룩한 마음의 소원이 일어나게 된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다.
  이는 성화적 구원의 거룩한 욕구가 일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거룩한 소원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친백성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하나님의 일을 행할 욕구, 행할 힘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셋째, 원망과 시비가 없는 평안과 확신이다.
  빌립보서 2장 14절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했다.
  여기 ‘원망’은 ‘불평을 품고 수군거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교회에서 실패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라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 원망의 죄를 짓지 말라고 했다.
  ‘시비’는 말다툼하는 ‘언쟁’이나 또는 ‘의심’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원망은 하나님과 관계 되는 것이고, 시비는 사람과 관계 되는 약점들이다. 이런 연약들은 주를 향한 경외심의 두려움이 없어질 때 일어나는 병세들이다. 이스라엘의 광야교회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자리 잡았다. 그때 광야 행진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나 성화적 구원을 이루는 자들에게는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평안과 확신, 신뢰만이 있을 따름이다.

  넷째, 순결이 있다.
  빌립보서 2장 15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했다. 흠정역에는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짐이 없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 ‘흠이 없고’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타인, 곧 불신 세상과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 어떤 허물도 잡히지 아니함을 뜻한다. 또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법정 송사를 당할 만한 허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순전하여’라 함은 크리스천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자기 속에 무슨 ‘섞인 것’, ‘혼합물’이 없어야 됨을 뜻한다. 마치 포도주나 우유에 섞인 것이 없는 경우, 금속물에 불순물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와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순진성, 무 사기성, 성실성을 말한다.
  이렇게 세상과의 관계에서 흠이 없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순전할 때, 우리가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두 가지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고 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곧 여기 흠없음은 흠없는 제물을 뜻함인데,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빌 2:15b).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빛’들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빌 2:15b).
  말하자면 ‘흠없고’, ‘순전한’ 순결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로 성화되고,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성화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전도하는 노력이다.
  빌립보서 2장 16절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생명의 말씀’은 복음이다. ‘밝힌다’는 말은 실증한다는 뜻이다. ‘생명의 말씀’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예수는 생명이요, 생명의 말씀이었다. ‘생을 명하는’ 말씀이었다.
  창조 호출의 말씀이다. 사죄선언의 말씀이다. 그리고 부활을 명하는 말씀이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말씀이다.
  성화적 구원에 따르는 필수적 표식은 전도이다. 말씀을 밝힘으로 증거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그 생명의 말씀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므로 바울 자신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날 곧 재림의 날에 빌립보 교인들로 말미암아 주 앞에 자랑거리가 되게 하고 싶다고 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성화적 구원 완성의 날이 바울 자신에게는 주 앞에 자랑거리의 면류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순교적 기쁨의 동맹을 기약했다.
  그것은 빌립보 교인들의 겸손을 본받아 각자 각자가 성화적 구원을 이루어 영화에 이르게 되는 그 날, 곧 ‘그리스도의 날’에 바울은 구원받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에게 있어서 주님 앞에 ‘자랑할 거리’가 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빌 2:16). 그런 자랑거리가 되도록 하라고 했다. 그것은 바울 자신에게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빌 2:16). 여기 달음질은 경기하는 수고를 말함이다. 가장 힘든 노고를 포함하고 있는 뜻이 된다.

  그리고 더 감격스런 말은 빌립보서 2장 17절로 18절에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순교적 동맹서약에서 나타나고 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다.
  만일 빌립보 교인(너희)들이 성화적 구원에서 영화적 구원을 향하는 이 일에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겠다」고 했다.
  이 분문에서 바울의 중심은 빌립보 교인 자신들이 제사장이 되어 믿음의 제물 ‘뒤시아’(qusi,a) 곧 산제사(롬 12:1)와 봉사(예배) ‘레이툴기아’(leitourgi,a) 위에 바울 자신은 그 위에 부어지는 관제 곧 제물의 피가 되어 주겠다고 동맹을 하였다. 말하자면 자신은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제사와 봉사(예배) 위에 순교의 관제가 되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실로 엄숙하기 한이 없는 영적 동맹이 아닌가?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 성장, 곧 성화적 구원 그리고 마침내 이를 영화적 구원을 향한 바울의 열망과 대망은 실로 순교적 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다. 순교를 불사하고, 빌립보 교인들의 구원성취를 열망한 전도자의 마음을 본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다.
  바울이 바라는 빌립보 교인들의 기쁨은 구원의 완성(빌 2:12)이었다. 바울의 기쁨은 자신이 교회를 위하여 부음이 되는 것(빌 2:17) 그리고 주님께로 가는 것(빌 1:23)이었다.
  어떤 경우든 성화적 구원을 이루어 가는 자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경외심이 있다. 자신에게 거룩한 마음의 소원이 있다.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는 평안함이 있다. 흠이 없고, 순전한 순결이 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밝히 실증하는 전도가 있다.
  그것은 바울의 수고와 달음질을 헛되이 하지 않고, 끝날에는 자랑거리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의 성화적 구원의 삶(믿음의 제물+봉사) 위에 바울 자신은 쏟아지고, 부어지는 관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은 전도자의 기쁨이요, 빌립보 교회의 기쁨이라고 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