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21) 충성된 종 -디모데를 보내면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46

"충성된 종(빌 2:19-30)"
-디모데를 보내면서

빌립보서 2장 19~30절
석원태 목사


  3. 충성된 종(빌 2:19-30)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 서신의 영감은 교회의 공동체적 일치를 말했다. 그 일치의 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겸손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빌 2:1-14). 그 다음이 그리스도인의 성화적 구원에 관하여 말했다(빌 2:12-18). 그리고 빌립보서 2장 19-30절의 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이요, 부하들인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1) 디모데를 보내면서(빌 2:19-24)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만큼 가깝고, 자기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바울의 마음속에 디모데가 차지하는 중량은 실로 대단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2절에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라고 했다. 디모데후서 1장 2절에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디모데후서 2장 1절에는 「내 아들」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고린도후서 2장 13절에는 「형제」,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는 「나의 동무」,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는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불렀다.
  디모데는 더베(Derbe)나, 루스드라(Lystra) 출신이었다. 어머니 유니게는 독실한 유대교 여인이었고, 그의 외조모는 로이스였다. 아버지는 헬라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어릴 때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행 16:1, 딤후 1:5). 그럼에도 그는 유대교인이었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말미암아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던 사람이었다(딤후 3:15).
  디모데가 언제 개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 바울의 제2차 선교 원정시 디모데가 바울을 만나게 되었을 때 주를 영접한 것으로 추측된다(행 16:1-3)
  감옥에 있던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에 자기와 이런 영적 관계가 있는 디모데를 보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인에게 디모데를 소개하고 있다.

  (1) 먼저 빌립보 교회에 자기를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내는 목적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주 안에서 피차의 사정을 알아 안위를 받기 위함이라고 했다.
  빌립보서 2장 19절에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했다.
  이 본문에는 ‘나도’(κ?g?)가 빠져 있다. 빌립보서 1장 1절 중에 보면 빌립보 서신을 보낼 때 디모데가 바울과 같이 있었다.
  디모데를 보냄으로 빌립보 교인을 위로하고, 또 디모데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앎으로 바울 자신도 안위를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여기 안위는 위로(euvyuce,w)인데, ‘용기를 얻어 좋은 기분이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교제를 ‘주 안에서 바란다’고 했다. 바울의 가슴은 언제나 주 안에 있었다. 그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의지의 중추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이었다. 그렇다면 디모데를 보내어 옥중에 있는 자기 소식을 빌립보 교회에 알려 주고, 또 빌립보 교회 소식을 바울이 듣고 싶은 것은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위로 곧 영교’임을 가리킨다. 성화적 구원에로 나아가고 있는 교인들의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고 싶었던 바울의 바람은 어쩔 수 없는 목자적 바람이요, 정서였다.

  (2)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이다.

  첫째는 디모데만이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빌립보서 2장 20절에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고 했다.
  바울의 신변에는 많은 일꾼, 곧 동역자들이 있었다(골 4:10-17). 그럼에도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디모데밖에 없다고 하였다. 참 사람도 많고, 동역자도 많지만, 반대로 참 사람이 없고, 참 동역자도 없는 시대였던 것 같다. 이러한 경우는 옛날도, 지금도 같은 사정이다.
  여기 교회의 사정 곧 「너희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한다는 말은 교회를 위하여 전인을 동원하는 열정적인 사명감을 갖고 있는 자를 말한다. 바울과 ‘뜻을 같이 하여’ 정말 교회 중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21절에서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함으로 많은 바울의 동역자들을 말하고 있다. 저들이 바울과 함께 한다는 일꾼들이지만, 빌립보 교회에 바울을 대신하여 보내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경우를 말하고 있다. 저들은 디모데만큼 교회(너희)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한 자가 못된다는 의미이다. 저들 가운데는 자기 일을 중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복음을 빙자하고, 자기 일을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디모데야말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22절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했다.
  여기 ‘연단’이란 제련소에서 순금을 뽑아내는 과정을 의미한다(고후 8:2). 빌립보 교회는 디모데의 신앙의 연단을 알고 있다고 했다. 「너희가 아나니」라고 했다. 여기 ‘안다’는 말 ‘기노스코’(ginw,skw)는 경험적인 앎, 체험적인 앎을 의미한다. 그의 연단은 자식이 아비를 섬김 같은 수고를 감수한 연단이라고 했다. 디모데가 바울의 십자가적 복음 선교의 고난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된다.
  실제로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바울과 같이 있었다(행 16: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도 같이 있었다(행 18:5, 19:21-22). 그리고 지금 로마 옥중에서도 같이 있다(골 1:1, 빌 1:1). 디모데는 바울이 쓴 영감의 서신 중 적어도 다섯 통 이상의 서신에 관계하고 있었다. 예컨대 데살로니가 전후서, 고린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로마서의 경우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과 함께 수고한 고난의 동참자를 너희에게 보낸다고 그 두 번째 이유를 말하고 있다. 교회의 사정을 진실되게 알 수 있는 디모데를 보낸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23-24절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 자신의 미래적 소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고 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의 재판 결과를 따라서 즉시 디모데를 보내어 소식을 알려 주고, 그때 자기도 가능하면 빨리 가겠다고 했다. 이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고 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그곳은 바울의 본적이요, 현재 살고 있는 현주소요, 그의 사명과 신학이 탄생되고, 진행되는 곳이었다.
  ‘기후가 추운 때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알아보고, 세상이 어러지운 때는 충신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로마의 박해 때문에 투옥을 겪는 환난 가운데서 바울 자신과 뜻을 같이 하고 교회를 진실히 생각하는 고난의 동맹자였다. 바울은 이를 발견하고,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소개하고 있다.
  어쨌든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가 최대로 유용했던 것은 그가 교회들에 대한 영적 정보를 얻고자 했을 때, 혹은 교회들을 향한 어떤 충고와 권면과 지도와 책망을 보내고자 할 때였다. 바로 그때 바울 자신을 대신할 사람이 디모데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을 대신하여 데살로니가에도 갔고(살전 3:6), 고린도에도 갔다(고전 4:·17, 16:10-11). 그리고 지금은 고난의 현장인 로마의 감옥에도 함께 있었다. 바울은 그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 싶다고 한 것이다.
  디모데는 이렇게 바울이 주 안에서, 주의 뜻을 위하여 어떤 경우라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동역자였고, 또 디모데는 주 안에서 부탁하는 바울의 명령에 언제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디모데의 손으로 바울 자신이 휴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복음의 말씀이 아무런 위험 없이 운반될 수 있었다. 그리고 디모데의 입으로 바울 자신의 입을 대신하고, 생각을 대신할 수 있었다.
  혹 타인들이었다면 자기 야심이나, 이익과 공명심 때문에 주 안에 있는 뜻을 저버릴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디모데만은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알고, 바울의 뜻을 진실히 아는 사람으로 바울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참으로 충성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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