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 십자가<콩트>소설, 콩트, 에새이, 칼럼
“장로님, 저는 제가 진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힘들어요.” 신 집사는 핼쑥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무슨 걱정이 있어요?” “제가 시골에서 존경했던 목사님이 계셨다고 말했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머리를 꺼냈다. 그 목사님은 몇 년 전 은퇴하여 시골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셨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간지 얼마 만에 간신히 교회 건물을 하나 세웠는데 지붕에 네온사인으로 된 십자가를 달고 싶어 하신다고 말했다. 그것을 신 집사가 맡아 주었으면 고맙겠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되는데요?” “오 백 만원이요” 박 장로는 놀랐다. 그것은 쉽게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아마 그 목사님이 신 집사가 얼마나 지금 어려운지 모르시는 모양이지요?”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는 신 집사는 IMF 이후로 학생이 줄고 경영이 어려워 지금까지 적금해 온 것을 하나 둘 깨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었다. 건물을 빚으로 샀기 때문이었다. “집사님, 돈을 주면 해결되어버리는 고통은 예수님이 집사님께 지어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것을 자기가 진 십자가로 생각하고 고민하지 말고 빨리 짐을 풀어버릴 생각을 하십시오.” “어떻게요?”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헌금하고 짐을 벗고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두주일 뒤 박 장로는 그 일이 궁금하여 신 집사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집사님, 네온사인으로 된 십자가가 없어도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며, 그것으로 밤하늘을 밝히지 않아도 잃은 영혼들의 잠을 깨울 수 있습니다. 본질적이 아닌 것을 위해 고통 받는 것은 예수님도 좋아하지 않으실 겁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 십자가를 나누어지자’고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그 십자가는 죄인인 우리가 결코 질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죄 없으신 주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보혈을 흘리고 매달린 십자가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더 좋은 것으로 교회의 건물을 마감을 하고 싶어 하는 목사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이런 찬송을 부르며 목사님께서 안타까워하셨을 그 심정을 나도 나누고 싶어요.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을 생각해 보셨겠지요. 그래서 최후로 부탁할 사람을 생각해 낸 것이 저 아니겠어요?” “신 집사님, 주께서 부탁하신 것은 ‘너도 십자가 앞에서 나와 함께 죽고 이제는 구원받은 영생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삶을 살려면 십자가의 고난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신 집사의 진 십자가는 네온사인을 달기 위한 돈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두 주쯤 지난 뒤 안타까워진 박 장로는 신 집사를 만났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십자가로 세상을 비추는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다. 주님은 결코 아름다운 건물과, 특별한 위치를 원하지 않으신다. 지금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다. 부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며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천국을 사는 주의 백성을 어떤 율법이나, 형식이나 의식으로 괴롭게 하지 말라. 주님은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신 집사도 이제는 지붕 위의 십자가의 짐을 벗어버리라. 박 장로는 이렇게 신 집사를 설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 집사는 명랑한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장로님 저 해결했어요.” “뭐, 해결해?” 박 장로는 깜짝 놀라 물었다. 자기가 암시한 대로 해결한 것일까? 아니면 무슨 수가 생긴 것일까? “오 백 만원 송금했어요. 계속 기도해 왔는데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어요.” 은행 채무의 상환이 연기되어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로님의 뜻은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주님이 주신 십자가가 아니지요.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제가 진 십자가는 네온사인으로 된 십자가를 만드는 돈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그 돈을 만들어 드리라는 끊임없는 명령이었어요.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저 자신을 보는 고통이 제 십자가였어요.” “채무 상환이 연장 된 것뿐이잖아요. 사시는데 힘 들지는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그분은 제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어요. 제가 시골에서 어렵게 살고 있을 때 첫 딸의 돌을 맞았거든요. 저는 그 애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옷을 사 가지고 오셨어요. 진열장의 예쁜 옷을 보자 제 딸 생각이 났다는 것이었어요. 좋은 옷이 없어도 제 딸은 잘 클 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잖아요? 십자가의 네온사인이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목사님이 새로 건축한 교회에 네온사인의 십자가를 세우고 싶어 하는 심정을 이해해요. 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시거든요.”
|
'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 잡창(雜唱)(콩트) (0) | 2019.04.04 |
---|---|
남편 전도<콩트> (0) | 2019.04.04 |
기다림<에세이> (0) | 2019.04.04 |
야긴과 보아스, 결혼 60주년에 (0) | 2019.04.04 |
[논단]3·1독립운동100주년이 주는 교훈과 깨달음은? -김상태 장로 (0) | 2019.03.06 |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