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잡창(雜唱)(콩트)소설, 콩트, 에새이, 칼럼
비가 오고 갠 날 아침이었다. 왕 두꺼비는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다가 시끄러운 개구리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문을 열자 버드나무가 늘어진 널따란 연못가에선 더욱 시끄럽게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누구 없느냐? 저것들이 웬 소란이냐?” 그러자 충성스런 개구리 심복들이 잽싸게 달려와 아뢰었다. “자기들을 다스릴 지도자는 자기들이 뽑겠다고 그럽니다. 민주주의를 한답시고 저 야단인데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를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지 않느냐. 그런데 왜 갑자기 저 야단이야.” “대왕께서 나이가 드셔서 후계자를 물색 중인 것을 알고 이번 후계자는 자기네 손으로 민주적인 지도자를 뽑겠다는 것입니다.” “미친 것들. 내 아들 말고 이 왕국을 맡을 사람이 누가 또 있느냐? 고얀 것들.” 그러면서 “그 주동자가 누군지 알아보아라.”고 신복들에게 말하였다. 신복들은 주동자를 찾아 색출한 뒤 보고 하였다. “주로 이 왕국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민초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계층마다 다르고, 집단 이기적이어서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민초들이 무슨 목소리를 내겠어? 필사적으로 그들을 선동하는 전문 꾼들이 뒤에 있을 것이 아니야?” “그런데 그 꾼들 중에 대왕을 옹립했던 그런 사람이 끼어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놈들을 잡아와! 이들이 내 수법을 써서 민중을 선동하고 세상을 뒤집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어?” “아닙니다. 그들은 결코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민주적인 지도자를 뽑겠다면서 독재자를 뽑을 수 있겠습니까? 언어도단이고 모순이지요. 만일 뽑았다 하더라도 대왕을 대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평화와 평등을 기치로 내세운 그들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대왕을 감히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나를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대왕님, 후계자를 내세우는 것은 독재자가 독재체재를 유지하면서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반대자를 숙청하고 이 체재를 유지하는 대왕님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신하들입니다.” 그러나 왕 두꺼비는,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하는 개구리들의 뿌리는 뽑아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지시를 받거나 자기를 지지하기 위해 하는 의거가 아닐 때에는 초창기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항거하는 군중들을 방죽 광장에 모이게 하였다. 그런 뒤 그들 앞으로 나아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한 그는 개구리 합창단을 불러 먼저 대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하게 하였다. 그는 언제나 연설에 앞서 합창을 시켰는데 이 찬가야말로 군중을 흥분하게 하고 강연에 심취토록 하는 최고의 마약이었다. “너희들은 지도자가 얼마나 외로운 줄 아느냐? 나는 이 왕국이 적은 무리였을 때부터 지금 이 큰 군중의 왕국을 이룩할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한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온 왕이다. 너희는 어려움을 나에게 호소하면 되었지만 나는 닥치는 어려움을 누구에게 호소했겠느냐? 내 이 고독한 외로움을 누가 알아줄꼬?” 개구리들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런 서두를 꺼내는 지 알 수가 없어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또 나는 지금까지 홀로 부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왕이 아니면 비판받을 것도 없을 것이야. 주는 것이나 받아먹고, 하고 싶은 노래나 부르고, 착한 일을 하면 상이나 받고.… 그러면 되는 것이지. 그러나 나는 누가 상을 주었어. 비판이나 받았지.” 충성스런 가신들이 옳다는 뜻으로 소리를 맞추어 울어댔다. 왕 두꺼비는 조용히 하라고 지시한 뒤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 중에 이 큰 왕국을 다스릴만한 놈이 있으면 어디 나와 봐. 왕은 누구나 되는 것이 아니야. 왕권이란 신이 내려 준 것이야. 이제 얼마 있으면 내 아들이 유학에서 돌아올 것이니 너희들이 그 때 잘 판단해서 결정하도록 해. 나는 왕 중에서도 너희들이 거룩한 혁명으로 이룬, 그리고 너희들의 주장을 대변해 준 민주적인 왕인 것을 몰랐나? 섣불리 조무래기가 나라를 맡겠다고 나서면 나라만 분열되는 것을 모르느냐? 신중하게 해야 된다. 더 이상 이 일로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 아들이 오기까지 기다려라. 알겠느냐?” 온 방죽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개구리들도 만만치 않았다. 좀 발언권이 있는 개구리가 말했다. “대왕이여! 이 왕국은 대왕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또 대왕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개인의 재산처럼 돈을 뿌리며 권력까지 아들에게 물려 줄 수가 있습니까? 이 왕국을 평화롭게 하는 것도 우리 책임이며, 이 왕국을 지키는 것도 우리 책임입니다. 대왕께서 왕권은 신이 내려 주시는 것이라고 잘 말씀하셨는데 신은 왕권을 왕의 가족에게 대대로 물려주도록 신권을 주신 것이 아니며, 약한 자에게도 기름을 부으셔서 신의 뜻을 펴시는 것을 모르십니까?” 왕 두꺼비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나이가 좀 들었다기로서니 이 조무래기들이 이렇게 대들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평화로운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거야. 우리나라 같은 이런 왕국을 신정왕국이라고 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는 곳이야. 신의 뜻이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 보았어? 신의 은총으로 복 받고 살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해. 너희는 이것을 알겠느냐?” 이때 버들잎 뒤에서 가냘픈 소리가 들려왔다. “대왕님 우리는 대왕님을 우리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우리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개굴개굴 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왕 두꺼비는 머리끝까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왜 내가 너의 동족이 아니야? 내 눈이나 코나 입이나 생김새 모두가 너희보다 크고 위엄 있게 생긴 것밖에 근본적으로 다른 게 뭐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태어난 것이야, 또 설령 너희의 가까운 동족이 아니라 할지라도 너희의 왕이 되어 복을 나누어주는데 나쁠 게 뭐 있어?” “대왕님, 그러나 대왕께서 모르고 계시는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청개구리는 대담하게 말했다. “그게 뭔데?” “대왕께서는 지금까지 신이 우리에게 내리시는 복을 다 가로막고 독점하셔서 우리에게 적당히 나누어주시며 선심을 쓰셨는데 신은 우리에게 큰 심판도 내리신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이제 모든 것을 독점하시는 대왕께서는 그 심판도 독점해서 받으셔야 합니다.” “뭐라고?” 왕 두꺼비는 노발대발하여 탁자를 쾅 쳤다. 그러자 탁자는 두 동강이가 났다. 그뿐 아니라 버드나무 가지에 앉았던 청개구리는 혼비백산하여 오줌을 싸며 땅에 떨어져 기절했다. 이 광경을 본 모든 개구리들은 소리를 높여 일제히 울어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합창이 아닌 잡창(雜唱)이었다. 너무나 다른 요란한 소리들을 냈기 때문에 그들은 왕 두꺼비의 왕권 세습 문제를 받아드리겠다는 것인지 결사반대하겠다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꾼들을 동원하여 혁명으로 왕이 되었는데 이제는 꾼들이 모여 반대의 음성을 내도 소용이 없었다. 기고만장한 독재자의 위엄 앞에서는 아부밖에는 통하는 것이 없었다. 그의 추상같은 호령은 최후의 심판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이 잡창은 온 밤을,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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