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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단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유기성 목사 영성칼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5. 2. 15:01

영생은 단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유기성 목사 영성칼럼

스티그마 | 조회 36 |추천 0 |2019.01.24. 08:59 http://cafe.daum.net/stigma50/Efmm/861 


영생은 단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서 영생을 바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지도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 눅 18장과 19장에 두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장의 부자 관원은 천국에 들어가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19장의 세리장 삭개오에게 천국은 너무나 쉬웠습니다.
똑같은 부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18장의 부자 관원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을 구했습니다.
19장의 세리장 삭개오는 오직 예수님을 한 번 보기만 원했습니다.
영생을 구하는 것과 예수님을 구하는 것에서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은 사람을 겉모양으로 대하지 아니한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하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정말 보기만 할 뿐이지 더 이상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고 집에 모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다 내놓았습니다. 주님을 만나 누리는 기쁨이 돈을 소유한 기쁨 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컸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에게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영생은 누구나 얻고 싶어 합니다.
조폭 두목도 진시황도 영생을 얻고 싶어 합니다.
부자 관원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 그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17:3 말씀처럼 영생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부자 관원은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생을 구하였기에, 영생이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재산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영생을 눈 앞에 두고 스스로 영생을 버린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이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 관원처럼 답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 의식도 없이 그저 호흡만 하는 사람을 보면서 부러워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에 대한 갈망도 없고, 살기 힘들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사람도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의 축복은 단지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한 인격이신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오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꼭 죽고 난 다음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요 11:25-26에서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이나 바다를 비추는 빛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 1:9) 만물에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빛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영혼을 살리려 하심이었습니다.
5:14 ...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삭개오가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영생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