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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부딪혔을 때, 주님을 바라보다 / 유기성 목사 영성칼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5. 13. 04:07

한계에 부딪혔을 때, 주님을 바라보다|유기성 목사 영성칼럼

스티그마 | 조회 33 |추천 0 |2019.02.20. 08:29 http://cafe.daum.net/stigma50/Efmm/874 


한계에 부딪혔을 때, 주님을 바라보다

요즘 제 마음에 바쁘다’,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차분히 묵상하고 기도할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혹시 정말 바빠서 못하는 것인지, 바쁜 것을 핑계하는 것인지 자신이 없습니다.
바쁠 때는 바쁜 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여유로운 때는 여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여유로울 때 영적으로 더 무너졌던 일이 많았음을 생각하면 바빠서만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 때마다 낙심이 됩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말씀을 전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신 감동을 잘 전하려고 애쓰지만 항상 반복되는 후회가 있습니다.

“차라리 더 기도할 것을!

가족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함께 사는 아내와 딸들에게 온전한 은혜의 통로가 되지 못하는 것 때문입니다.
부교역자들에게도 미안할 뿐입니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싶은, 스트레스만 주는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오죽 했으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기 싫어서 계단으로 도망을 했겠습니까?

아직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워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셔야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항의성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깨달은 것은 다 순종하였느냐?” 하는 주님의 질문에 입이 막혀버립니다.

그러나 이처럼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제 실상이 얼마나 초라하며 악한지를 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착각에 빠져 교만했을 테니 말입니다.
사역의 부흥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주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지 않으면 순간에 무너지는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 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오직 십자가’ ‘오직 예수’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계를 느낄 때마다 감사하며 더욱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제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열쇠였습니다.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프랭크 루박의 편지]를 처음 읽을 때, 1931 1,2월 일기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힘들다, 잘 안 된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4월 일기부터는 공감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일기에 나오는 일들이 제겐 생소한 것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5,6월 일기에 가면 믿어지지 않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그의 일기를 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동행일기를 쓴지 9년이 되는 지금, 프랭크 루박 선교사가 1931 6월에 경험했던 내용이 대부분 이해가 됩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 안에서 답이 있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을 때도, 어떤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구절절이 공감이 됩니다.
앤드류 머레이의 책들도 그렇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극복하는 비결은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일기로 기록합니다.
실패할 때는 실패한대로, 못했으면 못한대로, 낙심되면 낙심 되는대로 한 줄이라도 쓰려고 합니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요” “오늘은 정말 일기를 쓸 수가 없네요” 라고 쓰더라도, 안 쓰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꾸준함이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