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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3995호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를 재정의 하라 [홍종찬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8. 25.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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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방* | 조회 108 |추천 3 |2019.08.04. 06:02 http://cafe.daum.net/cgsbong/1SQR/4315 

창골산 칼럼 제3995호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를 재정의 하라


제39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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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를 재정의 하라

 

 


 

 

 


홍종찬 목사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은 개개인이 유일(唯一)한 존재로 있지 않고 끊임없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데, 인간은 사회의 자식이며 사회공동체의 형성자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책임자로,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회는 개인을 기초로 성립되고 개인은 사회 속에서 진보하기 때문에 개인은 사회공동체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서삼경 중 논어에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말이 나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사람은 선택하여 따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가려서는 잘못을 고쳐라”는 뜻입니다. 사회 구성원들 상호간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는가에 대한 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살다보면 서로가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하며 타산지석으로 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선악 간에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통해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친구들이 지방 갈 일이 있어 승합차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가던 중에 속 썩이는 사람들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어느 목사님께서 “‘모두가 내 스승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승에도 급수가 있다면서 “선생님급, 강사급, 교수급”으로 나눠 “가장 어렵게 하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급수를 가진 교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자라도 선생님이 교훈하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인생에 큰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죄악 가운데에서 구별하여 세운 자들로서 같은 가치관과 목적을 지향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는 다양한 일들을 감당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매우 독특한 구성체로서,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롬7:4;고전10:16;12:27;엡4:12), 혹은 그리스도 예수가 모퉁이돌이 되어 지어져 가는 “성전”(엡2:22)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인도 나그네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즉 성전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가르치며 가르침을 받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바울 사도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르침을 받는 자”(카테쿠메노스)들이 누구인지 분명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쿠메노스”(κατηχούμενος)를 살펴보면 이들이 누군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동사형 “카테케오”(κατηχέω 가르치다)는 원래 “주입하다”, “문답식으로 가르치다”, “이해하게 하다”, “귓가에 울리게 하다”라는 의미로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어떤 특정한 단체나 조직 속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훈 아래 있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가르치는 자”(λόγον τῷ κατηχοῦντι)는 누구인가?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로서 다른 서신서에서는 “디다스칼루스”(διδασκάλους)라고 표현되었으며 “교사”라고 번역되었습니다(고전12:28;엡4:11). 초대교회에서는 “교사”와 “가르치는 자”로 구분했습니다. “교사”는 공식적으로 임명된 교회 안에서 목회자적 신분을 가진 자들을 가리켰고, “가르치는 자”는 초대교회 직분자들로서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과 바나바와 디도 같은 사역자들과 교회가 임명한 장로들을(행14:23) 가리켰습니다. 이들은 “교사”들과는 달리 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전도여행자들을 뜻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몸을 입으시고 온갖 고난을 감수하셨고 결국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평안을 전하셨으니...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4-18)고 하셨습니다. 이는 멀리 있던 이방인이나 가까이 있던 이미 구원받은 자들은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 하나 되었음을 가리키는 선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거룩한 지체로서 교회라 불립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공동체로서 주님의 통치 아래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복음의 일꾼입니다. 이제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거룩한 공동체다”라고 재정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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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자


홍종찬목사(사랑에빚진자)

서울 은평구 갈현2동

아름다운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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