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01 시작을 새롭게 설교집 Ⅱ<마음을 시원하게> 2부-11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16.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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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22. (고린도후서 5:17-21) |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새해를 시작할 때와 똑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합니다. 작년에는 인도네시아를 덮친 쓰나미로 인해서 온 세계가 경악했습니다만 올해는 ‘황우석 사건’ 으로 인해서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진원지는 우리나라였지요. 그 사건을 접하면서 그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한 비평가는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다. 우리는 뭐든지 강한 한국인 강한 대한민국 콤플렉스에 모두가 다 사로잡혀 있다. 세계 제일을 내세우고 뭐든지 으뜸을 이야기하는 그런 병에 단단히 걸려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번에 사건이 드러나면서 알려진 것입니다만 그러한 줄기세포를 비롯해서 그런 것을 연구하는 곳이 한 곳이 아니고,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니까 최고 과학자로 떠받들어주고 거기에다가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쏟고, 평소에는 헌혈도 안 하던 사람들이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모임을 만들고, 사건을 사건으로가 아니라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거기에 힘을 실어주고, 극대화하고 그것을 앞세워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올인하여 진실마저도 덮어버리는.
사실은 새로운 일도 아니지요. 이번에는 서치라이트가 그 사람과 팀에게 비추어진 것뿐이지요. 만약에 그 불빛이 나에게 온다면 나는 어떻게 되겠어요. 바라기는 이번 기회가 우리사회를 보다 더 선진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성실과 정직과 이러한 기본적인 것을 새롭게 하는 발판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지요.
우리 기독교인들도 결코 자유롭지 못해요. 화우석 교수가 한참 뜰 때 보니까 불교인이더라고요. 그래 내심 좀 섭섭했어요. ‘d이고, 기독교였으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그런데 이번에 이 난리가 나니까 ‘아이고 다행이다.’ 사실 다행은 또 뭐가 다행입니까. 똑 같은 거지요. 너나 할 것 없이 정직과 성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우리의 신앙도 문제예요. 그런 분위기 속에 사는 우리들의 신앙 또한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가 올해를 내다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커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소원하겠지만 목사는 거기에 목이 매어있기 때문에 여러분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그 강도가 다른 거예요. 여러분 교회사 성장 안 한다고 밤잠 설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세요? 그러나 저는 간혹 잠이 안 옵니다. ‘그 집사님 왜 안 나타날까.’ ‘그분은 어디 갔을까.’ ‘왜 바람과 함께 사라졌을까.’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그리고 또다시 교회를 세우고, 많은 일을 할지라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군중 속에 고독이라고 사람 많은 속에서 애 잃어버리듯이 나를 잃어버려요. 오늘 내가 뭘 하며 살고 있는가. 왜 그렇습니까.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수많은 무리 가운데 덜커덕 예고 없이 부르실 때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러워서는 안 되지요. 우리 한국교회 분위기가 너무나 외면적이고 과시적인데 우리의 힘을 다 쏟아 붓고 있어요. 나의 내면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조용한 감격과 기쁨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오늘 성경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럼 이전 것은 무엇이고 새 것은 무엇인가. 새해를 맞으면 결단하고 결심합니다. ‘술을 끊겠다.’ ‘담배를 끊겠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이 제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에 새해가 되면 수학 정석을 끌어안고 좀 해보겠다고 씨름을 하지요. 그러나 인수분해만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헤매기 시작해요. 또 포기하고, 또 다시 결단하고, 또 다시 인수분해로 들어가요. 그래서 저는 인수분해는 자신 있어요. 밤낮 인수분해만 했어요.
여러분, 이전에 나는 무언가를 좀 해보겠다고 아름답고 좋고 더 높은 것을 일심으로 추구하며 스스로 원칙을 세우기도 하고 몸부림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빙산을 아시지요. 물 위에 떠있는 부분은 그 빙산의 9분의 1밖에 안되는 거예요. 사람이라는 건 겉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우리 내면에 훨씬 많은 나의 삶이 농축되어 있어요. 그런데 자랑하고 싶은 것은 다 앞으로 내놓고 부끄러운 것, 상처 입은 것, 도저히 꺼내놓을 수 없는 것들은 저 깊은 마음의 창고 속에 꽉 눌러놨어요. 숨겨진 내가 있습니다. 내면의 내가 있어요. 그것을 철저하게 억압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해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새로운 마음으로 교회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똑바로 믿고 싶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고백하는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내 내면에서 들려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솔직하게 말한다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또 믿는다 한들 왜 그렇게 내게 이것이 기쁨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낯설고 무덤덤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그게 바로 나의 내면이에요. 그게 바로 나의 솔직한 모습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모습은 나 자신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의 외면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그 내면에 주목하십니다. 내가 바로 너의 내면을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놓고 피 흘리며 그의 피로 너를 새롭게 한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그 외면만 가지고 신앙을 이야기한다면, 열심을 낼수록 우리는 진실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중인격자가 되는 거예요. 거짓 신앙인이 되는 거예요. 더욱이 세상 사람들은 그런 도덕적인 억압에서 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들이기에 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야말로 아주 교묘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만지시고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곳은 어디냐. 나의 생각, 나의 마음인 것이지요.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화해하라. 이것이 너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 건 새해를 맞아서 또 뭘 내가 스스로 하겠다고 원칙을 들어서 이것을 어떻게 할까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 이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잘 새겨듣는 것이지요. 꾸준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지요. 급한 마음으로 내 부르짖음을 들어달라고 소리치지 이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조용히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우리가 그 꼴을 당했지만, 사실 옛날에 ‘made in Korea’ 그러면 싸구려였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은 우리나라 물건이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오명을 누가 다 끌고 갔느냐, ‘made in China’ 가 가져갔어요. 그런데 세계 유수한 기업들이 중국에 있는 공장에 하청을 주고 만들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에이, 이거 made in China 아냐?” 이러니깐 아ㅣㅇ디어를 냈어요. 그래서 뭐라고 쓰느냐 ‘made in China but designed in U.S.A.’ 이건 중국에서 만든 물건이지만, 그러나 디자인은 미국에서 한 것이다. 이렇게 표기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사실 우리는 ‘made in Korea’ 입니다. 이제 거기에다가 ‘designed in God’ 하나님이 디자인한 인생이라고 하는 새로운 자기 이해를 가져야 해요. 그저 ‘made in Korea’ 만 가지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몸부림쳐가지고는 자기에게도 평안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없는 거지요.
한국에 신화를 창조한 기업이 있어요. 두 기업이 있는데 하나는 ‘빈폴’ 이에요. 또 하나는 ‘쌈지’ 라고 하는 기업이에요. ‘빈폴’ 은 제일모직 제품 아닙니까. 그래서 한국시장에 처음 그 제품을 만들었더니 고객들이 쳐다보지 않았어요. 외국의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가장 으뜸가는 브랜드를 타깃으로 정하고 그 차이점을 따라잡기 위해서 연구합니다. 왜 단추는 잘 떨어지는가. 이 정도 품질이면 됐는데 왜 고객들은 우리 것을 선택하지 않는가. 또 연구합니다.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구나. 우리의 고유한 어떤 이미지가 필요하구나. 그런데 여러분, 빈폴이 한국시장에서 경쟁브랜드를 완전히 따라잡았어요. 이것을 따라잡은 순간, 거기에 수년간 몰두했던 사람들이 다 기뻐하고 만세를 불렀어요.
그런데 쌈지라고 하는 기업은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야말로 블루 오션을 찾아내는 거예요. 여인들이 다 가방을 메지 않습니까. 예전에 여인들의 가방은 정형화되어 있어요. 그러나 가방을 꼭 그렇게만 만들어야 할까. 가방을 옷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붙이게 할 수는 없을까. 다양한 창조적인 디자인으로 옷같이 입는 가방을 내놓았어요. 대박이 터졌어요. 이제 한걸음 나아가서 왜 남자들은 가방을 메지 않는가. 남자들에게도 뭔가 들고 다닐 필요한 것이 있는데 남자들 가방도 만들어 보자. 또 대박이 터진 거예요. 그러더니 가방과 여러 가지를 펼쳐놓은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멋쟁이일수록 다 선글라스를 쓰고 오는데 선글라스를 선택할 때, 고객들의 고민이 뭐냐? 안경점에 가서 고르자면 너무 비싸고 아니면 분위기에 안 맞고 그렇다고 남대문시장이나 구루마 패션에서 고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이런 분들을 위해서 거기서 가방과 더불어 여러 가지 액세서리와 선글라스를 비치하고 팔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매출을 올렸다 이거지요.
완전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내놓았을 때, 놀라운 반응을 얻은 거예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저기 일등이 있어요. 그를 쫓아가기 위해서 저들보다 덜 자고 더 몸부림치고 더 노력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또 하나, 그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가는 것이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두 번째 모델의 삶을 살아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모델의 사람들은 자기 부끄러운 건 철저히 감춥니다. 자기의 약점은 숨깁니다. 그리고 강점만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기질과 너의 적성과 심지어는 너의 과거의 실패와 눈물과 아픔까지도 너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기 위하여 허락한 것이다. 너의 내면과 너의 눈물과 땀과 고통까지도 다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라.
이제 새해가 됐으니까 여기저기 인사 다니지 않습니까. 제가 만나는 사람은 세 가지 유형이에요. 첫 번째는 손님, 두 번째는 친구, 세 번째는 가족입니다. 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보면 일주일 내내 일하시니 얼마나 피곤하셔요. 그래 주일날 교회를 다녀오시고 오후 시간에는 온 가족이 다 잡니다. 옛날에는 방도 하나나 둘이었으니까 시체들 쓰러지듯이 한구석씩 차지하고 정신 없이 잡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에 누군가 예고 없이 벨을 누릅니다. 그러면 온 집안이 다 정신 없이 막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 한 사람은 문 열러 나가고, 한 사람은 빨리 베개 치우고 이불 치웁니다. 다행히 들어오는 사람이 그저 친구라면 괜찮지요. 어서 오라고 반갑다고 이불도 장에다 안 집어넣고 한쪽으로 밀어놓고 여기 앉으라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손님이 왔다. 그럼 얘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완전히 지저분한 집안, 돼지우리 같은 집안, 부끄러운 집안이 되는 거예요. 똑 같은 상황인데 누가 왔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손님에게는 예의가 제일 중요하게 되요. 돌아간 다음에는 욕을 할지언정 좌우지간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환한 얼굴로 맞이해야 되요. 그러나 친구는 달라요. “얘, 이 녀석아.” 친구는 면전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러나 마음은 따뜻하고 더 열려 있어요. 하물며 가족이다. 보통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손님으로 맞으신 것이 아니에요. 성경은 친구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오늘 하나님은 가족입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 하나님 앞에 숨기고 부끄러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나의 그 연약한 모습 그대로 받길 원해요. 어린 아이가 잘못했어요, 엄마에게 알려질까 봐 걱정하고 있어요.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 얼마 후에 엄마가 눈치챘어요. 엄마가 묻습니다.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니.”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화해하고 너희 모든 것을 연약함을 다 내려놓아라.” 그리고 그것까지도 덮으시고, 그 연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일을 보여주십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니 가는데 마다 가이드들이 붙어서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 시내산 꼭대기를 한 밤중에 올라가 일출을 보면서 ‘와, 너무너무 멋있다’ 감탄했어요. 감동적이었어요. 인생은 성지순례에요. 하나님을 만난 인생은 성지순례자에요. 사실 성지에 가보면, ‘애걔걔’ 하는 것도 많아요. 심지어는 예수님 승천기념 교회를 가보니까 우리 뒷동산에 숱하게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 놓고 여기서 이 돌을 밟으시고 예수님이 올라가셨다. 그러고 보면, 성지라고 하는 것은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거예요.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성지순례로 바꾸셨어요.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바꾸신 거지요. “여기가 바로 성지다.” 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를 새롭게 하고자 너와 함께하겠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대를 가지며 내 좁은 생각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주님을 따라가며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해 그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새해를 맞게 하시고, 첫 날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서 훌륭하고 으뜸가고 잘하는 것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눈물을 아시고 실패를 아시고 좌절을 아시고 연약함을 아셔서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붙들어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감사 드립니다. 올해도 주님과 동행하는 복되고 아름다운 한 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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