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복음의 스캔들[하나님이그많은민족중에우리민족을들어서세계만방에복음수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10. 27. 14:09

060226 복음의 스캔들                                               설교집 Ⅱ<마음을 시원하게> 2-15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36.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38-50)

 

하인즈 워드를 잘 아시지요? 올해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에서 MVP로 뽑힌 선수입니다. 그는 한국계 혼혈이지요. 그래서 그의 우승으로 말미암아 그의 지난 30년 인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났습니다. 그 엄마가 한국에 나와 있던 흑인 미군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미국에 건너간 지 채 한 달이 못돼 버림을 받고, 그 아들과 더불어 그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지요.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아들을 위해서 내가 못할 게 없다.’ 손에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쏟아서 아들을 당당하게 키우려는 어머니의 희생이 참으로 아름답고 또, 그 아들도 그 어머니 못지않게 불굴의 투지로 정상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지요. 그 뜨거운 언론보도를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과연 한국에서 자라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그가 누리는 성공과 자유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요.

이번 주일은 31삼일절 독립만세를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벌써 87주년이 됩니다.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억압을 당하던 우리 민족이 자유를 얻고자 목숨을 내걸고 맨손으로 들고일어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다 총칼에 죽어야 했던 그런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이지요. 3.1절 독립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일제 지배 10년에 우리나라의 전국적인 조직은 다 무너지고 단 하나, 교회만 남았어요. 교회조직만 살아있었어요. 그러기에 그때 인구에 비하면 교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교회는 독립만세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고, 또 교회는 기꺼이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참여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유별나게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배척당하지 않고 민족의 고난과 함께하는 종교가 될 수 있었던 놀라운 계기가 만들어졌고,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부흥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21세기 한국이에요.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미 사실상 우리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강국입니다. 자동차라든지 반도체라든지 IT분야에서 앞서나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딴 것도 중요한 사건입니다만 거기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한국에서 제공한 정보통신기술로 운영된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또 하나가 있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수치로 잡히지 않는 또 하나의 은밀한 비밀이 있는데 대한민국은 현재 21세기 복음을 수출하는 으뜸가는 국가라는 거지요. 한인선교사만 현재 통계로 13,000명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요. 놀라운 일이지요.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우리와 같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어요. 출애굽 사건이에요. 그래서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리고 광야에 들어가게 하셨어요. 그 광야에 들어가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먹으면서 이제까지 희미하게 들었던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 것이지요. 시내산에서 십계명 율법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되었어요. 그리고 40년 광야에서 준비를 시키신 다음에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어요. 가나안에는 이미 우상을 섬기는 다른 민족이 있었어요. 풍요로운 사회였어요. 그러나 이미 하나님이 광야에서 준비시킨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 집어넣어서 온 세상사람들에게 이 땅에 태어난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본보기로 두신 것이지요. 그래서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너희는 나의 선민이다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을 차별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복의 근원이 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다른 고난을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시대의 흐름을 잘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민족 중에 우리민족을 들어서 세계만방에 복음을 수출하고 있어요. 지금 백인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환영 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가 하도 커서요. 한국선교사들은 어디서나 Welcome 이에요. 어딜 가나 적응을 잘해요. 참 대단합니다. 서양선교사들 같이 모든 시스템이 다 되어있고 보장이 되어있고 그런 거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고, 부르심이 있고 불붙는 소명이 있어서 어디든지 가오리다 하고 가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땅 끝까지 수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 중에 우리의 의식에 문제가 있어요. 우리는 전통적으로 단일민족을 강조해왔어요. 사실 엄밀히 역사적으로 보면 피가 섞일대로 섞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라는 것을 많이 강조해왔지만 이제 세계화된 이 세상에서는 바뀌어야 돼요.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식이 그만 잘못 이해되어서 이방인을 차별하는 그런 도구로 활용됐듯이 우리의 단일민족이라는 것도 이제는 하나 더 넘어서서 세계인들과 함께 살아야 되는 것이지요. 이미 우리나라에 50만이라는 외국인근로자가 들어와 살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나는 새로운 ‘Kosian’ 이라는 혼혈인이 많이 있어요. 아시아계 여성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혼혈인을 말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거나 말거나>라는 제목으로 나온 영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온 네팔인 30대 초반의 여자 노동자 짠드라 구마리 구릉이라고 하는 여자가 우리나라의 작은 공장에 와서 어느 날 동료랑 싸우고 홧김에 공장을 나왔어요. 그러다가 길을 잃고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는데 그만 준비해 놓았던 돈이 없어진 거예요. 추운 겨울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빼고 하다가 그만 돈이 빠진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주인이 돈을 내라고 하는데 말을 못해요. 한국말이 안되니까요. 여러분, 네팔에 가보면 그들 얼굴이 한국사람 얼굴과 똑같아요. 입 다물고 서있으면 깜빡 속습니다. 그러니 식당 아줌마도 모를 수밖에요. 멀쩡한 여자가 말은 못하고, 돈도 못 내고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이 조사를 하는데 이거 뭐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한 여자로 생각하고 정신병원에 보냈어요. 64개월을 정신병원에 갇혀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옆에 두고도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겼어요. 그 동료들이 이 사람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니다가 드디어는 병원에서 발견해서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어요. 본인의 책임도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연약한 이방인에게 조금이라도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있었다면 그녀가 그렇게 아까운 세월을 정신병원에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늘 우리의 의식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복음을 수출하기 위해서 한국선교사들을 많이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외 가는 곳마다 한인교회를 두셨어요. 2003년 말 현재 통계로 124개국에 약 4,300여 개의 교회가 있어요. 물론 그 중에 3,300개는 미국에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1,000개의 교회가 전 세계에 쫙 깔려 있어요. , 해외에 한인교회를 많이 세웠을까요? 첫째는 물론 해외 우리교민들을 위해서 세운 것이지요. 그러나 눈을 들어서 좀 더 멀리 생각해보면 지금 현장에 나와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더불어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이지요.

지금 월드컵 준비가 한창입니다. 우리 대표팀이 약 40여 일간의 전지훈련, 강훈련을 잘 소화했다고 하는데, 감독이 말하기를 아직도 최종 entry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있어요. 인터뷰하는 것을 들어보면 감독님의 눈에 들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생존경쟁이지요.

하나님은 감독이고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다스리는 문이세요. 누구를 쓸까? 한국인을 쓰기로 작정한 거예요. 이번에는 국내파를 쓸까, 해외파를 쓸까, 감독이 지금 누구를 쓸까 고민 중이에요. 해외파가 아무래도 유리하겠지요. 왜냐면 밖에 가서 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해외파라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돼요. 국내파가 부쩍 성장했거든요.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는데 쓰시는 것으로 말하면 한국교회는 국내파이고 이렇게 나와 있는 우리는 해외파에요. 해외파는 장점이 있어요. 현장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볼 수 있어요. 사실은 우리가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쓰임 받는 거예요. 그러나 무조건 쓰시는 건 아니에요. 해외파도 실력이 없으면 떨어져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당한 실력은 뭘까요? 그게 바로 복음이지요.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관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인생관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크냐? 심지어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크냐? 지금 십자가를 지러 올라가시는데도 누가 크냐 하고 자기들 안에서 다툼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보고도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들을 배척합니다. 이게 바로 세상사람들의 인생관이에요.

우리 안에서는 누가 크냐 이걸 가지고 다투고 저들과 우리는 누가 우리 편이냐 이렇게 구분하는 거예요. 심리학적으로는 그런 걸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내면이 공허한 사람입니다. 자기 그룹 안에서 핵심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이 자기의 존재감을 어떻게 하든지 확인하고 싶어서 상대를 압박하고 핍박하는 거지요. 그러니 우리가 정말 제대로 복음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확신이 있고 여유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맞추어가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했어요.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인처럼, 헬라인을 만나면 헬라인처럼 이런 문화. 저런 문화를 맞춰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실 여러분들도 경험하셨겠지만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도 많은데 밀치고 헤치고 가면서 예수를 믿으시오하는 것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또 하나, ‘그러나, 굳이 저런 방법으로 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예전에 마음에 불이 붙고 할 때는 버스에 올라가서 운전수 옆에 서서 복음을 전하고 그랬어요. 다 필요한 거예요.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화가 있고 상대방의 삶에 그 형편이 있어요. 그것을 잘 배려하면서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최고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 어린 아이 하나라도 예수 이름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자. 이 얼마나 기가 막혀요? 우리가 모든 곳에서 1등 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어린 아이 하나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따뜻하게 영접하는 것, 이것은 할 수 있어요. 왜 그러느냐면 여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 이름을 믿으려고 나오는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시키지 말라.

그 유명한 미국의 크리스천 저술가인 필립 얀시는 미국 남부출신이에요.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 미국남부의 근본주의 교회에서 자라났던 기억을 생각하면 몸을 떠는 사람이에요. 그 교회는 남녀가 함께 수영하면 안 된다.’ ‘화장하고 교회 오면 안 된다.’ ‘볼링하면 안 된다.’ ‘춤추면 안 된다.’ 그리고 주일날에는 신문도 보면 안 된다.’ 하나님이 얘기하시지도 않은 많은 세세한 규정들을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그것을 가지고 지키게 하고 강요하면서 마치 그것이 세상과는 구별된 신앙인양 가르쳐왔다는 것이지요. 이게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거예요. 그게 신앙의 본질이 아니거든요. 물론 그게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을 그 문화와 상황에 맞춰서 얘기해야 할뿐만 아니라, 반드시 앞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좀 야한 영화가 있습니다. <스캔들>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정치가가 뇌물이나 어떤 여자관계 같은 것이 있으면 당장 스캔들로 떠오르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의 정치인생은 끝나는 것이지요. <스캔들>이라는 영화는 배경이 약 200년 전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왔던 약 1700년대 말의 상황입니다. 아주 바람둥이 양반이 있어요. 그런데 주위에 천주교를 나가면서 젊어서 청상과부가 된 여인이 있어요. 누가 내기를 했어요. “저 여인을 유혹을 해서 넘어뜨리기만 하면 내가 돈을 주겠다.” 그래서 이 바람둥이 양반이 그 여인에게 접근을 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해 유혹을 해서 드디어는 그 마음을 뺏었어요. 사랑에 빠지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목적을 달성했어요. 그리고는 여인을 버렸어요.

그런데 그 여인은 그 남자의 사랑을 받고 드디어 그를 향하여 마음을 열고, 몸을 열더니 그 남자가 자기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떠나가지 않는 거예요. 끝까지 그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 바람에 한번 장난으로 하려 했던 것이 그 남자의 깊은 고민이 되어버렸고, 끝내는 죽음을 각오한 사랑을 발견하고 이제까지의 자신의 불장난 같은 그 허무한 인생을 뼈저리게 회개하며 그 여인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여기 보면, 멀쩡하게 신앙생활 잘하고 살아가는 여인을 넘어뜨리려고 해요. 실족시키려고 해요. 그런데 그 여인은 넘어지는 듯 했는데 사랑으로 일어섰어요. 오히려 바람둥이가 그 여인의 사랑에 걸려서 넘어졌어요. 실족했어요. 원래 스캔들이란 말은 실족하다라는 헬라어 스캔달리조에서 나온 거예요.

복음은 스캔들이에요. 원래 복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인간의 노력이나 가치가 아닌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사울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러나 최고로 공부하고 가장 종교적으로 열심인 사울이었지만 그가 스데반을 죽이는 자리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종교의 허상을 발견하고 깊이 고민하며 나아가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 앞에서 넘어지게 되었어요. 예수 앞에서 넘어질 때, 그는 복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신다.’ 사랑에 붙들려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럼 우리가 이 복음의 생명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 한 그릇이라도 나누어줄 때, 결단코 그가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1989년도에 신대원 졸업반 때, 중창단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저희가 신학생이니 무슨 돈이 있겠어요? 돈을 어렵게 마련해서 구두쇠같이 아껴가면서 3주간 여행을 하는데 가는 곳마다 파리든지 로마든지 비엔나든지 다 한인교회가 있더라고요. 미리미리 선배님께 연락을 해놓으면 유럽에 있는 한인교회가 뭐 그렇게 넉넉한 교회가 없거든요. 우리를 호텔에 재울 형편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다 민박이에요.가보면 넉넉하게 잘 사는 집도 있었지만 또 어떤 집은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좁아요. 그러나 마음이 따뜻해요. 외국에 나와서 외국인과 살다가 이혼하신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주시고 정성껏 하룻밤을 대접해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물 한 그릇이지요. 얼마나 기쁨이 있었는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가 받은 바 사랑의 생명력을 어떻게 날마다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물 한 그릇을 서로 나누어주라.

얼마 전에는 한 선교사 분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오셨다고 해서 가서 만나서 식사를 하고 차로 안내를 해드렸지요. 하루 잠깐 도와드린 것뿐이지요. 그런데 그 차 안에서 그분이 어떻게 여기에 오시게 되었는지 자기의 인생을 쫙 이야기하시는데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쓰시는구나.’ 여러분, 물 한 그릇 접대하는 마음으로 그냥 드렸을 뿐인데 그 그릇이 빈 그릇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놀라운 하나님의 간증을 담아서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교회를 두신 까닭은 서로서로 물 한 그릇을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생명력을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 안뿐만 아니라 주위에 눈을 돌려서 특별히 현장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1960년대에 국산품 애용이란 구호가 있었지요. 지금은 우리나라 제품들이 세계 일류를 달리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때만 해도 품질이 나빴거든요. 경쟁력이 없었지요. 아직 우리 한인선교사님들의 상황은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파송하고 후원합니다만 현장에 가까이 있는 한인교회야말로 저들의 파트너가 되어 함께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인교회의 존재이유이기도 하지요.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하나님의 손에 내어드림으로 새로운 나라를 이뤄나가는데 앞장서야겠습니다. 여기에 오늘 3.1절을 기억하는 참뜻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민족이 자유를 잃고 고통 당할 때에 교회가 들고일어나 온 민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시고 오늘의 부흥을 이루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려고 우리민족을 불러주신 것 감사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과 함께 오늘 하나님의 시대적 부름에 기쁘게 따라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