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마음을 시원하게[성령충만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10. 25. 20:49

050821 마음을 시원하게                                              설교집 Ⅱ<마음을 시원하게> 1-1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잠언 25:11-15)

 

올해 한국여름은 무척 홍수피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무더위에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소식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음을 더 답답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월드컵이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국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지요. 외국인 감독의 무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월드컵 4강 때, 우리 팀이 보여주었던 그런 체력과 조직력과 패스와 개인기는 완전히 실종되었다. 그걸 보니 명마라도 조련사를 잘못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사실은 축구보다 더한 위기가 있지요. 우리 한국정치의 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가 고종석이 그의 칼럼에서 환멸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노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에 칼럼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대통령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인 업적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 소수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학력으로나 능력으로나 그가 보여주었던 이제까지의 소질로나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우리 모두에게 주었는데, 지금 2년 반 남은 임기를 환멸을 넘어서서 노대통령이 이제 남길 수 있는 정치적 업적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그 사실 외에는 부정적인 것만을 유산으로 남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업적이 없다고 아주 날카롭게 비판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런 말로 그 칼럼을 끝냈습니다. “더 이상 개혁정부가 무엇인가를 이루어줄 것이라는 환상을 내버리고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일상을 개혁해야만 한다.” 지도자를 뽑은 것은 우리 국민이요, 우리 각자에게도 그만큼의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대통령은 5년이면 교체가 가능하고 대표팀 감독이야 결정을 내려 또 다시 교체할 수 있지만 그 땅에서 살아갈 나 자신은 어떠해야 합니까? 나 자신이 언제까지나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불평하는 그러한 존재로만 머문다면 그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나에게는 위기가 없습니까?

여러분, 어린 아이들이 잘 아는 동화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다가 산신령을 만나 정직하게 말해서 쇠도끼는 말할 것도 없고 은도끼, 금도끼까지 찾아가지고 왔다는 이야기. 혹 여러분, 그 뒷얘기를 아십니까? 그 나무꾼이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신나게 자랑을 했더니 그 사람들 중에 저쪽 구석에서 어두운 얼굴로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은 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이 나무꾼이 일하러 나가다 보니 그 사람이 아내 손을 끌고 어딜 가는 거예요.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아내를 데리고 연못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 뒷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아내를 연못에 내던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도끼야 건질 수 있겠지만요.

여러분,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것입니다. 어떤 유부남이 한 아가씨를 몰래 좋아해요. 참 어리석기 짝이 없어요. 아내를 버리고 그 아가씨와 결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 또 바가지 긁고 잔소리하지 않겠습니까. 왜냐면 그게 아내의 역할이니까요. 환상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지도자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지도자예요. 이제 남은 일은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따라가느냐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월드컵 4강 때에도 유능한 지도자가 있었고 그 지도자를 충실하게 따라간 선수들이 있었지요. 박지성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무명이었잖습니까? 감독이 발견하여 훈련을 시키는데 스타 선수들은 말을 안 듣다가 나중에 쫓겨나 볼품없게 됐지만 충실하게 그 명령을 따라가고 배우고 익히면서 대 스타가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미 하나님이 우리 삶을 주장하고 계세요.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응답하느냐 그것만이 남았어요. 그럼, 하나님의 기준은 뭡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습니까? 그러고 보니 다윗을 만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다윗을 보니 저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다. 내 뜻을 저를 통하여 다 이루리라.” , 다윗이 복된 사람이지요. 여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는가 하는 그 기준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에요. 특별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에요.

소망교회의 곽선희 목사님이 1년에 한차례씩 일본교회의 목회자들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합니다. 일본교회가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하셔서 그분들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엽니다. 일본목사 한 분이 물어봅니다. “왜 일본과 한국은 복음이 들어온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한국교회는 이렇게까지 부흥하고, 일본교회는 왜 이렇게 부흥하지 못합니까?” 일본인구의 1%가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일본에는 처음부터 교회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입어 허물 많고 연약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인데, 일본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마치 사무라이들 같이 자기 일에 자기가 책임진다는 식으로 뭐하나 일이 터지면 그저 배를 가르고 죽는 그러한 극단적인 양태로 나아갔기 때문에 누구도 허물 많은 삶은 교회에 들어갈 수 없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고행이 아니에요. 제가 예전에 젊었을 때, 가장 무서웠던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너 참 잘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리카에 사람이 부족한데 너 좀 거기에 가라.” 그럴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얼마나 무지합니까?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은 능력도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아무데나 내보내는 부모가 있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무지하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아세요. 우리를 빚으신 분이에요.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장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에요. 적어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이곳에 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에게 맡겨진 그 일을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허물이 있는 자를 쓰시는 거예요. 목사라도 그렇습니다. 목사가 다 잘할 수는 없어요. 또 알고 보면 다 잘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슈퍼맨이 아니거든요. 다만 목사는 저렇게 허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저를 사랑해서 쓰시는 구나하는 것을 보여서 모든 성도들에게 , 나도 이런 약점과 허물이 있지만 하나님이 내게도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면 되는 거지요. 하나님은 오히려 허물이 많은 자를 들어 은혜를 부어서 쓰시는 거지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찾는 조건이 있습니다, 겸손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내가 잘났다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는 가장 어리석은 자의 선택이에요. 겸손한 자는 자기의 모습을 알게 됩니다. 남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적어도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 보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거기에 일리가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싫은 소리를 들을 때에 듣기 싫어하고 기분 나빠하고 성내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만, 바로 그때, 그 안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게 지혜로운 거예요.

제가 지난밤에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  보니까 바로 원균의 패배와 죽음장면이었어요. 사실 원균은 이순신의 3년 선배예요. 육사 선배라고도 할 수 있고 해사 선배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바다를 지키는 지역 사령관이었잖아요? 그런데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서 나라에서 삼도수군통제사라는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잖아요. 그게 못마땅했어요. 그래서 이순신이 하는 많은 일에 동의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원래 장기나 바둑이 그렇지 않습니까? 훈수하는 사람에게 길이 잘 보이잖아요? 그러다가 이순신이 임금의 미움을 사고 투옥이 되고 드디어는 자기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어요. 그의 뜻을 이루었어요. 그러나 그의 진정한 고통은 그 순간 시작되었어요. 적이 다시 쳐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볼 때는 길이 잘 보였는데 자기가 책임을 맡고 일을 수습하려니 수습이 되지 않는 거예요. 결국은 이순신이 준비해놨던 그 많은 함선과 부대와 군량과 그 모든 것이 칠천량해전 그 하룻밤에 다 날아가 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많은 배들이 다 물 속에 들어가 버리고 자신도 전사합니다. 드라마에서 마지막 죽는 순간에 원균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옳고 내가 틀렸다고 하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여러분, 무조건 올라가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Effective Calling’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인데 효과적인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일을 맡기실 때,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게 가장 좋은 일이다. 그리고 내게 이미 주신 은사가 있기에 쉬운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일에 내 마음을 두고 있기에 거기에 자연히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에요. 요즘은 리더의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리더라 불렀지만 지금은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리더예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은 삶의 만족을 얻고 기쁨을 누리는 데 있기 때문이에요. 그가 비록 좀 못 배웠더라도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는 사람이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놀라운 일을 보여주고 있지요.

여러분, 사울이 회심을 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습니까? 사울이 회심했을 때,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의심했습니다. ‘저게 또 회심했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잡아가려고 그러지 않나?’ 한번 속았기 때문에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웠어요. 그때 사울을 변호해준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나바였어요. 바나바가 사울을 만나서 사울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그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그리고 그를 변호해주었어요. 그리고 사울이 고향에 내려갔을 때,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개척하고 사울을 데리고 와서 그에게 교회를 섬기게 했어요.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름을 안디옥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 교회가 성경에 나와 잇는 아주 아름다운 교회였기 때문인데, 그 리더가 바로 바나바였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그들에게 너희 교회는 이제 이방을 향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나아가라. 그 가운데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이 한 팀이 되어서 선교하러 나아가게 됩니다. 한 교회를 목회하는 것과 복음이 없는 오지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는 그 상황이 달라요. 거기에는 악령들의 역사가 있지요. 구브로 섬에 갔을 때 그 총독을 유혹하고 미혹하는 거짓 무당을 이 사울이 성령이 충만해서 말씀의 권세로 묶어버리고 소경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 다음부터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면 뭐라고 표현했느냐, 그 전까지는 바나바와 사울이었는데 이제는 이름이 바울로 바뀐 사울이 먼저 나옵니다. ‘바울과 바나바주도권이 바뀌었지요. 여기에서 위대한 점은 바나바에게 있습니다. 자기가 발굴한 사람이요, 자기가 훈련시킨 사람이요, 터를 만들어준 사람이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역할을 바꾸신 그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러기에 그들의 선교여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고,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했고, 성령과 기쁨이 충만했었지요. 큰일을 하든지 작은 일을 하든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잘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그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결국 내 마음, 내 생각이 얼마나 밝은 마음으로 열려있는가, 나의 좁아진 생각과 이기적인 판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 바로 그를 하나님이 쓰시려고 합니다. 사울 왕과 같이 한 때는 겸손했으나 그가 자그마한 성공을 이루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는 그 순간부터 그는 이미 버려진 사람이 됩니다. 마음의 문제이지요.

제가 재미있는 광고를 하나 봤어요. ‘애인과 휴대폰의 공통점첫째는 처음에는 무지하게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두 번째는 이것저것 액세서리를 달면 예뻐 보인다. 세 번째는 크고 두꺼운 것보다는 작고 얇은 것이 훨씬 좋다. 네 번째, 시간이 지나면 자꾸만 신형에 관심이 간다. 다섯 번째,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귀찮다. 여섯 번째, 남이 내 것 쓰면 기분 나쁘다.

마음의 문제이지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기 위해 사람을 통해 나를 책망할 때, 그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참 위대한 사람이에요. 오늘 보니까 분노할 일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길게 참을 때, 하나님께서 관원의 마음도 움직이시고 상사의 마음도 움직이십니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 오늘 억울한 일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일을 일으키십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여러분이 아주 대박을 만날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늘 하나님이 그러세요. 억울하다고 그걸 다 쏟아버리시면 그걸로 끝이에요. 오늘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려 보세요. 반드시 하나님이 그 안에 놀라운 응답을 남기세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찾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뭔가 시원한 것을 얻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정직한 자. 자기의 실상을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변화된 마음을 통해서 기쁨이 없는 이 세상 속에 은혜를 부어주시는 거죠. 다윗이 왕이어서 하나님이 그를 쓰신 게 아니에요. 그는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그 책망을 왕임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들었던 사람이에요. 다윗만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여러 가지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들었던 사람이 없어요. 사실 성경을 읽어보면 다윗만큼 가정이 복잡한 사람이 없어요. 많은 불화도 있었고 고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엽니다. 오늘밤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성령충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들어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세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여기에 신앙인의 참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여러 가지 마음 답답하고 괴로운 일들이 많아 힘들고 어려워서 나의 환경을 바꿔보려고 많은 것을 궁리하는 우리들이지만,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만큼 내 마음이 어그러지고 교만해져 있는 것,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회개합니다. 내 마음을 열게 하시고, 하나님이 오늘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그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음성을 날마다 들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