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작가 21일 ‘순이삼촌’ 40년 간담회
4·3 진실 알린 첫 소설로 고문 고초도
“어릴 때 겪은 4·3으로 말더듬이 증세까지”
이경자·김정환 등 문인 30여명 참석
4·3 진실 알린 첫 소설로 고문 고초도
“어릴 때 겪은 4·3으로 말더듬이 증세까지”
이경자·김정환 등 문인 30여명 참석
<순이 삼촌> 작가 현기영. 최재봉 선임기자
21일 저녁 서울 망원동 창비 건물 지하 행사장에서 뜻깊은 모임이 열렸다.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 삼촌> 발간 40주년을 축하하는 간담회였다.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장 원종국)가 마련한 이 모임에는 주인공인 작가 현기영을 비롯해 동료 문인 30여명이 참가했다.
<순이 삼촌>은 현기영의 첫 소설집이다. 특히 표제작인 중편 ‘순이 삼촌’은 제주 4·3의 진실을 처음으로 소설로 알린 작품이다. 이 소설 때문에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책 <순이 삼촌>은 금서로 묶여 그 뒤 14년 동안 독자를 만날 수 없었다.
작가는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유미주의 성향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1일 모임에서 그는 “4·3 얘기를 한 번은 소설로 쓰고 그 뒤에는 ‘문학’이란 것을 좀 하려 했는데 일생을 이것에 매여 살아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려서 겪은 4·3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말더듬이 증세가 나타났어요. 억압된 내면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소설로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4·3에 관한 이야기가 금기였기 때문에 조금 두렵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장치도 마련했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요. 소설에 양심적인 서북청년단을 등장시켰거든요. 그래도 소용이 없더군요.”
소설가 현기영이 21일 저녁 서울 망원동 창비 지하 행사장에서 자신의 소설집 <순이 삼촌> 발간 40주년을 기념해 후배 작가들이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현기영 소설집 <순이 삼촌> 역대 판본들. 최재봉 선임기자
그는 2박 3일에 걸쳐 겪은 고문을 회고하면서 거듭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고문이란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후배 작가들이 현기영과 <순이 삼촌>에 관한 회고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순이 삼촌>은 소설이 억압과 주눅들림, 왜곡, 거짓으로부터 어떻게 힘차게 역사적 진실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를 증거해 준 작품”이라며 “선배 작가가 개척해 놓은 길이 등대 불빛처럼 후배들을 이끌고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시인 강형철은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는 김수영의 시 ‘폭포’ 첫 구절을 인용하며 “현기영 선생은 금기로 묶인 진실을 용감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한기욱 <창작과비평> 주간은 “<순이 삼촌>은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 내 인생의 책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현기영은 “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이 개인과 일상에 치우쳐서 아쉬움을 주었는데 최근에는 공동체와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작품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문학에서 개인과 사회, 일상과 역사는 같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소설가 김서령과 문학평론가 홍기돈이 ‘순이 삼촌’ 일부를 낭독했으며, 후배 문인들은 자신이 읽은 <순이 삼촌> 단행본을 가지고 와서 선배의 사인을 받기도 했다. 이날 모임에는 시인 김정환·박남준·박철·김해자·정우영·안현미 등과 소설가 유시춘·한창훈·오수연·전성태·심윤경 등이 참가했다. 행사를 마련한 원종국 위원장은 “2029년 11월, <순이 삼촌> 발간 50주년 축하 모임에서 다들 다시 만납시다”라는 발언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