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로마 교민의 ‘코로나19’…“다 잘될 거야” 오늘도 희망의 세레나데를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3. 23. 04:26

로마 교민의 ‘코로나19’…“다 잘될 거야” 오늘도 희망의 세레나데를

등록 :2020-03-21 14:13수정 :2020-03-21 14:36

 

[토요판] 특집
로마 교민이 겪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1월 말 정부, 중국인 입국 금지하자
“네 나라로 돌아가라” 차별 나타나
총리, 3월10일 이동제한령 발효
24시간 슈퍼마켓 새벽까지 북새통

한국-이탈리아 직항기 전면 중단 처음
교민 여행업 종사자 많아 월세 걱정
불안한 마음에 바깥출입 일절 금지
냉장고 파먹기 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지난 1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한 부부가 집 발코니에 ‘안드라 투토 베네’(다 잘될 거야)라는 글귀를 적은 국기를 걸어놓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의미로 박수를 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 이탈리아에서는 매일 몇천명씩 새 확진자가 나오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밀라노 등 북부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위기는 로마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산됐다. 2월 초까지 이탈리아는 괜찮다고 했는데,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큼 사태는 급변했다. 로마에서 23년간 살며 고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를 키우는 안영신 로마한글학교 교장이 코로나19 사태의 경험을 전해왔다.

요즘 매일 오후 6시만 되면 아파트가 들어선 이탈리아 동네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지난 12일부터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을 다 함께 이겨내자는 의미로 시간과 노래를 정해서 발코니에서 플래시몹을 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무지개를 그리고 ‘안드라 투토 베네’(Andrà tutto bene 다 잘될 거야)를 써서 발코니나 대문에 걸어놓았다. 이럴 때일수록 흥이 많은 이탈리아인다움을 유지하면서도 하나가 되어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이 뭉클하다.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과 식료품·의약품 등 생필품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바깥출입이 금지돼 있다. 사실상 국민 대다수가 자가격리 상태인 것이다.​최근 매일 몇천명씩 새로운 확진자가 나오는 걸 보면 안타까움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19일(현지시각)에도 신규 확진자가 5322명 늘어나 누적 확진자는 4만1035명, 누적 사망자는 3405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연일 400명 안팎의 신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이날 중국의 누적 사망자 수(3245명)를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누적 사망자 수가 중국을 넘은 나라는 이탈리아가 유일하다.유치원에 다니는 6살 아들과 고등학교 5학년 졸업반(이탈리아는 만 6살부터 초등 5년, 중등 3년, 고등 5년으로 13년 학년제) 딸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 23년을 살았지만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뉴스를 챙겨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불과 몇주 전만 해도 한국에 사는 양가 부모님들이 전화하면 걱정 마시라고, 이탈리아는 아직 괜찮다고, 마스크도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이젠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사고 싶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렇게 이탈리아 상황은 지난 1월 말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큼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우리 가족은 20여년간 경험하지 못한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이웃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공동체의 힘도 경험하고 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면 중국밖에 모르니? 난 한국 사람!”

이탈리아에서는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태를 ‘중국인의 문제’로 여겼다. 1월 말께 로마에 체류하던 중국인 관광객 2명이 최초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곧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국인 입국을 금지했다. 이후 3주가량 이탈리아에선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동양인 차별은 기승을 부렸다. 우리 집이 로마의 동쪽 끝이라 아침마다 고등학생인 딸(19살)이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등교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붙잡아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고 이탈리아 영주권을 보여주니 가라고 했다지만 아이는 처음 겪는 일에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 뒤로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도서관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 다녔다. 물론 아이는 이탈리아어로 “너 무식하구나? 아시아면 중국밖에 모르니? 난 한국 사람이야!” 대꾸했지만 하루는 이 말을 하다가 맞을 뻔한 적도 있었다. 이날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학생 세명이 욕을 퍼부으며 “바이러스 저리 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딸이 평소대로 맞받아쳤더니 그중 한명이 손을 들고 때리려 했다. 마침 옆에 있던 이탈리아 어른들이 자기 일처럼 위기 상황을 막았고 딸에게 “괜찮다, 너 한국 사람이라는 거 다 들었다”고 위로했다고 했다. 1월 말, 대학병원에서 면역질환 진단을 받고 나는 딸과 돌아오다 맥도날드에 들렀다. “중국 애들 왔어, 숨 쉬지 마.” 직원들이 쑥덕거렸다. 이런 일을 계속 겪어온 아이는 나보다 먼저 따지고 들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지만 중국 사람이 듣기에도 그런 농담은 좀 심하지 않니?” 직원은 미안하다며 몇번이고 사과를 했다. 한동네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나는 내 주변이나 이웃 사람들에게서 어떤 불편한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날 사건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다. 아이는 동네를 벗어나 학교에 다니니 이런 차별적 상황에 자주 노출됐던 것이다.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로마는 코로나19 확산이 초기부터 심했던 북부가 아닌데도 말이다.당장 내가 교장으로 있는 로마한글학교 학생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글학교에는 학생 80여명이 다니는데, 로마에 첫 확진자가 나온 다음날인 2월1일 토요일에 수업이 있었다. 부랴부랴 손소독제 12개를 겨우 구입하고 수업을 진행하니 아니나 다를까 고등학생 몇명은 인종차별을 많이들 경험했다고 한다. 거리를 걷는데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지나가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아무도 주변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어른들이 이민 2세들이 받을 상처를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한국에서도 사태 초기에 코로나19를 일부는 ‘우한 폐렴’으로 부르고 중국인을 보면 피해 다녔다던데, 이탈리아 사람들 눈에는 동양인이 다 비슷해 보이니 그냥 피하고 싶었던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어디서든 중국인이라도 이런 차별을 당할 이유는 없지만. 물론 따뜻한 이탈리아인이 더 많다. 이탈리아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니 이탈리아 친구들이 문자를 보내 면역력이 약해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될 위험이 있는 나에게 사람 많은 곳에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감사한 일이다.지난 2월21일 밀라노,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한두명씩 나오더니 그 후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늘어났다.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롬바르디아주에서 역학조사한 결과, 밀라노에서 남동쪽으로 70㎞ 떨어진 코도뇨라는 마을에 거주하는 38살 남성이 최초의 국내 확진자였다. 하지만 중국 여행 경험이 없는 이 남성이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이탈리아 0번째 확진자를 아직도 모르니, 전파경로 차단에도 무력했다.지난 2월 말에 나는 안과 검진을 받으러 대학병원에 갔다. 당시는 이탈리아 경제의 30%를 담당하는 북부 지역에서 누적 확진자가 1천명 가까이 나타난 상황이었다. 정부가 유증상자만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해 마스크를 쓰지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스카프로 얼굴을 살짝 가렸다. 옆에 할머니가 신문을 보는데 코로나19 기사가 1면에 있었다. “정말 문제지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중국인….” “아니요. 한국 사람이에요.” 그제야 할머니는 웃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성악 공부하러 왔니, 나는 무슨 오페라를 좋아하는데….” 하면서 심지어 자기 집 정원의 살구나무 사진까지 찾아 보여준다.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 입구에 서자 의사가 다시 물어본다. “중국 갔다 왔어요?” “나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도 지금 문제잖아요. 한국 다녀왔어요?” 살짝 기분이 상해서 답했다. “난, 계속 로마에 있었어요.” 그제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속상한 마음에 한마디 던졌다. “이탈리아도 지금 문제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니에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검사를 시작하는 의사. 동양인이라고 내 앞에서 일부러 마스크를 쓰는 의료진도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로마 의료진이나 일반인들은 코로나의 심각성을 북부만큼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였다.3월이 되자 이탈리아 전역이 코로나19 영향권에 휩싸였다. 2월 말 북부 지역의 1차 휴교에 이어 3월4일 전국 학교에 2주간 휴교령이 떨어지자 아들 유치원 반 채팅방에 엄마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당장 일을 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 멈추는 경제는 어떻게 할 거냐, 로마는 확진자가 아직 많이 없는데 웬 휴교령이냐, 난리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초중고가 개학을 3월 말로 늦춘 한국 뉴스를 이미 보았던 나는 휴교령에 만세를 불렀는데 무슨 어처구니없는 대화인가 싶었다. 그때 딸이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탈리아 할머니가 자기는 오래 살았으니 감기나 코로나19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또 젊은이들은 알코올(술)이 몸에 많아 소독이 다 된다는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정말 코로나19를 상당수 이탈리아 사람들은 감기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사흘쯤 지나자 엄마들이 또 한차례 난리였다. 아들 유치원 근처 동네에 사는 한 남성이 며칠 전부터 고열이 계속 나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병원으로 이송됐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휴교령을 연장해야 하지 않냐, 무섭다는 걱정으로 채팅방을 채웠다. 180도 바뀐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났다. 다행히 그 남성은 단순 독감으로 확인됐다. 평소 주치의 제도가 의료체계의 기본인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19 증상이 있어도 바로 응급실로 가면 안 된다. 주치의나 코로나19 담당 번호로 전화해 증상을 알린 뒤 먼저 설문조사를 하고 검진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절차를 거치면 검사비를 정부에서 지원하지만 개인이 스스로 검사를 받을 때는 200유로(약 28만원)를 내야 한다.

전국 이동제한명령이 발효된 첫날인 지난 10일 이탈리아 로마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시민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슈퍼마켓은 내부 인원수를 제한하고 입장을 기다릴 때도 1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EPA 연합뉴스

 

생필품 사고 나오니 새벽 2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7375명(사망 366명)에 이른 3월8일 이탈리아 정부는 롬바르디아 등 북동부 5개 주 14개 도시를 ‘레드존’으로 지정해 도시 출입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전날 봉쇄 계획이 언론에 유출되면서 기차·비행기·자가용을 이용한 북부 주민의 남쪽(로마)으로 대탈출이 벌어지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조처는 하루 만에 전국으로 확대됐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3월9일 “(코로나19) 감염과 사망이 현저하게 늘고 있다. 10일부터 이탈리아 전역이 ‘보호 구역’이 돼 이동제한을 시행한다. 모든 국민은 집에 머물러달라”고 호소했다. 이 조처는 3월15일까지였던 전국 휴교령도 4월3일까지로 연장했다.이에 따라 이탈리아의 6천여만명 국민 전체가 긴급한 업무나 건강 등의 불가피한 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금지됐다. 업무상 이유로 바깥출입을 할 때는 본인 진술서를 온라인에서 내려받아 갖고 다녀야 한다. 경찰이 단속할 때 본인 진술서가 없으면 벌금 206유로(약 29만원) 혹은 3개월 징역에 처해진다. 모든 종교의식과 세미나, 집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모두 금지됐다. 또 영화관, 박물관, 도서관 등 공공시설도 문을 닫았다.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경기도 중단됐다. 시와 구청도 공공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물건을 사러 갈 때에는 가능하면 1가구당 1명씩 가도록 했다. 슈퍼마켓은 내부 인원수를 제한하고 입장을 기다릴 때는 1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처음엔 음식점 등은 영업을 허용하고 고객 간 1m 이상 안전거리를 지켜야 했지만, 지난 11일부터는 약국과 슈퍼마켓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식당 등이 휴업 중이다. 산책은 가능하지만 외출은 자제하도록 권한다.사실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낙천적인 성격상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태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이동제한령이 떨어진 날, 자정이 지나 딸이 휴대폰으로 사진 한장을 보내줬다. 친구가 찍은 24시간 슈퍼마켓 앞의 긴 줄이었다. 콘테 총리가 이동제한을 선포하고 1~2시간 뒤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과 자려고 누웠다가 눈치만 봤다. “우리도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설마? 내일 슈퍼 갈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 분위기만 보고 올까?” “일단 가보자.”밤 12시 반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아 24시간 슈퍼마켓을 가보니, 차들이 주차장에 많이 들어차 있고 카트마다 물건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내일 어찌 될지 몰라 일단 마스크를 쓰고 남편과 카트를 끌고, 눈에 보이는 것부터 담기 시작했다. 스파게티 면은 바닥을 보이고 달걀은 한 종류도 없었다. 밀가루는 다른 곳에 나뒹굴던 2개를 겨우 찾아냈다. 이탈리아인들이 많이 먹지 않아 남아 있던 쌀을 사고 나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이탈리아에도 한국처럼 배달 문화가 발달돼 있다면 이렇게 많은 식재료를 한꺼번에 사지는 않았을 듯했다. 사람들이 이동제한령의 정확한 범위(슈퍼마켓은 갈 수 있는지)를 몰라 불안한데다 나처럼 오늘이 지나면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 결심한 듯 보였다.몇시간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떨어졌다. 처방전을 받으러 동네 주치의가 모여 있는 진료소인 ‘스튜디오’에 갔다. 전날까지만 해도 번호표를 받고 줄지어 마냥 기다렸던 곳이 의사와 직원, 환자 한명씩만 내부로 들어가도록 시스템이 바뀌었다. 사람들도 그전에는 잘 지키지도 않던 1m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직원이 문 앞으로 나오기에 처방전 받으러 왔다고 하니 약국으로 바로 안내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약국 앞에는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상태였다. 나처럼 평소 먹던 약을 미리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안에서 1m 간격을 유지하도록 1~2명씩만 내부로 들여보냈는데, 간간이 마스크를 쓴 사람도 보였다.평소 1~2주 분량의 약만 받았는데 이날은 직원이 알아서 4주 분량을 주었다. 슈퍼마켓도 들렀다 집에 오려고 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 행렬이 너무 길어 슈퍼마켓 근처에선 내리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역시나 출입 인원을 제한한 탓에 대기 줄이 더 길어진 모양이었다. 딸 친구네는 3시간 만에 슈퍼마켓에 들어갔다고 했다. 정부가 이동제한이라는 초강수를 두자 그나마 심각성을 깨닫고 규칙은 또 잘 지키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기했다.이탈리아는 구조적으로 한국보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에서 마스크는 의료진이나 중환자들만 쓴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마스크를 쓰면 큰 병에 걸렸거나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기도 해서다. ​알레르기가 심한 계절인 3월이 와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평소 약국에 많은 수량을 가져다 놓지 않는데 이번 사태까지 터지니 마스크가 더더욱 없을 수밖에. 지금도 마스크를 미처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거리를 다녀야만 한다. 지난 3월10일부터 이동제한령으로 집에만 머무는 터라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할 일이 없어지면서 마스크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꼭 일해야 하는, 예를 들어 산업현장과 의료진, 모든 노동자들에게는 무료 마스크와 장갑을 지급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국 이동제한명령이 발효된 첫날인 지난 10일 이탈리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주변에 인적이 없다. EPA 연합뉴스

 

전세기로라도 한국 가고픈 유학생들

나는 로마에서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도 겪고 사스·메르스·리먼 사태도 경험했지만 이탈리아를 출발해 한국으로 가는 모든 비행기가 운항을 중단한 것은 처음 보았다. 이 초유의 사태에 한인 사회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여행업 종사자가 많은 이탈리아에서 직항 비행기가 끊겼다는 건 수입원이 끊겼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같이 이탈리아에서 오래 산 교민들은 어느 정도 감당하고 있지만 이곳에 온 지 3~4년 미만인 이들은 당장 다음달 월세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다. 며칠 전부터 상점과 식당들까지 모두 2주간 문을 닫아야 해서 한국식당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오래가면 한인 사회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행히도 교민들은 다른 때보다 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로마의 주이탈리아대사관에서 업데이트하는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이탈리아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을 뉴스로 보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도 늘어간다. 이탈리아에 한국 교민은 5천명 정도인데 관광업 종사자나 유학생도 많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나 유학생들은 고국에 있는 부모님이 그립고, 혹시 아프더라도 말이 통하고 의료체계가 튼실한 한국에 있어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 확진자 증가 추세가 꺾이지 않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의료진은 물론 의료장비, 병실 부족 등으로 신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한인회 중심으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조사 중이었는데, 한국 정부가 전세기 2대를 주선해 투입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밀라노 총영사관 관할 지역에서 421명, 로마의 대사관 관할 지역에서 150명 정도의 교민이 귀국을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같이 아이들이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이 있는 교민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지난 2월 한국 정부가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띄웠을 때 현지에 남기로 한 교민들을 의아하게 여겼다. “저 위험한 상황에 왜 남아 있지?” 그 입장이 돼봐야 이해가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또 한번 절실히 배운다.

힘든 상황을 다 함께 이겨내자는 의미로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무지개를 그리고 ‘안드라 투토 베네’(다 잘될 거야)라고 써서 발코니나 대문에 걸어놓았다. 사진은 6살 아들이 그린, 안영신씨 집 대문에 붙어 있는 그림. 안영신 제공

 

‘코로나 방학’에도 최선을

이탈리아는 6월 초부터 9월 초까지 석달 동안이 여름방학인데, 나는 지금을 ‘코로나바이러스 방학’이라고 부른다. 비록 길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다른 한인들을 만나기도 어렵고, 거주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려 해도 본인 진술서를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말이다. 마스크도 없는 상태에서 혹시나 하면서 옆 사람을 의심하며 바깥을 돌아다닐 바에는 지금처럼 그냥 집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냉장고 파먹기’를 하는 게 마음 편하다.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이틀에 한번꼴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범위 내의 슈퍼마켓에서 조용히 줄을 서가며 장을 보기도 한단다. 하지만 시내에서 떨어져 사는 우리 가족은 이동제한이 시작된 첫날(10일) 약을 받으러 나갔다 온 뒤로는 대문 밖을 나선 적이 없다.집 주변 산책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옆집, 앞집 이탈리아 사람들도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긴 시간을 불안만으로 채울 수는 없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딸은 아침부터 온라인 수업을 듣고 아들은 유치원 선생님이 보내준 자료로 만들기를 한다. 모처럼 집에 있는 남편은 요리 실력을 뽐낸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커피를 마시러 바(커피를 선 채로 마시는 작은 카페)에 가는 일상이 그립기도 하지만 나중에 또 이 순간들이 어떤 기억으로 자리 잡을지는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끝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헌신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의료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그리고 코로나19로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보낸 분들에게는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안드라 투토 베네’(Andrà tutto bene·다 잘될 거야).

로마/안영신 로마한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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