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본격소설과 신앙생활의 조화, 오승재 작품론, 이명재, 2019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6. 05:30

본격소설과 신앙생활의 조화, 오승재 작품론, 이명재, 2019

은혜 추천 0 조회 45 20.03.08 14:4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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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재 소설평설

본격소설과 신앙생활의 조화

이 명 재

 

1959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단편소설 第三埠頭로 당선된 오승재는 이제 등단 60주년을 맞은 원로급 작가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한 이래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하는 연륜 속에서 최근까지 발표해온 작품 활동을 감안하면 드물게 보는 현역의 소설가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문단활동의 회갑년에 이른 오승재의 문학편력과 작가의 전 작품에 걸친 특성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결코 적지 않은 실적에 비하면 이런 접근이 소략한 대로나마 한평생 대부분을 소설문학에 종사해온 작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사실 오승재는 신춘문예 당선작가로서 등단 초기이던 1970년대 전후에 문단 주류 문예지이던 현대문학등에 많은 단편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수학전공 교수로 봉직하던 중 미국에 건너가서 여러 해 동안 유학하느라고 공백기를 갖는 사이 원활한 창작기회를 누리지 못한 편이다. 그런 연유로 점차 기독교계 문단에 치우친 나머지 근자의 주요한 문학사전에마저 소원하게 취급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마침 문학 지망생으로서 당시 한국일보당선작부터 눈여겨 읽은 필자 자신이 오승재 소설문학을 총괄해 보는 셈이라서 뜻깊게 생각된다. 더욱이 어릴 적에 초등학교를 필자와 동향인 함평에서 마친 데다 기독교문학 모임에서 자리도 함께한 인연도 있기에 문학과 인생을 아울러서 접근하는 이점도 있을 것 같다.

 

 

문단 60년 작가의 삶

 

오승재吳昇在 작가는 1933년 전남의 농촌에서 초등학교 교사 겸 교장이던 부친과 자상한 모친의 5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시기에 전남대 부설 중등교사 양성소를 마치고 중고교 교편을 잡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 조선대부속중학에서 국어작문을 가르치던 무렵에 쓴 소설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전주 기전여고 재직 중인 1960년 말에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았고 뒤늦게 1965년에 대전대(한남대)를 졸업하였다. 1969년에 한남대 교수로 임용되어 강의하는 한편 1972년에 충남대 대학원에서 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1976년부터 2년 동안에 미국에서 다시 석사를, 곧 이어서 1982년에는 북텍사스 주립대에서 수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98년에 이르러서는 30년 동안 재직해 오던 한남대에서 정년을 맞이하였다.

이렇게 오승재는 가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청년기인 1959년에 소설작가로 출발해서 이듬해부터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미션계 대학의 자연계열 교수로서 삼위일체적인 삶을 영위해 왔다. 이런 여건 속에서 그는 미국에 유학하며 수학분야 학위과정을 이수하느라 1970년대 후반 이후 ‘80년대 초엽까지는 창작의 휴지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다가 정년 이후인 2000년대에 들어서며 창작활동의 재개에 임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승재의 소설문학에서 초창기는 다양한 모색을 드러낸 작품이었다가 그 소재나 주제의 중추는 차츰 기독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이런 사실은 다음과 같은 그의 창작집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

 

창작집 4, 작품의 변모 양상

 

지금까지 오승재 작가가 출판한 소설 작품은 장편소설 없이 창작집만 네 권이다. 첫 창작집은 등단 12년 만에 호서출판사에서 펴낸 아시아(1971)이다. 여기에는 휴전 전후 무렵의 부산 부두 철조망 안팎에서 미군 군사물자를 관리하는 체커는 물론 감독병의 눈을 속이며 군수품들을 얌생이질하는 판수나 털보를 철의 눈을 통해 리얼하게 묘파한 등단작 제삼부두를 비롯해서 그동안 발표한 초기 단편 13편이 실려 있다. 군 화약고를 지키며 평화롭던 과거 회상에 잠기는 사색주변, 6. 25전란 때 처참하게 숨을 거둔 빨치산을 그린 해고解雇, 오승재 소설들에서 출발 당시의 주류는 창작집의 표제작처럼 나라 밖의 이국풍정보다는 전쟁터 후방의 살벌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아시아학생들과 서양 젊은이들이 어울려 문화축제를 여는 이야기들은 그 다음 소설문학의 모색을 위한 한 지류였다. 각 나라의 다채로운 민속들로 경연을 다룬 아시아, 젊은 한일 영국 남녀의 경계와 사랑을 그린 日製 , 교포 2세의 모국방문을 다룬 루시의 방한기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지금은 절판되어 있는 이 창작집을 살펴야 오승재 소설의 맥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창작집은 첫 창작집 이후 무려 34년 만에 창조문학사에서 상재한 없는 앞에(2005)이다. 여기에는 작가가 미국에 학위과정을 이수하러 떠나기 전에 1년 동안 가진 하와이연수 체험을 연결해 쓴 루시의 방한등 서너 편이 실려 있다. 미국 현지의 발랄한 젊은이들 애정풍속과 한국 남녀 젊은이들의 사랑 모럴 등이 흥미롭다. 작가 자신의 관찰이나 실 체험을 주로 하고 거기에 다소의 픽션을 가미하는 글쓰기 방법이 효율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창작집의 표제작을 비롯해서 태반이 기독교계의 모순점을 풍자, 고발한 제일교회등의 12편이 주를 이룬다. 그 중에 표제작은 성형외과의사인 임 박사가 정혜란 간호사와 정을 나누고 미국에 유학 나가 다른 여성과 결혼해서 돌아와 다시 대화하는 마음이 입체적으로 짜여서 재미있다. 화가인 혜란의 남편은 캠퍼스 앞에만 앉아 그림을 못 그리고 교회에 열심인 부인과도 불화를 빚고 있어 종교와 예술에 복합적인 갈등을 보인다. 12편 거의가 당시 유수한 문예지인 현대문학과 품격 높은 교양지 思想界에 발표된 단편들로서 눈길을 끈다.

3창작집은 이전 창작집 이후 9년 만에 창조문예사에서 출판한 급매물 교회(2014)이다. 이 창작집에 실린 대다수 단편들은 1998년 정년 이후 강의와 연구의 틀을 벗어난 여건에서 원활해진 작품 활동의 소산으로 보인다. 역시 표제작의 이름에서처럼 기독교계의 바람직하지 않은 폐단이나 반성할 점들을 지적하고 제시하여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모두 14편을 4부로 나눈 편집부터 체계적이고 기독교 신앙 위주 성향이다. 1<교회>, 2<목사>, 3<교인>, 4<그리고 나 부흥회>로 나뉜다. 무리하게 교세를 넓히고 건물을 크게 지으려다 부도를 내서 교인까지 묶어 넘기거나 더러는 지나친 기도원의 철야기도로 교인이 숨지는 경우도 적시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6.25때 의용군으로 북한에 쓸려간 작가의 친동생인 오영재시인과 어머니를 여읜 형제들이 20008, 눈물겨운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넘을 수 없는 벽은 일기체를 곁들인 실화로서 소설의 또 다른 본을 보여 뜻깊다.

4창작집은 5년 터울 만에 북랩출판사에서 최근에 펴낸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2019)이다. 역시 표제에 선명하게 나타낸 바처럼 기독교 신앙에 비중을 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원숙한 필치로 진솔하게 쓴 표제작과 동남아 지역으로 해외선교를 나간 제자에게 자상하게 쓴 박 교수와 김삼순 선교사를 비롯한 소설이 실렸다. <교인> 항목의 단편 5편과 교회에도 수문장이 있다」 「급매물 교회를 포함한 2<목자와 교회> 5편을 합해서 단편은 모두 10편을 실었다. 그리고 이 밖에 3장에서 다양한 <콩트> 14편을 더하여 구색을 갖추었다. 작품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치우친 것은 작가의 말처럼 30대 초반에 예수를 믿기 시작하여 은퇴하기까지 기독교학교에서 봉직했던 사정이 참고 된다. 여러 작품이 재수록 되었지만 이런 문제는 작가 스스로 오래 전의 작품들을 다시 다듬고 개작하듯 보완한 것이므로 나름의 가치가 있다.

 

 

외국체험의 신선한 日製 경우

 

1970월간문학에 발표된 단편으로서 오승재 작가가 등단한 초기에 전후사회의 어두운 사회상을 다루던 작풍들과는 차별화된 성향을 띤다. 1966년 여름부터 1년 남짓 미국 하와이에서 연수한 이래 미국을 비롯한 여러 젊은이들의 다양한 만남과 발랄한 생활상을 보인다. 1968현대문학에 선을 보이고 첫 창작집에 표제작으로 수록한 아시아에 이어 발표한 루시의 방한기계열의 단편이다. 등단 초기 작품처럼 각박한 한국의 어두운 전후 사회 양상이나 이후의 오승재 소설들에서처럼 신앙문제는 양념처럼만 조금씩 섞어서 활용하여 재미나게 읽히는 소설이다.

대화로 시작되는 서두부터 발랄하게 와 닿는다. 같은 숙소에서 함께 지내는 동료가 한참 사귀고 있는 친구에게 일본 아가씨를 가만두지 말라고 건네는 말투다.

 

 

, 정복했니?”

뭘 말이야?”

가쓰꼬 고년 말이다.”

그건 너무 했잖아?”

뭐가 너무해? 갖고 놀 생각 아니면 너는 친일파거나 매국노야.”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자리한 EWC에서 행해진 외국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국 젊은이()를 파트너로 끌어들인 뒤로 밀착한 가쓰꼬의 성격묘사도 일품이다. 일본 학생들의 눈초리와 야유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그들 앞에서 포옹해 달라며 적극적인 것이다. 그녀가 자기의 폭스바겐 승용차로 손수 운전하며 자주 불러내서 데이트하는 자세뿐만이 아니다. 수동적인 한국청년에게 운전도 가르쳐 주고 그의 품에 안겨들며 결혼하자고 프러포즈까지 한다.

그런 유혹 속에서 정작 화자(-작가 자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번민하며 망설이는 모습이 선연해 보인다. 애정을 나누거나 대화하는 곳곳에 내적 독백 같은 마음의 여울이 작품 속에 잘 녹아들어서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 한다. - ‘아담의 죄를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듯 회개하지 않고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나는 교회에서 훈련받은 순한 양이었다.’ “음녀는 구렁이요 이방여인은 깊은 함정이라고 성경의 잠언에서는 말했는데.”

이렇게 작가는 작품 속에서 두 남녀가 달콤하고 뜨거운 밀회를 가지면서도 언행과 의식의 흐름을 잘 엮어서 감칠맛 있는 단편으로 잘 요리해 내고 있다.

 

당신은 크리스천이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녀는 높이, 빨리 뛰는 나의 심장의 고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눈을 흘기면서 내 가슴에서 빠져 나가 앉으며 말했다.

참 사랑은 정복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고 정복당하고 싶은 욕망이래요,”

 

그런 가쓰꼬의 유혹에도 미온적인 청년에게 그녀는 다음 달에 귀국해야한다며 폭스바겐을 사달라고 권유한다. 결국 친절하게 운전을 가르쳐서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따게 해 준 그녀의 승용차를 유학생생활지원금으로 사들인다. 하지만 프러포즈에 냉담한 청년에 토라진 가쓰꼬에게 그는 두어 달치의 나머지 월부를 떼먹으라는 룸메이트의 권유를 뿌리치고 완납하는 신사도가 수긍된다. 요즘 한일 양국의 일부 위정자나 대다수 국민들 감정을 감안했을 연인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민감한 긴장감으로 받아들일 사안이다.

 

그러나 나는 괴로웠다. 성경에 의하면 내가 빗나간 생활을 했으니 탕자처럼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가쓰꼬와 함께 했던 날들을 육체의 정욕에 사로잡힌 삶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승재 작가는 위의 내용에서처럼 기원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제시해 보인 이래 오늘까지 모든 문학예술의 두 중심기능을 조화롭게 잘 지켜냈다고 본다. 첫째 기능인 재미(쾌락)와 둘째 기능인 가르침(교시)을 너무 직설적으로 설교하기보다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시켜서 선교하는 접근자세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언어예술의 중심 장르인 문학에서는 예술적인 재미를 주로하고 종교적인 사상은 부차적으로 활용하는 아시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서 참고가 된다. 역시 하와이 대학 캠퍼스 주변에서 국제적인 문화축제를 마친 후에 한국유학생 가운데 EWC의 망나니그룹과 함께 아리랑 술집으로 몰려가서 일본노래를 가르쳐 주는 미끼꼬를 다루는 것이다. 미국인 약혼자가 있는 미끼꼬에 끌려서 춤을 추면서도 화자는 아내와 함께 암기했던 성경 구절을 생각한다. -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신앙인의 삶을 그린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경우

 

2018장로문학에 발표된 이 작품은 최근의 종교 의식을 담아내서 알뜰하고 중후한 단편이다. 입원 수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노부부의 순애보적인 사랑과 기독교 신앙을 원숙하고 진지하게 다루었다. 부부사랑과 심각한 건강문제에다 신앙이야기임에도 현학성 없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평소 독실한 기독교 가정으로서 소탈한 주인공의 인품과 화자()를 통한 이야기의 진정성에 섬세한 밀도감이 어우러진 것이다,

80대 중반인 아내 은경이 8개월 전에 낙상한 우측대퇴골 수술 후 또 집의 거실서 넘어져 좌측 대퇴골이 골절되어 입원했다. 지난번에는 이 대학병원에서 심장 때문에, 뇌 때문에, 골절 때문에 했던 데 이어 이번에 네 번째로 전신마취로 수술을 받고 나온 것이다. 간병을 겸해서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해온 남편이 출혈도 많이 하고 수술실을 나온 은경에게 묻는다. “중환자실은 있을 만 했어?” 뜻밖에 중환자실이 천국 같다고 대답한 그녀는 말을 잇는다.

 

나는 수술하러 갈 때도 걱정 안했어요. 살만치 살았는데 당신 사랑 받으며 이렇게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났어요.”

뭐 죽는다고? 이제 나와 인연 끊고 싶어요?”

왜요? 제가 먼저 요단강 건너가 천국에 있으면 당신은 나 때문에 더 고생도 하지 않고 얼마 뒤 천당에 올 거 아니에요. 거기서 만나면 되잖아요. 나는 더 이상 당신 고생시키는 것 싫어요.”

 

배우자인 화자는 사실 이렇게 살아나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자는 은경의 말을 평소 자기 생각과는 다른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보낸 성령을 따라 그에 순종해서 사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부자연스러운 전도행위를 사양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 대해서 화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죽어 천국에 가고 싶다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난을 참고 견디며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천국은 도대체 어느 곳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눈물이 없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해 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는 곳이 천국이다. 이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그런 천국에 가려면 죽어서 요단강을 건너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망자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한다. 아케론강(슬픔/비통), 코키투수강(), 레테강(망각), 스틱스강(증오)이 그것이다. 망자는 이 강물들을 한 모금씩 마셔야 하는데 그러면서 현세의 기억을 송두리째 망각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시에 천당을 의심하던 은경이 병원에서 고비를 넘기고 나와서는 사후에도 천당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함께 하겠다는 부부사랑을 확인한다. 기존의 교리를 무조건 맹신적으로 믿고 처신하는 일부 교인들에 비해서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 가상하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뜻을 받들면서 인간답게 성실하게 살면 하늘나라에서도 통하지 않겠느냐는 휴머니즘적 마음가짐이다.

 

나는 천국에서도 당신을 기억하며 기다리고 살 거예요. 성경에도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 천국이 어떻게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는 비운의 장소가 되겠어요?”

 

주님 일변도보다는 착한 아낙네로서 가장을 사랑하며 성실히 살다보면 구제받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평소 성수주일하고 술 먹지마라는 등의 지침은 잘 지켰지만 노방전도路傍傳道같은 봉사는 힘겨워 하며 등한했는지 모른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가장이 묻는 것이다. -“만일 천국 문 앞에 베드로가 서 있어서 당신은 세상에 있을 때 전도는 않고 남편만 사랑했으니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일상에서 아쉬웠던 그 점에 대해서 그녀는 사회인 의식에서 가볍게 대꾸한다. - “그럼 당신 오기까지 문밖에서 기다려야지 뭐.”

이 작품은 오승재 소설에서 1970년대 이후 소재와 주제 면에 기독교적인 요소의 강세 현상을 보이던 이전 작품들과는 상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정년 후의 일상생활 중에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만을 진솔하고 반성적인 자세로 쓴 글이다. 그러므로 자신보다는 타자인 교회나 목사 및 교회임원과 교인들의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부당한 처세와 비리를 지켜보고 고발하거나 풍자하던 종래의 소설들과는 차별화된다. 남에 대한 지탄이나 설교적인 훈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신앙적 삶을 되돌아보고 추스르며 진솔하게 이야기해서 소통하는 종교적 감화를 함께한다. 초창기의 감각적인 연정의 향기와 개별적인 순결모럴을 그린 젊은층의 기도나 중년층 교인들의 복합적인 생활상을 밀도감 있게 그려낸 없는 앞에보다 값진 무게를 지니고 있다.

작품 이름부터 으레 경쟁적으로 무리하게 교인수를 늘리며 교회를 키우고 교세를 확장하다 부작용을 빚는 급매물교회」 「제일교회」 「대성리교회등의 보기만이 아니다. 권사 투표 때마다 낙방된 신 명예권사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해 기준미달인데다 한사코 사양하는 신보라 조카를 장로로 추천한 나머지 선거 날 주부인 조카가 가출하게 만든 교회에도 수문장이 있다에서 가정파괴를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온가족을 열성교인으로 만들 욕심으로 고교생 아들을 새벽기도에 내모느라 부자 사이에 의가 갈리고 끝내는 철야하던 기도원에서 아내까지 숨지게 한 죽여야 할 놈(암 덩어리)등과는 위의 최근 단편이 차원을 달리한다.

 

앞으로는 바람직한 장편을

 

이제 서양에서 주창하듯 고급독자격인 평설자보다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오승재 문학에 대한 기대의 지평선을 마무리 삼아서 펴 보일 차례이다. 앞의 창작집을 통한 작품의 변모과정에서 살핀 작가의 창작 연륜 60년에 걸맞은 두어 가지만 주문한다.

우선, 그동안 강의와 연구 등으로 쓰지 못하고 미루어왔던 회심의 장편을 1편쯤은 기필코 발표하길 바란다. 작가 나름대로 이미 구상하고 있으리라 짐작되지만 다른 작품도 발표하는 틈틈이 1000장 안팎이면 충분하고 다다익선이게 마련이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를 거쳐 국제화시대를 살아온 3~4대에 걸친 오씨네 가족사소설 구조로써 요즘의 멀티비전식 편집으로 새롭게 접근해 나가면 더 의미 짙게 빛을 볼 수 있겠다.

바야흐로 원활해진 교통이나 첨단화된 정보 교류로 일일문화권일 뿐더러 등단 60년에 이른 오승재 작가로선 장편소설이 업적의 빈자리를 보충하는 일도 겸하게 된다. 특히 작가께서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에 창작의 공백을 가져왔던 미국 미시간이나 택사스 현지에서 6년여에 걸친 석, 박사과정 때의 다양한 체험을 한국의 현지와 연결해서 장편 작품화하는 작업을 제2의 하와이 시리스로 활용하면 효율적이라 싶다. 더구나 실제로 31녀 가족 거의가 미국 등에서 유학해서 생활하고 있는 가정환경도 감안하여 국제사회에서의 디아스포라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그에 따른 한인주체적인 해결 방향도 제시해주면 한다. 가족들과 미국에서 캐나다를 승용차로 탐방한 이야기를 꽁트로 쓴 구원의 소나기등도 참고가 된다.

다음은, 기존의 기독교소설에 치우친 작품을 일신하는 한편 가끔씩 새로운 대학 캠퍼스 주변의 명암도 조명함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정한 일부의 독자보다는 기독교인을 포함해서 대다수 시민들에게 다가가 대화하며 작가께서 타고난 해학적 유머감각도 활용해서 즐겁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면이 없어 생략했지만 사실 오승재 소설에는 문학의 첫 기능에 값하는 글 읽기 재미가 많이 내장되어 있다.

이를 테면, 외계인 전도에서의 진돗개 전도왕이란 인물이나 죽어야 할 놈가운데 고지식이란 이름 인상뿐만이 아니다. 루시의 방한기중에 모국에 처음 와서 노래방에서 배운 갑순이와 갑돌이중에 고까짓 것 했더래요.”대목이 신기한 듯 엄청 웃기는 루시가 모두 지친 채 내 천자로 누워있는 데서 던져 주고받는 말 몇 마디.

 

미스터 오는 부자야.”

왜요?”

여자가 둘이나 있으니까.”

아내는 이제는 루시를 이해하게 된 듯 그냥 웃었다.

 

 

모름지기 창작활동 60년이면 초심으로 출발하여 숱한 변증법적 여정을 거치고 정반합正反合으로 홈인하는 마라톤 인생의 귀착점이기도 하다. 본격소설과 신앙생활의 조화에 임한 오승재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건필과 대기만성을 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당선, 평론집 5권 외 다수, 노신문학상, 월간문학동리상,

조연현문학상 등 수상, 중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