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신명기 22:13-30 “성은 곧 생명입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1. 06:05

신명기 22:13-30 “성은 곧 생명입니다”

22:25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1.
오래 전부터 성은 가려져 왔습니다. 그리고 부부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의 조건은 순결이었습니다. 간음은 불용입니다.

2.
강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경우를 자세히 규정합니다. 장소에 따라 둘 다 죽음을 맞을 수도 있고 남자만 사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3.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가혹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과 생명을 같은 기준에 놓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보호하듯 성을 보호했습니다.

4.
그렇다고 고대 사회가 이 시대보다 크게 정결했던 것은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극심한 성적 타락의 결과입니다.

5.
중요한 것은 성에 대한 기준이 높을수록 사회는 안정되었고 성에 대한 기준이 낮아질수록 사회는 안정감을 급속히 잃었다는 점입니다.

6.
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폭발력을 지녔습니다. 간음을 엄금했던 것은 부부 사이 이외의 성이 초래하는 가정 피해와 관계 파탄 때문입니다.

7.
결국 가정의 질서와 공공의 질서가 한 질서의 틀 속에 있음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안정을 공동체 안정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8.
예수님은 간음에 대해 훨씬 더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실제 간음하지 않아도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다.

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넘어지게 하거든 눈을 빼어버려라. 네 몸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10.
이 말씀대로 하면 이 세상에 두 눈 가진 사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만큼 심각한 까닭입니다.

11.
바울이 일러줍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는 다 몸 밖에 있지만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몸이 성전임을 밝힙니다.

12.
특히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몸값을 치르고 사신 것입니다. 따라서 내 몸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음란에 몸을 내어줍니까? 아름다운 성은 곧 건강한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