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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표 스릴러’, 여성만 알아챈 폭력과 차별에서 시작된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20. 02:58

‘강화길표 스릴러’, 여성만 알아챈 폭력과 차별에서 시작된다

등록 :2020-06-19 06:01수정 :2020-06-19 10:54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 펴낸 강화길 작가 인터뷰
젊은작가상 대상 ‘음복’ 등 여성서사 스릴러 문법에 담아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문학동네 ·1만3500원

 

신간 <화이트 호스>를 선보인 강화길 작가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소설가는 현재의 이야기를 메타포로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 속 이야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저와 친구들, 주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거죠.”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화길 작가는 최근 펴낸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12일 출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책에는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음복’과 ‘화이트 호스’, ‘가원’, ‘카밀라’ 등 7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지난 1일 시작한 예약판매를 포함해 출간 첫 주에만 8천부가 팔렸다.

주목받는 80년대생 여성 작가 중 한 명인 강 작가는 데이트폭력과 여성혐오를 다룬 장편 소설 <다른 사람> 등 여성 문제와 관련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특히 ‘여성 스릴러’라는 장르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온 그는, 한국 여성들이 공유하는 불안과 공포를 소설에 서늘하게 담아내고 있다.

 

표제작 ‘화이트 호스’는 창작의 고통과 세간의 비평에 시달리는 한 소설가가 “귀신이 들러붙은” 고택에 머물며 겪는 괴기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강 작가가 2017년 여름, 가족과 미국 시애틀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 “스위프트의 노래에 등장하는 화이트 호스에 대해 생각했어요. 소설에는 화이트 호스가 백마 탄 왕자,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으로 나왔어요. 그렇다면 내게 화이트 호스는 무엇일까. 그 안에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내 자신에 대한 욕망일 수 있고 기대감, 부담 혹은 칭찬일 수 있고 사랑일 수 있어요.”“신인도 중견도 아닌” 등단 8년차인 작가의 고민도 고스란히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제가 여러가지 평가에 시달리고 신경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걸까. 그런 고민 속에서 내가 뭘 하고 싶고 정말 쓰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더 몰입하자, 그게 더 중요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화이트 호스를 갖느냐 안 갖느냐 내적 투쟁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화이트 호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과제인 것 같아요.” 작품 속 화자 ‘나’는 환청에 시달리며 조금씩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 “어쩌면 그녀는 찬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것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쓰는 사람 그러니까 오직 뭔가를 만드는 사람만이 바꿔낼 수 있는 새로운 의미. 그런 화이트 호스를.”(‘화이트 호스’)‘화이트 호스’를 쓴 뒤 “스스로 위로를 받고 자유로워졌다”는 그가 다음에 쓴 작품이 ‘음복’과 ‘가원’이다. ‘음복’은 가부장적인 집안의 며느리인 세나의 시선으로 본 제삿날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장손이라는 이유로 모든 혜택을 받고 자란 조카를 미워하는 시고모,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시어머니, 미묘한 시댁 여성들의 감정을 알아챈 세나. 그러나 남편과 시아버지, 남자들만 모르는 ‘무지의 권력’이라는 가부장제를 스릴러의 문법으로 담아냈다. ‘가원’은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책임지는 외조모와 그의 돌봄 덕분에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된” 손녀의 이야기다. “한 가정을 보면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무책임해져요. 그게 가부장제와 연결된다는 게 비극인 것 같아요.”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무기력한 가부장제의 부역자가 아니다. 그들은 돌봄력으로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다음 세대를 키워간다. 신샛별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집의 ‘해설’에서 “대안적 권력 모델을 추구하고 행사해온 행위자-여성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그러한 대안적 권력을 이미 가졌거나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긍정하게 해주고, 돌보는 권력을 향한 여성들의 헌신을 북돋운다”라고 평했다.

신간 <화이트 호스>를 선보인 강화길 작가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번 소설집의 표지는 영미 고전 스릴러의 느낌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스릴러물을 좋아했다는 강 작가는 아서 코넌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등 추리, 스릴러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거기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의 이야기에 매료됐어요. 추리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인에 얽히게 되고 그들은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어요. 특히 연인이나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스릴러는 주인공들의 비밀이 폭발할 때 피가 흐르는 호러보다 더 긴장감이 도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한국 가족들을 볼 때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그가 보여주고 싶은 ‘강화길표 스릴러’는 어떤 걸까. “벌써 독자들이 그러던데요. 마무리 지어지지 않아서 ‘열린 결말’이 특징이라고 하더군요.(웃음) 저는 결말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읽게 하고 싶어요.” 강 작가는 앞으로 여성 3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가족사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 “내 모습 안에는 할머니, 어머니와 닮은 구석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또 다르고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 것에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기원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고 그걸 소설로 담고 싶어요. 20대 때에는 생각하지 않던 이런 이야기가 이제는 너무나 쓰고 싶네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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