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장의 책거리] 아무튼, 평화
등록 :2020-06-19 05:59수정 :2020-06-19 09:35
[책&생각] 책거리
누구나 기회를 잃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한 선배는 몇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뒤처진 동료를 챙기느라 눈물의 하산을 했다고 합니다. 산악 잡지를 만들고 30여개 대회 1500㎞를 달린 ‘트레일러너’ 장보영 작가가 쓴 <아무튼, 산>(코난북스)을 보니, 그 또한 산행 때 예측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고생한 일이 한두번 아니었다고 하는군요. 운좋게 알프스 몽블랑 원정대원으로 합류하게 된 그는 7달 동안 산악훈련까지 했지만 서유럽 최고봉을 눈앞에 둔 해발 3786미터에서 컨디션 난조로 원정대장에게 ‘하산’ 명령을 받았답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산한 그의 눈에 산악 마라톤 대회 포스터가 들어왔고, 그는 곧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으니까요. 등산을 할 땐 헤매는 일이 허다합니다. 만만한 동네 ‘앞산’ ‘뒷산’이라도 길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장 작가는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면서도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예측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산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붙여 사진을 올리는 젊은 힙스터들도 마찬가지 경험을 하겠죠.
약자들의 삶은 더구나 길 잃기의 연속일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끝없이 내쳐지기만 한 일본 민중의 기억을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이란 책으로 엮은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말합니다. 그들 속에 어둠만이 아니라 “밤에 더욱 빛나는,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지금 ‘강 대 강’으로 치달아 어둠이 드리워진 한반도 사람들에게 걸맞은 위로의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평화를 빕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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