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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와 상대방 권리 [박완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30. 04:58

내 권리와 상대방 권리

 

 

 

 

 

 

옛사랑은 생각만 해도 애틋하지요. 그런데 옛사랑에 대한 아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옛사랑이 잘 살면 배가 아프고, 옛사랑이 못 살면 마음이 아프고, 옛사랑이 같이 살자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상대방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과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부탁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첫사랑도 그렇고 짝사랑도 그랬습니다. 고백도 못해보고, 대시도 못해보고 혼자서 가슴앓이만 하다가 끝나버린 수많은 옛사랑들을 우리는 지금도 아쉬워합니다. 말이라도 해볼 걸,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그런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거절을 당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아쉬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백 한 번 못해본 그 미련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오래 전에 제가 어느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였습니다. 동갑내기 첫사랑.

 

친구였기에 고백도 못해본 사랑.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녀를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저의 책에 사인회를 마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녀는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반가웠습니다. 옛날에 비해 살이 좀 쪄서 아줌마 모습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쁜 얼굴이었습니다.

 

“잘 살았어?”
“응, 너는?”

 

“나도 잘 살았지.”
“......”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너는 많이 변했다. 머리도 빠지고.”

 

그렇게 대충의 안부인사가 끝나고 제가 웃으면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너를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거는 알았어?”
“그래? 전혀 몰랐는데.”

 

“하긴, 나 혼자 좋아했으니 네가 모를 수도 있지.”
“말이나 하지 그랬어.”

 

“네가 거절할 것 같아서.”
“나도 너를 좋아했는데...”

 

“네가 나를 좋아하기는 했었니?”
“응! 조금...”

 

아! 그랬구나. 그녀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녀와의 만남 이후 저는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가 있으면 주저하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합니다.

 

“말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고,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상대방의 권리인데 네가 상대방의 권리까지 침해할 이유가 없잖아?”

 

상대가 나의 말을 받아주면 감사한 일이고, 거부하면 적어도 상대방 마음은 알 수가 있으니 저도 손해날 일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저는 무조건 말을 합니다.

 

‘나중에 말하지 뭐’ 이렇게 뒤로 미루는 일은 결국 말하지 않거나 못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말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든 말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용기를 내보는 오늘이기를 소망합니다.

 

박완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