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한겨레 프리즘] 지기춘풍 추미애 / 김태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14. 04:28

[한겨레 프리즘] 지기춘풍 추미애 / 김태규

등록 :2020-10-13 18:10수정 :2020-10-14 02:42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 진행된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규 ㅣ 법조팀장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9개월이 지난 2018년 2월5일,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썼던 ‘춘풍추상’(春風秋霜) 휘호 복사본을 액자로 만들어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선물했다. ‘춘풍추상’은 중국 명나라 때 인생지침서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로 “남에게는 봄바람같이 대하되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그날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직자가 공직에 있는 동안 이런 자세만 지킨다면 실수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업무 특성상 지나친 온정주의가 독이 될 수 있는 공직이라면? 문 대통령은 검찰·감사원·청와대를 거론하며 “남들에게 추상과 같이 하려면 자신에게는 몇배나 더 추상과 같이 대해야 하며 추상을 넘어서 한겨울 고드름처럼 자신을 대해야 한다”고 했다.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가슴속에 새겨놓아야 할 경구다.한동안 잊었던 ‘춘풍추상’을 떠올려준 사람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추 장관은 지난 8월2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지기추상 대인춘풍이라는 말이 있다”며 “원칙만을 앞세워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검사가 아니라 소외된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하며 또 다른 측면은 없는지 살펴보는 혜안을 쌓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공직자에게 건넨 적확한 조언이다. 원전의 순서를 뒤바꿔 대인춘풍보다 ‘지기추상’을 앞세운 건 검사 개인의 몸가짐을 더욱 바로잡으라는 당부로 읽혔다.그런데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추 장관 본인은 어떤가. 서울동부지검 수사를 통해 추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자신의 보좌관에게 아들 부대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건네고, 보좌관으로부터 “지원장교에게 예후를 좀 더 봐야 해서 한번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황입니다. 예외적 상황이라 내부검토 후 연락 주기로 했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보좌관에게 ‘(부대에) 전화 걸라고 시킨 사실이 없다’를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던 추 장관 발언의 신빙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물증이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제가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정말 저는 기억하지 못했던 일인데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어서 송구합니다. 군에 간 아들이 건강하게 제대하기만을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엄마 된 입장에서 아픈 아들의 병가·휴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야 했지만 집권여당 대표라는 무거운 자리 때문에 보좌관에게 부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권 인수 시기였던 당시에 저는 집권당 대표로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군대 보내놓고 바쁜 엄마가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보좌관이 저 대신 아들의 일을 처리하게 했지만, 이렇게 도와줄 보좌관이 없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게는 박탈감을 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 가족 일에 대해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렇게 진솔한 사과를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추 장관은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10월2일 페이스북에 ‘9개월간의 전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아들에게 전달받은 ‘지원장교님’의 전화번호를 전달한 것을 두고 보좌관에 대한 ‘지시’라고 볼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소설 쓰시네”라는 발언으로 야당의 반발을 산 추 장관은 12일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언론이 가세하고 야당이 증폭해온 9개월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고, 소설이 소설로 끝난 게 아니라 장편소설을 쓰려고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기춘풍. 본인에게 엄격하지 못했고 반성도 없었다.

 

다시 <채근담>을 훑어보았다.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은 닥치는 일마다 모두 약이 되고 남을 탓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마다 모두 창과 칼이 된다.” 옳은 말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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