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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다수결에 대한 오해 / 이철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27. 17:44

[세상읽기] 다수결에 대한 오해 / 이철희

등록 :2020-10-26 15:42수정 :2020-10-27 02:40

 

이철희 ㅣ 지식디자인연구소장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헌법 49조다. 우리 헌법은 다수결의 원리(majority rule)를 결정의 기본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런데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이 다수결에 대해서는 위험한 오해 또는 무지가 있다. 다수결을 의사 결정의 ‘방법’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다를 때, 이견이 있을 때 다수 의견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결의 전부가 아니다.

 

두 의견이 있다. 가안은 100명의 구성원 중 51명이 지지하고, 나안은 49명이 지지하고 있다. 이럴 때 표결로 51명이 지지하는 안을 의결하는 것이 다수결의 요체일까? 아니다. 두 안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가안을 수정한 가′안에 대한 지지가 61명이 될 수도 있고, 나안을 수정한 나′에 대한 지지가 70명일 수도 있다. 이처럼 토론과 협의를 통해 원안보다 더 많은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수정안·대안을 만들어가는 ‘숙의’(deliberation) 과정이 다수결 원리에 내장되어 있다. 토론과 협의 없이 특정 시점에서의 지지 분포에 입각해 다수 의견을 채택하는 것은 다수결의 본래 뜻이 아니다. 양보와 수정, 압박과 절충, 심지어 거래와 담합까지 다양한 타협 기제를 통해 더 많은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요컨대, 다수결은 숙의를 요구하는 과정적 절차다.

 

타협과 숙의 과정을 생략한 채 절차로서의 다수결만 고집하는 것은 다수결에 대한 왜곡, 즉 다수독재가 된다. 민주주의에서 다수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의견의 다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민주적 결정이라는 것은 차이를 확인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 새로운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결정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다수결은 다수를 만들어가는, 더 큰 다수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전제한다.

 

다수결 원리를 오해하면 양당제에서 더 위험하게 나타난다. 양당 간 일대일의 대결 구도하에서는 처음의 찬반 구도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디(D)당과 피(P)당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법안을 제출했고, 두 정당이 당론으로 입장을 정해버리면 타협과 숙의 과정이 작동하기 어렵다. 당론으로 제약하지 않더라도 양당 간에 이념적 거리가 멀고,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른바 양극 정치에 빠져 있을 경우에도 이런 과정은 작동하기 어렵다. 타협이나 숙의를 통한 수정이 배신이나 굴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당제가 아니라 다당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당제에 비해 훨씬 타협과 숙의 과정이 쉽게 작동한다. 다당제하에서는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등장하기 어려워 타협과 숙의 과정이 사실상 강제된다. 제3, 제4 당의 존재 때문에 타협과 숙의를 모색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더 많은 구성원이 동의하는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양당제에서 60%의 의석을 점유한 한 당이 밀어붙여 의결한 안과 다당제에서 복수의 정당에 의해 60%가 찬성해 채택한 안은 동의율이 같아도 그 차이는 매우 크다. 다른 비전과 프레임을 가진 정당들이 양보와 수정의 협의를 통해 대안을 만드는 것과 한 당에 의해 특정 안이 힘으로 밀어붙여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다수결에서 핵심은 다수의 크기가 아니라 다수를 형성하는 과정, 다수의 질이라 하겠다.

 

두 당이 경쟁하는 양당체제 또는 여러 당 중에서 제1당이 과반 의석을 가지는 사실상의 양당제에서는 과정으로서의 다수결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제1당 또는 제2당이 타협보다 원안을 고집할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도 제1당과 제2당이 전체 의석의 93%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양당제이고, 타협도 드물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다수의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을 포기해야 할까? 안 된다. 그럼 어떻게? 군소정당과의 연대를 상시화·제도화할 수 있다. 또 제로섬의 양극 정치(polar politics)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정치적 타협이 불가능할 때엔 시민사회와의 협의, 대중적 동의를 얻어내는 사회적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와 넓게 소통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조차 생략하면, 토크빌이 그렇게도 경계한 다수독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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