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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칼럼] 이건희 회장 평가, 과공은 비례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27. 17:50

[안재승 칼럼] 이건희 회장 평가, 과공은 비례다

등록 :2020-10-26 14:58수정 :2020-10-27 02:39

 

조중동과 경제지들을 보면 이건희 회장은 완벽하다. 공만 있고 과는 없다. 삼성이 최대 광고주여서 그런가?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들은 삼성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아예 삼성에 동화된 듯하다. 삼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고 이해를 대변한다. 삼성의 어두운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삼성 잘못이지만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포기한 언론 책임도 무겁다.

 

그래픽 김정숙

안재승ㅣ논설위원실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를 다룬 조중동과 경제지들의 보도를 보면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논어>에 나오는 얘기다. 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다. 예의를 정중히 지키되 굽신거리지는 말라는 거다.

 

망자에게 최대한 예우를 갖추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죽음 직후엔 과보다는 공을 더 평가해준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조중동과 경제지들의 기사와 사설을 보면 이건희 회장은 단 하나의 흠도 없는 완벽한 인물이다. 보는 이가 민망할 정도다. 고인의 공과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교훈을 찾아내는 언론의 역할을 처음부터 포기한 것 같다.

 

이건희 회장은 말 그대로 영욕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분야에서 선구적이고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로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우고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삼성 반도체와 갤럭시폰은 삼성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임직원들의 헌신과 국민적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 회장의 결단과 혁신이 없었다면 또한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정경유착, 불법 경영권 승계, 무노조 경영 등으로 우리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남긴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 이래로 정경유착을 이어온 것은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사회를 부패시키고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정경유착은 가장 큰 사회악이다. 이 회장은 1996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2009년 ‘삼성 특검 사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사건’과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때도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거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됐다. 1996년 이 회장의 편법 증여로 출발한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역시 국정농단 세력인 박근혜·최순실과의 정경유착으로 귀결됐다. 또 무노조 경영은 노동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큰 고통을 안겼다.

 

그런데도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26일 사설에서 이건희 회장의 부정적 유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오직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조선) ‘도전과 혁신의 아이콘’(중앙) ‘초일류 기업인’(동아) ‘진정한 변화의 선도자’(매일경제) ‘고독한 천재이자 혁신의 리더’(한국경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거대 여당은 기업의 손발을 한층 더 옭아맬 상법·공정거래법·노동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겠다고 벼르고 있다”(중앙) “정치인들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각종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동아) “사회 전반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와 기업을 옭아매는 규제를 털어내는 일이 이건희 회장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한경)라고 주장하고, “그룹 총수가 재판정에 불려다녀야 하는 사법 리스크로 중대한 경영 의사결정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매경)고 했다. 공정경제 3법 등 경제민주화에 반대하고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압박을 가한다.

 

조선일보는 한술 더 뜬다. 25일 하루에만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 기사를 93건 내보낸 이 신문은 이번에도 ‘정치’를 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이 회장의 별세를 정중히 애도하며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한다”는 글을 올린 데 대해 ‘“고인 마지막 길까지 깎아내리나”…이낙연 ‘빛 그림자’ 페북에 분노 댓글 폭주’ 기사를, 이 회장의 공과를 두루 짚은 민주당 논평에는 ‘여, 고심 끝 맨 늦게 논평 “영욕의 삶, 부정적 유산은 청산해야”’라는 기사를 썼다. 문제 될 게 없는데도 사실관계를 비틀어 극우 성향 누리꾼들의 댓글을 유도한다. 편 가르기다.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삼성이 최대 광고주여서 이러는 건가? 삼성 광고는 모든 언론사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들은 삼성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아예 삼성에 동화된 듯하다. 삼성의 논리가 내면화된 것 같다. 삼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고 이해를 대변하는 모습이다. 삼성과 한 몸이 된 것 같다. ‘조중동이 삼성인지, 삼성이 조중동인지’ 구분이 안 간다.

 

잘한 일은 높이 평가하고 잘못한 일은 비판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면 된다. 잘못한 일을 비판한다고 잘한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잘한 일을 평가한다고 잘못한 일이 덮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게 그리도 어려운가? 삼성의 어두운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삼성 잘못이지만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포기한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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